그리고 다시 실패 ...
아니, 나의 진짜 모습을 되 찾아가는 경험이었노라 말하고 싶다.
9마치 아무도 축복해 주지 않는 길을 가는 느낌이랄까?
그랬다.
축복은 커녕 아무도 내가 하는일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 심지어는 애 둘 키우는 아줌마가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괜히 책 좀 읽는 고상한 여자 인척 한다는 시선뿐이었다. 남들의 시선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은 내가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고 인생에 놀랄만한 변화가 오지 않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뿌리깊게 박힌 나의 부정적인 정서적 해방을 위해 나는 필사적이었다.
다른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냥 나의 감각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무의미하게?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어가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애 둘 엄마가 되어 육아와 살림에 열심이었다. 두 아이를 독박육아로 키우는 시간들이 정신적, 육체적 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스며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어느날
도서관을 다니다 관절에 무리가 왔다. 발에 무리가 가는 신발이나 슬리퍼를 신고 걸었던 탓에 무릎 관절에 통증이 왔다. 한발 한발 내딧을 때마다 좌골까지 찌릿한 고통이 전해졌다. 병원을 찾았더니 바르지 않은 자세로 오래 걸어다녀서 무릎에 염증이 왔다는 거다. 약 2주일간 염증 치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은 날이었다.
" 젊은 사람이 관절이 많이 약해져 있네요. 관절염 검사를 한번 해보고 꾸준히 주사를 맞아보는게 어떨까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동의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치료 방법은 없느냐 여쭤보았지만 되려 겁만 더 줄뿐이었다.
"이건, 아니다!"
라는 본능적인 생각이 스첬다. 다음날 운동센터에 상담을 받고 근육운동부터 가볍게 시작해 보기로 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운동을 계속해서 유지 하며 다니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 한달간은 정말 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몸에 큰 변화가 오지 않았다. 이 쯤에서 그만 해야하나 고민이 됐다. 겨우 한달하고 말이다.
운동을 계속 유지 하는게 내가 내 몸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이요법과 함께(식이요법은 하루에 한끼만 했다. 주말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다.) 꾸준히 6개월간 운동을 유지했고, 6개월 때 부터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살이 10kg이 빠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팠던 무릎은 너무 튼튼해져 있었다. 무릎 뿐만이 아니었다. 체지방량이 줄었고 근육량은 많이 늘었다. 몸도 가벼워지고 이전처럼 아침기상이 피곤하지도 않았다. 감사하게도 아이들도 밝고 건강하게 잘 커 주었다. 그렇게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최근
이전 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했다.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소프트웨어 강사 선발이었다.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을 우선순위로 선발하는 제도 였다. 결혼 전 사회복지사 였던 나는 강의 경험도 없었다. 내 분야와는 전혀 다른 컴퓨터프로그램인 코딩(초.유아동)을 교육하는 강사다.
" 이번 도전은 잘 한 결정일까? 내 도전이 무의미 해지진 않을까? 만약 선발된다 해도 자신이 없는데...
나는 잘 할 수 있을까?
많의 의구심을 떨처버리고 그냥 저질렀다. 1차 서류전형 합격문자를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쁘진 않았다. 2차 면접합격 이라는 중요한 결정지가 남아 있었다.
화상면접이라 집에서 분주히 준비를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다. 아뿔사! 면접은 엉망진창 이었다. 내가 준비한 면접 내용은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면접자가 하는 질문에 동서남북 다른 대답만 늘어놓았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결과를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 그래,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닌곳을 탐하는건 틀린게 아니라 방향성이 다를 뿐이야. 각자에게 부여된 소질은 다르므로 자신을 잘 알고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찾아 가야해. 이번결과는 실패로 끝났지만, 나의 진짜 모습을 되 찾아가는 경험이었노라. 아니, 그 값진 경험을 한번쯤은 해보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