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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Oct 07. 2024

싸움의 기술

역학관계와 주도권

인간은 둘만 모여도 권력관계를 형성한다. 완전히 평등하고 양쪽의 무게추가 똑같은 관계란 세상에 없다. 어느쪽으로든, 얼마만큼이든 기울게 되어있다. 누구나 갑이 되고 싶어하고, 을을 부리고 싶어한다. 태초부터 갑이 되는 쪽이 살아남기 쉬웠기에 발현되어온 생존본능같을 것들이지 싶다. 사랑에 빠지는 연애 초기에 상대에게 희생하고 헌신하며 스스로 을이 되기를 자처했던 이들도 연애가 무르익고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면 이내 본색이 드러나고, 갑이 되고 싶어진다. 내 몸이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진짜 권력구도와 역학관계는 이 순간 결정된다. 그래서 결국 결혼이란 지금까지의 관계가 연습게임이었다고 비웃기라도 하듯 기가 더 센 사람이 갑이 되고 기가 약한 사람을 을로 만든다. 기센 사람이 이긴다. 기게 세다는 것이 꼭 물리적인 폭력이나 공격을 뜻하진 않는다. 대화를 한 줄 모르고, 공감할 줄도 모르며, 무턱대고 우기고, 자신이 모든 결정의 우선순위인 사람이 보통 기가 세고 갑이 되기 쉽다. 대화를 원하고, 맞춰갈 준비가 되어 있고, 공감을 잘 하는 사람들이 을이 된다. 각종 결혼상담 프로그램을 봐도 늘 괴로워하고 울고 있는 쪽은 을이다. 그래서 문제다. 문제인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사람이 갑이되는 구조, 그게 결혼이라서.


그러니까 내가 불행에 빠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싸움을 해보고 결혼을 해야 한다. 종종 결혼할 사람과는 사계절을 다 함께 지내봐야 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거기에 더해 계절을 함께 보내면서 싸움, 정말 싸움, 그야말로 밑바닥까지 내보이면서 밑장까지 다 털어보이면서 하는 그런 싸움을 반드시 해보고 결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앞에서 동굴로 숨어버리는 사람인지, 화가 풀릴 때까지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인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관계개선의 의지가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리트머스 시약지에 색이 서서히 차오르듯, 그렇게 결혼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가려진다.


싸우면서 판단해야 할 일은 우리 관계를 내가 제어할 수 있는지, 상대방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관해서다. 제어가 안되고 감당이 안되는 사람이 있다. 길거리에서 언성을 높여서 싸우려 드는 사람이라든가, 내가 회사에 있을 때나, 부모님과 있을 때에도 상관없이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그 관계를 끌고 가봐야 헤어질 시기만 늦추고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내가 되돌리고 싶을 때, 대화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 상대방이 사과를 하면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어야 결혼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둘 사이의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함께 이야기하고, 바꿔나갈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갈등 상황이 되었을 때, 회피하고 동굴로 숨어버리거나 반대로 본인의 화가 풀릴 때까지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아닌지 싸우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통 우리는 싸움은 웬만해선 하지 말아야 하며 좋은게 좋은거라고 가르치고, 어려서부터도 그렇게 교육받고 자랐기 때문에 참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싸움 자체를 꺼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생활에서는 그게 가장 잘못된 생각이다. 평생 함께 살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싸움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가정생활에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 말하자면 업무분장을 위해서 루틴이나 규칙을 꼭 함께 정할 필요가 있다. 그 때 정하고 넘어가야 결혼생활이 그나마 편하다. 또한, 결혼을 하게 되면 연애 시절 다툴 때 하던 나쁜 버릇이나 싸움 패턴 들이 몇 곱절 심해진다. 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라는 옛 어른들의 말이 여기서 나온거다. 다음번엔 안그러겠지, 또 그러면 나는 못산다, 한 번만 용서해줘야지, 해도 다음번에는 더 심해지면 심해지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결국 그건 내 마음을 다잡는 일이지,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둘이 연애기간 중에 안싸우고 잘 지낸다고, 서로 잘 맞는다고 여기는 것도 안일한 생각일 수 있다. 연애의 마무리와 결혼에 이르기까지에 걸쳐 하는 싸움은 그 사람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들여다 볼 기회다. 두 사람 사이의 질서와 역할, 규칙을 정하고 나와 너의 역학관계를 규정지을 필수적이면서도 마지막이 될 과정이다. 불만이 생기거나, 내가 관철해야 할 의견, 조율하고 싶은 부분을 반드시 짚고 갈등과 반목을 거쳐 합의를 이루어 보는 일련의 과정들이 이후의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 때도 조용하고 차분히 갈등을 마무리짓는 사람이라면 그제서야 잘 맞는 사람이라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치고받고 언성을 올리고 다투는 것만 싸움이 아니다.  


물론 누구나 갈등은 싫고, 사랑하는 사람과 쓸데없는 감정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 얻을 것 없는 싸움은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서로를 피폐하게 만드는 관계의 독이다. 특히 결혼 준비 과정에서는 남녀 모두 연애를 할 때보다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욕구가 강한 상태이기 때문에 둘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일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싸우는 것 자체가 둘 모두에게 손해인 데다가 싸우는 이유나 목적도 굉장히 사소하고 불명확할 때가 많다. 중요한 건, 사소하게 시작한 싸움을 사소하게 멈출 수 있는지,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더 큰 감정의 골을 만들고 싶지 않을 때 빠져나올 수 있는지 살펴보자. 원래대로 돌이킬 수 있고, 사소한 다툼을 사소하게 끝낼 수 있어야 서로에게 괜찮은 배우자다. 싸움 자체에 빠져 상대방을 미워하고 비난하는 데만 에너지를 쓰는 사람, 그래서 싸움을 되레 크게 키우는 사람은 최악의 상대가 될 수 있다.


연애나 결혼생활에 안내자나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제3자 입장에서 우리의 싸움을 지켜봐주고 일목요연하게 시시비비를 따져준다면 얼마나 좋을 까. 그러나 우리 둘 뿐이다. 오롯이 우리둘이 당사자이면서 관찰자가 되어 싸우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결혼생활이란 어쩌면 줄곧 휴전인 상태로 나아가는 종전없는 전쟁일 지 모른다. 허나 전쟁은 종전이 목적이다. 싸움없는 종전이란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위한 싸움의 기술이 절실하다. 생산적으로 잘 싸워보시길 권한다. 그래야 불행의 씨앗 하나를 제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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