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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 Dec 23. 2022

쑥새의 흰 겨울밤

글쓰기 모임에서

따듯하다. 아침이면 더욱 아늑해지겠지. 온기로 가득 찬 이곳에서 나가기 싫어질 거야. 아니, 배가 고파 얼른 깨어날지도 모르겠다. 부엉이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저 녀석 울기 전에 내가 먼저 잠들어야 할 텐데. 오늘은 또 어떤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까. 기왕이면 좋은 생각을 해보자.


왜가리나 학처럼 물가에서 자는 새들은 정말 신기하다. 그들은 나에 대해 생각할까? 한낮에 까불며 돌아다니다가 밤이면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데, 궁금하지 않을까? 가끔 물가에 놀러 갔다 마주하는 그들의 친절함이 좋다. 물에 들어갔다 나온 나에게 햇살을 오래 머금은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보면, 나쁜 녀석들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일 점심때에도 또 물가에 가야지. 이렇게 일상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밤에 잘 자기 위해서는 더욱 중요하다.


지난달에 이사 온 이곳 봉암저수지에는 뱀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아직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어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그것도 무서운 일이다. 하여간 맹금류 녀석들을 마주치지 않아서, 이제는 둥지를 두고 나뭇가지에 앉아 반만 자는 일이 없어졌다. 위험한 환경에서는 뇌의 절반만 자고 나머지 절반은 깨어 있는 방식으로 잠을 자야 하는데, 도시에 사는 사촌은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뜬 채로 자는 경우가 일상이라고 했다. 도시는 음식을 구하기 쉽지만,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도시에서 마주쳤던 녀석마다 한두 가지씩 부상을 가졌던 게 떠오른다.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서 사는 게 맞는 걸까?


이제 정말 추운 겨울이다. 여름 동안 검은색이었던 깃이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 머리 색이 점점 더 밝아질 것이다. 우리 쑥새들은 농경지 주변과 구릉, 산지 숲에서 지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낮에는 저수지나 강가에서도 많이 마주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울새인데, 주로 겨울에는 풀씨를 먹고 여름에는 곤충의 유충과 성충을 잡아먹는다. 아, 배불렀던 그때여. 배에서 꼬롱꼬롱 소리가 난다.


이번 겨울밤은 어른이 되고 오롯이 혼자 보내는 첫 번째 겨울이다. 지난 5월, 아내는 다섯 알을 낳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둥지를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이별을 말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나야 하는 이가 있다며. 나는 그녀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그녀는 나를 외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로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은 아니다. 내게 너무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녀의 의견을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줄 아는 사랑은 그런 모습이라서.


그녀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어디가 되었건 원하는 곳에 잘 도착했으면 좋겠다. 힘들 때면 나를 떠올리면서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고. 당신은 너무나 멋진 새예요. 그걸 좀 더 많이 알려 줬어야 했는데. 혹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가 함께 지내던 둥지를 찾으면 어쩌지. 나는 그녀와 두 번 헤어질 용기가 없어 멀리멀리 도망쳐왔는데. 결국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들려나 보다. 무거운 눈꺼풀 사이로 눈 내리는 풍경이 보인다. 정말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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