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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Oct 06. 2024

단점인데요, 장점입니다

한때 캠핑을 좋아하던 친구의 남편과 친구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 친구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으로 학창 시절부터 소수의 몇몇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성향이었다. 말하자면 있는듯, 없는듯, 하지만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늘 거기에 반듯하게 자리하며 존재를 확실하게 알리는 그런 친구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제 할 일은 똑부러지게 했지만 주목받는 건 부담스러워 했다. 우아한 백조처럼 한가히 물위를 표류하지만 물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발을 구르고 있는 모습이랄까. 한마디로 조용하고 예쁘고 똑똑한 친구였다는 얘기다. 당연히 인기가 많았고, 여러 남자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본인이 그런 성향인 대신, 배우자는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넉살좋고 외향적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에게 끌린다고 했고 그런 사람과 결혼했다.


처음에 그들의 캠핑은 지붕없는 바깥에서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가족의 역사에 한페이지를 채워가는 이벤트같은 것이었고, 그게 딱 내가 부러워하던 포인트였다. 에너지가 없고 게으른 우리같은 부부에게 지붕없는 바깥에서의 식사는 남이 차려줄 때나 가능한 거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넷의 이벤트는 이쯤으로 충분하다고 여긴건지, 친구의 남편은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 친구, 친구의 지인, 배우자의 지인, 지인의 배우자로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급기야 동네 잔치라도 벌릴 기세로 캠핑의 세를 확장했다. 그러다 이제 커진 판에 비해 초라해서 구색이 안맞는 텐트를 비롯, 캠핑용품과 차량에 눈을 돌리고 있었고 평소 캠핑도 그다지 탐탁치 않아했던 친구는 이미 기가 질려 있었다. 가끔 호텔에 찾아가서 조용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여행이 식상할 무렵, 경게적인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터라 4인가족의 호캉스는 부담스러운게 사실었다. 그런데 캠핑에서 그보다 몇 배는 더 뽑아내는 남편의 능력에 친구는 기함했다.


그렇지만 나는 또 친구와는 다른 포인트를 짚어냈는데 부모님은 물론, 배우자의 부모님, 지인들과 지인의 자녀들에 이르기까지 항상 사람좋고 친절한 너털웃음을 짖는 그녀의 남편을 보면 까짓것 있는대로 끝간 데 없이 커진 판 위에서 널이라도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런 사람이랑 살면 세상의 시름을 잊게해줄 것 같다는 마음이었지 싶다.


한편 친구는, 야무지고 경제관념이 확실한 남자를 남편으로 둔 이를 부러워했는데, 그런 남자는 그러나 그 경제관념과 야무짐으로 인해 가족들에게도 본인의 경제관념을 주입시킬 가능성이 높다. 근검과 절약은 절대적으로 옳은 명제이므로 가족들을 설득할 명분 역시 충분하다. 그런 남편들은 대체로 집집마다 비슷한 ‘내가 나만 좋자고 이래?’ 라든가, ‘다 우리가족 좋자고 이러는거 아냐’ 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럼 나도 어디 다른 남자들처럼 술마시고 담배피는데 돈 펑펑 써볼까’ 까지 가야 논리의 완성이다. 딱히 반박한 말은 안떠오르지만, 그들은 숨막히 환장할 그들의 논리를 밑바닥에 깔고 잔소리도 수준급이다. 본인의 사전에 없거나, 상식선에서 이해가 충분치 않은 배우자와 자녀의 소비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참견한다. 술도 안마셔, 담배도 안펴, 인간교과서야, 그 남편들에게는 결격사유가 없으니 받아칠 말도 없고, 잔소리는 끝을 모르르는데 잔잔하고 끊임없이 지치고 피곤한 건 가족들이다.


그런 남편들은, 하지만 재테크, 보험, 부동산, 노후준비 같은 부부가 같이 결정해야 하는 경제적인 면의 대소사에서 귀찮아하면서 뒤로 숨거나, 한 것없이 무임승차한 주제에 상대방이 내린 결정에만 감놔라 배놔라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보다 더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상의하고, 검토하고, 결정하는 듬직한 면들이 이런 남편들에게는 있다. 또, 상대방 못지 않게 엄격한 잣대를 본인에게도 들이대기 때문에 함부로 돈을 쓰는 걸 용납하지 않고, 애먼 호기심이나 허튼 객기 같은 게 없다. 한마디로 바른생활이 인간으로 태어난, 인간교과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분명히 경제관념없이 이리저리 흥청망청 돈을 쓰고 주변에 친구랍시고 실속없는 어중이떠중이들만 많아보이는 이전 남자친구가 싫어서, 경제관념이 확실한 남자를 선택했는데 실은 내가 잔소리듣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절대 술은 안마시는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 결심했지만 술만 안마시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까지 썩 싫어하고, 배우자의 부모님, 자녀의 친구들까지 다 데면데면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사람은 아닐지, 살펴봐야 한다.


세상이 변하면서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원하는 부분도 조금씩은 바뀌겠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최상위에 랭크되는 내용은 알뜰하고 살뜰하면서 예쁜 여자 라든가 성격좋고 세심하며 가정적인 남자라든가 그런 내용들이다. 연애시절에는 물론 알뜰살뜰한 척을 할 수도 있고, 예쁜척을 할 수도 있다. 성격이 좋은 척을 할 수도 있고, 세심하면서 가정적인 척도 가능하며, 그 모든 걸 다 합한 척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잘보이려고 노력하는 상대에게 자신이 가진 여러가지 가면 중에서 가장 상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면을 쓰고 만나면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 가면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가능한거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안타깝게도 같은 문을 나서서 가면을 쓴 상태로 보내다가도 다시 같은 문을 열고 들어와 가면을 벗은 모습까지도 다 보여주는 것이 근간이다. 더이상은 서로의 장점만을 취하는 게 불가능해지고 그 장점 뒤에 세트처럼 따라다니는 단점도 같이 보게 된다. ‘알뜰살뜰‘ 과 ’예쁜‘ 은 조금만 따져봐도 사실 서로 상극인 형용사다. K-뷰티, K-성형처럼 국민 모두가 미감이 높은 나라에서 얼마나 자신에게 투자하고 관심을 가져야 예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쉽다. 성격이 좋고 호탕한 사람이 가정에서만 세심하게 자신의 최대 무기이자 장점인 성격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바깥에서의 장점이 가정에서는 단점으로, 사회생활할 때의 단점이 연인으로서는 장점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장점은 그저 장점이고, 단점은 그대로 단점이기만 할까.


결혼생활이란 애인의 장점을 배우자의 단점으로 둔갑시키고, 단점은 장점으로 탈바꿈시키는 인생의 장난이다. 단점과 장점, 장점과 단점. 그 둘은 연애기간동안 가장 먼 대척점에서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결혼을 하게 된 순간 기어이 손을 맞잡고 나를 조롱한다. 그러니, 이상형을 이상형으로만 보지말고 이리보고 이면도 확인할 일이다. 좋아만 보였던 그 점이 나를 괴롭히는 면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여지조치 두지 않았던 제외 1순위들도 고려대상에 넣어본다면, 그들에게서도 의외의 장점과, 배우자로서의 강점이 발견될 수도 있다. 연애가 아닌 결혼생활에서는 영원히 단점이기만 한 점도, 영원히 장점이기만 한 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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