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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쏭 Apr 24. 2023

방골 느티나무

내 고향 방골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여느 시골마을에나 한 두 그루쯤 있는 그런 흔하디 흔한 느티나무다.  어릴 적에는 그 느티나무 주변이 마을의 유일한 놀이터였다.  


나무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싼 시멘트 바닥은 매일 흙을 뒤집어쓰고 일하는 어른들에게는 털고 앉아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었고, 흙바닥에서 뒹굴던 아이들에게는 맨발로 뛰어놀아도 되는 이웃집 마루 같았다. 우리는 이 나무를 ‘둥그나무’라 불렀다. 본래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나무’를 뜻하는 동구나무라는 단어가 있지만 어른들이 쓰는 단어를  별생각 없이 따라 부르는데 익숙했던 터라 다들 ‘둥그나무’라 불렀다. 나무 주변을 둥그렇게 해 놔서 둥그나무려니 생각하며.


여름이면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는 ‘둥그나무’는 주로 아이들 차지였다. 느티나무 주변에 둘러앉아 조약돌로 공깃돌 놀이를 하거나 술래잡기를 하고,  나무뿌리 주변의 개미집을 파헤치거나 나무껍질에 글씨와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했다.  조금 더 자란 아이들은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담뱃잎을 엮으며 용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따로 용돈을 주거나 받는 이가 없는 시골 생활이었던 터라 아이들이 무언가를 해서 스스로 쓸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이따 둥그나무에서 놀래?“

”둥그나무에 애들 있어?“


매일의 일상을 함께 하던 존재이자 장소


중학생 정도의 나이대가 되면 둥그나무는 ‘추억의 공간‘이 된다. 둥그나무의 쓸모는 친구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성에게 고백하는 조용한 장소 정도로 충분했다. 그러나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둥그나무는 이내 ‘심심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한물간’ 장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몇 년간은 아주머니들 몇몇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둥그나무 주변에서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아주 드물게 마을의 노인 한 두 명이 조용히 앉아있는 모습을 볼뿐… 느티나무 근처에 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무도 그 주변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다. 젊다면 말이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일 년에 몇 번씩 시골집에 다녀갈 때면 나는 마을에 입성하는 의식이라도 치르는 냥  멀찌감치 서서 둥그나무 주변을 잠깐씩 바라보았다.


한해 한해 그 자리를 지키는 노인이 바뀌어 있을 뿐 나무는 변함이 없어 보였다. 둥그나무 아래에서 조는 듯 사색하는 듯, 지는 저녁노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자리에서 마을의 노인들은 하나 둘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거 같았다. 그들 중에는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도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저 나무 아래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무와 어떤 대화라도 나눴던 것일까?


내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거 같았던 ‘불혹’이라는 나이를 넘기던 어느 날..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시골집에 들르던 길.. 버스가 커다란 느티나무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아.. 둥그나무..  계절이 그러해서였는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왜 그렇게 나무의 색깔이 어둡고 늙어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무는 정말 늙어 보였다. 나무의 껍질이 시골의 땡볕 아래에서 늙고 말라버린 노인의 손마디처럼 거칠고 까맸다. 가지는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고 잘려나간 곳도 몇 군데 있었다. 내 또래 아이들 몇 명은 거뜬히 품어주었던 나무였는데 생각보다 작게 느껴졌다. 나무는 날마다 크게 자라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무도 늙고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저 왔어요. 참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여기서 많이 놀았는데, 많이 놀아주셨잖아요.”


나무의 숨소리와 이야기가 들리는 듯했다.


“그래 참 오랜만이구나. 그땐 그렇게 철부지 같더니 어느새 이렇게 자라 너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


한참 전에 어른이 되었는데 나무는 나에게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온갖 풍파를 다 겪고, 숱한 이야기들(개중에는 정말 듣기 힘든 이야기도 많았을 텐데)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평온한 저  노인의 눈에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일 터였다. 그의 모습을 찬찬히 보자니 ’위대함‘이라는 단어는 이런데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모습은 늙고 쪼그라들어 보였으나 그 기세는 웅장했고, 바람에 삐그덕 거리는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 중심은 더없이 안정돼 보였다. 오랜 세월 수행한 이들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독특한 에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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