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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Oct 09. 2024

화해의 기술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나는 미성년자 시절에 부모님이 언성을 높여 싸우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건 전적으로 엄마의 노고와 공이지만 어쨌든 눈앞에서 두 분이 싸우시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좋았느냐, 아니다. 자랑하는 것이냐, 그것도 아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이 있다는 걸 내 관점에서 말하고자 함이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걸 보지는 못했지만 둘 사이에 한랭하고 건조한 기류가 흐르고 식탁위에 웃음이 적어지면 두 분이 다투셨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가 다시 식탁위로 온난하고 다습한 전선이 형성되고 대화가 살아나면 두 분이 이제 화해를 했구나, 라고 어렴풋이 느꼈고 그게 맞았다. 그 때 나에겐 다툼과 갈등이란 그저 ‘무마시키는 것’ 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화가 누그러들면 해결되는 것. 싸움이나 갈등이란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명료한 문제였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연애를 하고, 그러니까 타인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또 결혼을 하게되면서 숱한 갈등과 불화를 맞닥뜨렸고 내 생각이 한참이나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간의 갈등, 그 중에서도 애인이나 배우자와의 갈등은 덮으면 덮을 수록 환기가 안되는 밀폐공간이나 흐르지 않는 물웅덩이와 같아서 고이고 쌓이다가 종내 폭발하듯 터지는 경우도 있었고, 손쓸 수 없어 썩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단순히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거나, 실수를 했을 경우에는 사과를 하고 기분을 풀면 그만이지만 그보다는 근원적인 갈등의 씨앗이 되었던 문제는 결국 문제의 해결로만 끝을 볼 수 있다. 싸움의 기술로 다방면으로 싸워봤다면, 이젠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싸우는 모습을 ‘안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는 모습을 꼭 ‘보여주는’ 것이다. 전문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보통 부모의 싸우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전쟁처럼 느껴지고 존재의 공포이며 집을 잃는 불안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춘다. 아이가 없는 집이라 하더라도 싸우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심호흡을 하고 한템포 쉬면 화가 가라앉는다는 얘기를 한다. 즉, 화를 누그러뜨려 싸우지 않는 데에 힘을 쓰는 조언을 한다. 물론 끝을 향해 치닫는 싸움이나 물건을 부수고 던지고 깨는 폭력적인 싸움이라면 위의 이야기들이 모두 맞다. 그러나 싸우지 않는 부부생활이 가능한가. 전쟁같은 싸움만이 싸움인 것도 아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의 근원은 썩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싸우지 않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것인가. 늘 화목하고 단란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갈등은 드러내놓고 직시하고 둘이 함께 봉합하는 법,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화해에 이르는 법을 반드시 함께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문제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다. 고이고 썩어버려서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관계에 파탄이 오기 전에 화해할 수 있다. 그런걸 보고 자란 적이 없는 나는, 다투면 입을 꾹 닫아버리는 아빠와, 어떻게든 무마시키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엄마 사이에서 싸움이란 그저 어물쩡대며 넘어가면 되는 것, 적당히 얼버무리며 없던 일로 만드는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싸우는 이유의 9할 이상이 지나치게 효자라서 기준없고 제한없이 본가에 금전적, 정신적 지원을 하는 아빠때문이었는데 말이다.


사람은 안바뀐다.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고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라 했다. 절대 안바뀌는게 사람인데 나와 서열이 비슷한 이를 내가 바꾸고자 몰아부치고 쏘아대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필사적이 되기때문에 더 바뀌지않고 삐뚤어지거나 오히려 관계가 악화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먼저 바뀌어야, 상대방도 바꿀 수 있다. 그걸 남편을 통해 봤다. 남편은 첫째가 다섯살이 되어서야 공무원이 된 나에게 둘째가 생기고부터 나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을 전적으로 돌보는 게 어떻겠냐는 회유와 설득을 계속해서 해왔다. 그 땐 그게 집요한 종용으로 느껴졌다. 비슷한 서열인 남편의 설득이 본능적으로 나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졌달까. 객관적으로 내가 출퇴근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나의 직장생활로 인해 행복한 가족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방치된 아이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우리 부부, 그 때마다 동원되는 친정 부모님까지, 나하나 포기하고 내가 가정을 돌보면 되는 일이었다. 왜 부인만 포기해야 할까, 남편은 무얼하고 있냐, 묻는다면 경제적인 면까지 살펴봐야 한다. 왕복 출퇴근만 3시간, 둘째까지 데리고 출퇴근을 하면서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에 반해 남편의 5분의 1도 안되는 지나친 박봉과 조직내 좁은 나의 입지. 앞으로 받을 연금과, 직장에서 성취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을 자아의 실현까지 조목조목 아무리 따져보아도 나의 직장생활은 수지타산이 안맞는게 확실하긴 했다. 이런 점들을 남편이 짚을 때마다 전부 다 너무 맞는 말이라 더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2년이 넘는 기간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둘째는 데리고 출퇴근을 반복하며 꾸역꾸역 생존해내는 나를 보더니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체념을 하게 되었나 보았다.


남편이 한 발 물러난 시점에서 얘기해왔다.  “당신이 나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니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은 커갈거고 그러면 일하는 엄마를 멋지게 생각하겠지,뭐.” 분명 인정이 아니라 타협이었지만 맥빠지는 남편의 포기를 보니 나는 문득 우리가족의 삶의 질과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곁에 있어주지 못해 내가 잃는 것들의 기회비용, 우리엄마의 굽은 허리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내 동기부여가 안되어 동력을 잃은 권투선수처럼 힘이 빠졌고, 이제 그만 육아휴직에 들고 싶어졌으며, 육아휴직을 하게 된 지금은 마침내 돈 많은 전업주부를 꿈꾸는 솔직한 심정이 되었다. 남편은 짐으로써 이김을 쟁취했다. 본인과 타협해서 나를 복종시켰다. 이젠 그만 포기하겠다는 그의 말 한마디가 날서있던 내 마음을 무장해제했다. 내가 태도를 먼저 바꾸고 내가 변한다는 제스처를 취해야 상대방도 경계태세를 풀고 본인에 대해 제 3자의 입장으로 바라볼 여유를 갖게 된다.


보통 우리는 싸우고 나면 싸움의 원인때문이 아니라, 싸움의 과정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왜 싸웠는지는 잊고,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집착하느라 상대방을 더 미워하게 된다. 그게 화해를 막는다. 그러니, 화해를 할 때에는 서로 본인이 어떤 사람이 되겠다든가, 뭘 더 잘하겠다든가를 약속하기 보다 ‘절대’ 하지 말아야할 것들에 대한 선을 먼저 정하는 것이 좋다. 좋은 배우자가 되겠다기보다 나쁜 배우자가 되지 않는 걸 목표로, 넘지 말아야 할 한계를 정하는 것이 훨씬 실현 가능하다. 그게 나에게도 편하다.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상대방이 싷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더 수월하다. 행복은 보통 기분으로 저장되지만, 불행은 사건으로 기록되는 탓에 분단위, 초단위로 기억이 저장된다. 분명 그것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얘기했는데 자꾸 선을 넘어오는 사람, 그래놓고 이벤트로 대충 넘기려는 사람, 애교로 적당히 무마시키는 사람, 앞으로 내가 잘한다고 구체적이지 않고 두루뭉술한 약속을 하는 사람은 최악이다. 이벤트는 순간이고, 일상의 불행은 오래간다.



“행복한 집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있다.“

<안나 까레니나>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불행이 훨씬 구체적인 감정이라 그렇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한참 전에 불행은 이미 제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행복은 제거된 불행 위에 싹을 틔운다. 그래서 싸움은 금기가 아니다. 일상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갈등이다. 일상에 이미 싸움의 씨앗들은 산재해있기 때문에 화해도 사실 별 게 아니다. 우리가 싸운 이유가 된 문제를 풀어놓고 짚어가며 잘잘못을 가리고, 사과와 반성을 하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차근차근 짚는 과정이다. 어린시절부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른들로부터 싸움 자체가 금기시되는 환경과 분위기에서 자라왔고, 글서 화해역시 딱히 배워본 적이 없다. 일견 맞다. 싸우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잘 싸우고 잘 화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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