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없는 요가반 수업 후기
인도네시아어 수업이 취소가 되어 급하게 다른 수업을 찾다가 Active Consciousness Meditation에 참여하게 되었다. 활성화된 의식 명상??? 직역하면 그쯤 되겠으나 도저히 무슨 수업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만 Meditation이 명상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기에 눈이나 감고 잠시 쉬다 오지 뭐...라는 생각으로 강의실로 들어갔다.
요가반의 여타 다른 수업과는 다르게 Active Consciousness Meditation 수업은 60분이 아닌 한 시간 반동안 진행되었다. 90분이 너무 지루하면 몰래 도망가려고 출입문 앞에 자리를 잡았지만 기우였다. 90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도 있는 시간이었다.
터번을 두른 인도인 강사가 들어왔고 마치 그를 호위하듯 세 명의 보조 강사들이 분주하게 수업을 준비했다. 맨 처음 그들은 학생들에게 티슈를 나눠주면서 코를 풀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왜 코를 푸는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고요한 숨과 함께 하는 명상이 아닌 거의 코를 풀듯이 힘차게 숨을 내뱉는 호흡기법을 사용하기에, 원활한 들숨날숨과 콧물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청결히 하라는 뜻이었다.
시작은 차크라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차크라(Chakra)는 산스크리트어로 ‘바퀴’, ‘순환’이라는 뜻으로 인체의 여러 곳에 존재하는 정신적 힘의 중심점을 이르는 말이라고 네이버가 알려줬다. 총 7개의 차크라가 있는데 세 번째 차크라에 대해 설명할 때쯤에 졸아서 다 듣진 못했다. 강사의 설명이 끝나고 나서는 수강생들은 아주 큰 원을 만들어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그리고 양 옆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선 명상이 시작된다.
배경음악이 흐르고, 강사의 지시에 따라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이때 중요한 것은 첫 번째는 내쉬는 숨을 아주 강하게 코로 뱉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강사가 이끄는 리듬과 가이드를 잘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속도는 점점 빠르게 변하고, 마지막에는 가쁜 숨을 고르게 하려고 숨을 참은 후 다시 천천히 내뱉는다. 이것이 한 사이클이며 약 1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5번 정도 반복 했다.
정말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숨을 힘차게 내뱉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고 몸이 경직되며 내 안의 에너지가 살아 숨 쉰다는 걸 느꼈다. 첫 라운드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2,3회 차가 될수록 점점 나의 정신과 몸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3라운드쯤에서는 너무 어지럽고 몸의 말단 -발, 귀, 손 -부터 안으로 점점 조여진다는 느낌을 받아서 라운드 중간에 가부좌를 풀고 잠시 벽에 기대 있었다. 메인 강사 말고 서포터 강사들은 수강생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필요하면 눕히기도 하고, 몸을 만져주기도 하면서 이 명상이 힘든 사람들을 도와줬다.
쉬는 동안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각자가 각자의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어떤 사람은 듣기에 좀 민망한 -마치 잠자리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표호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강사의 작은 터치에도 화들짝 놀라며 기겁했다. 마지막 라운드는 가관이었다. 교회에서 방언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사이비 종교 광신도들을 보는 기분도 들었다. 명상초보자에게는 솔직히 약간은 기괴하다는 느낌이었다.
잠시 휴식을 가진 후 다시 호흡명상을 시작했다. 이전의 한 두 번의 라운드에서 몸과 뇌가 예민해져 있는 탓인지 다시 금방 변화가 느껴졌다. 내면의 에너지, 순환, 육체와 정신의 연결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을 소설이나 영화, 그럴듯한 문구에도 많이 쓰이지만 그것이 정말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느낀 적도 없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껏 해봐야 극적인 감정? 무언가를 향한 열정과 갈망? 정도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에너지였다.
단순히 숨을 쉬었을 뿐이다. 숨은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능동적으로 즉, Active 하게 Conscious 하며 컨트롤하니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그동안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호흡, 즉 당연한 살아있음을, 적극적으로 깨닫고 느끼고자 하니 정신과 육체가 그 의식적 두드림에 반응해 줬다. 격한 호흡을 할 때는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느낌, 내 몸의 구성요소, 미토콘드리아 하나하나가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었고, 마무리 호흡을 할 때는 요통 치던 에너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때 강사는 차크라에 포커스 하라고 말하는데 조느라 차크라에 대한 설명을 놓쳐서 일단 명치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내 몸이 징이 된 느낌이 있더. 명치가 징 한가운데이고, 그곳에 응축된 에너지를 쏟아내니 파생된 울림이 몸 곳곳에 퍼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라운드가 끝나면 마무리 시간을 가진다. 눈을 감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호흡을 고르게 만든다. 이때 나는 눈물이 났다. 어떤 슬픈 일이 생각나서는 아니었고 그냥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눈물도 왼쪽과 오른쪽에서 번갈아가면서 흘렀다. 격해진 감정에 펑펑 우는 사람도 있었고, 무언가가 억울한 듯 가슴을 내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매우 평온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황홀경에 젖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매우 벅찬 얼굴을 하늘을 향해 들고 있었다.
옛날에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 진행자 중 김도인이라는 명상가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호흡명상을 하면 LSD를 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땐 숨 쉬는 것 만으로 마약을 효과를 낸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명상도 처음이고 마약을 해 본 적도 없는 탓에 비교 대상이 전혀 없어 그 둘이 정말 같은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 타임에 강사에게 물어봤다. LSD 효과랑 같다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정말 그게 사실이냐고. 그랬더니 강사가 대답했다.
WELCOME TO THE FREE DRUG WORLD!
요가반에서 10년 전에 강사과정을 들었던 요기 친구에게 오늘의 경험을 이야기해 줬다.
- Punnu가 아직도 있어? 걔 진짜 오래 가르치네.
알고 보니 이 수업은 일명 마약명상으로 10년 전에도 유명했다고 한다. 마약김밥, 마약떡볶이에 이어 마약명상이라니! 유독 등록대기줄이 길었던 이유, 다른 수업이랑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예전에 대마를 해본 지인이 약에 취하니 자기도 몰랐던 무의식, 잊고 있었던 기억과 과거 이야기를 그 어떤 저항 없이 술술 이야기하게 되더라 라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고, 약마다의 기전이 다르고, 무엇보다 불법약의 특성상 그 성분과 비율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분의 말이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겠다. 하지만 정말 Active Consciousness Meditation를 일정 수준의 LSD 대용으로 쓸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나의 의식과 무의식에 무엇이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성의 끈이 너무 단단하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감지되는 몸과 마음의 변화가 너무 무서워 중간에 포기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즐기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비단 이번 명상에서뿐만 아니라, 술을 마실 때도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평소보다도 더 자세를 꼿꼿이 한다던가 하는 걸 보면 추한 모습을 나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보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수업도 꼭 혼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나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혹여나 내가 짐승같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이거나 신음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너무 끔찍하다.
또한 마음속 깊은 곳에 슬픔이 많은 사람이라고 추정된다. 마무리 시간에 누군가는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고민했던 무언가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정은 나의 우울감과 불안을 최우선으로 보살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나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MUST를 부여하는 이성이 강한 사람이며, 우울과 슬픔이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으니 그것을 잘 다스리는 노하우와 가까운 사람들이 필요하다.
요가반 10 CLASSES PASS권을 끊고 벌써 8개를 소진했다. 그리고 남은 두 개 중 하나는 다시 Active Consciousness Meditation 수업에 쓰겠노라 마음먹을 정도로 인상 깊은 수업이었다.
추천 대상:
-고요한 명상은 지루해서 격한 명상을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
-합법적으로 마약을 해보고 싶다면 추천.
-내면의 에너지라는 게 무엇인지 진실로 알고 싶은 사람.
-요가반에서 요가 말고 다른 수업을 딱 하나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수업을 추천함.
-옆 사람 비말을 신경 쓰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가까운 사람의 날 것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함께 가는 것을 추천.
만족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