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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lopenspirits Mar 27. 2024

3만 원짜리 커피

휴직 85일 차

     도서시장에서 만권 이상이 팔리면 그래도 잘 팔리는 축에 속하고, 베스트셀러 섹션에 올라간다고 한다. 책이 한 권에 15,000원이라고 하면 만권을 팔면 매출은 일억 오천이다. 그중 보통 작가가 인세를 7~10프로 정도 가져가니까 책 만권을 팔면 작가는 천만 원에서 천 오백만 원 정도를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


     생각보다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게 쉽지가 않다. 특히나 에세이는 작가의 사생활과 머릿속을 노출하는 거니 좀 위험하기도 하다. 또 의사, 변호사와 같이 전문지식을 활용한 지적노동에 비해 작가는 상대적으로 저임금 지식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문학의 가치를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예술은 신성불가침이지만 말이다.


     신사동에서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아서, 무작정 도산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그 근처에 괜찮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다. 원래 목적지는 다른 곳이었는데 갑자기 근처에 에르메스 매장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에르메스에서의 목적은 가방도 스카프도 아닌 카페였다. 지하 1층에 에르메스 카페가 있는데 주말이면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백수의 장점인 핫플 평일 낮에 가기를 실현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에르메스로 발길을 돌렸다.


     메뉴는 뭐 보나 마나 비쌌다. 커피와 티라미수 케이크를 주문하니 3만 원 돈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커피가 계속해서 리필이 된다는 것이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카페에 가도 커피 한잔에 5~6천 원은 하는데, 에르메스 테이블웨어에 담긴, 호텔신라의 서비스를 한잔에 12,000원, 커피를 두 잔만 마셔도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아 보였다. 돈도 안 버는데 비싼 커피를 마시는데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딱 한 번인데 뭐, 하고 말았다. 살면서 50만 원짜리 커피잔과 접시를 사는 일은 없다시피 하니, 한번 경험해 본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커피도 두 잔이나 마셔서 평단가를 낮췄다.


     글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만 명에게 사생활을 판 대가가 겨우 천만원인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야기가 천만 원이나 될 수 있는 거였다. 요즘 세상에 문맹은 없으니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살아 숨쉬기만 해도 스토리가 생긴다. 잘 살던 못 살던, 성공했던 실패했던 들려줄 이야기는 언제나 있다. 다른 종류의 예술처럼, 예를 들면 악기를 배운다던가, 그림 재료를 산다던가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종이랑 펜, 요새는 휴대폰, 키보드만 있으면 어디든 글을 쓸 수 있으니 생각보다 글 쓰는 건 가성비가 좋은 선택이다. 만 이천 원짜리 커피가 어떤 면에서는 알뜰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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