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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Oct 04. 2024

너의 외로움이 나를 부를 때,


간은 굉장히 이성적이고 계획적이며, 큰 결정과 중대한 결심을 해야할 때 심사숙고한 뒤 결론을 내린다많이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억원짜리 집을 사거나, 매순간 가슴속에 품고다니던 사직서를 냅다 던져버리는 순간과 같은 큰 결정은 놀랍게도 그 크기가 커질수록 무언가에 눈멀었을 때나, 살짝 미쳐있을 때 하게 된다.  감정적으로 결론을 내려버린 다음, 그게 맞는 논리적 이유를 끼워맞추는 것이다.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붙이면 내 선택은 옳은 것이 될까. 결혼도 마찬가지다. 심사숙고하고 오랜 고민끝에 배우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려하지만 사실 결혼도 상대에게 눈이 멀어있거나 콩깍지가 씌였을 때 결정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내 여생을 모두 걸고 선택해야 하는 배우자의 면모를 등잔 밑에서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반드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신호들이 분명 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얘기할 때, 가장 위험한 대답중 하나가 ‘외로워서’ 라는 건,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 해보고 나서야 결혼은 안하면 외롭지만, 했어도 외로운 거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혼자들이 다시 태어나면 결혼을 절대 안하겠다라든가, 혼자 살고싶다거나 너는 결혼하지 말고 자유롭게 혼자 살라고 하는 푸념들은 절대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니라 진심어린 조언이다.


아가페적인 인류애와 에로스적인 연인간의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고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대부분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만 연민과 사랑을 동일시할 것 같지만, 실은 누구나가 착각한다. 사랑에 빠지면 본인이 상대방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을 거라고 오해하고, 상대가 내 외로움을 나눠줄 수 있을 거라고 오인한다. 외로워보이는 사람들이 불러일으키는 연민이나 동정같은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가정환경이나, 성정과정으로 인한 결핍이 있거나, 원초적인 외로움이 있는 사람과는 절대 그 사람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연애와 결혼을 결심해서는 안된다.


보통,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결혼하면 배우자와 모든 걸 같이하고 싶어하거나, 혼자 동굴로 숨어들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다. 취미생활도 식사는 물론 운동과 산책 등 한몸처럼 함께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어떻게 배우자와 취미생활과 대화, 생활방식을 공유하는 건 줄 몰라 혼자 방으로, 혹은 밖으로 침잠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본인이 내킬 때는 모든 걸 같이 하고싶어 하다가 불화나 갈등이 생긴 순간 도망가 버리는, 그러니까 위의 두가지를 함께 다 가지고 있는 최악의 경우도 있다.


모든 걸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경우, 연애시절에 그 점이 상대에게 어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때는 둘 다 사랑에 눈멀어 있을 때이기 때문에 매일을 봐도 또 보고 싶고 연애할 시간은 늘 모자라기만 해서, 결혼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시작되면 누구라도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필요해진다. 밖에서 축난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하고, 화가난 감정을 다스리기도 하며,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하며 ‘나’ 를 찾아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족이고 부부이니까 공유해야 하는 부분과,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존중받아야 하는 영역은 엄연히 다른 부분으로 서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 혼자있는 시간과, 외로움에 대한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런데 혼자 시간을 보낼 줄 모르고 외로움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내가 필요할 때 내 옆에 있어줘‘ 라는 논리로 상대를 옥죈다. ‘사랑하니까 함께 해야 하는거야’ 라는 말로 상대방의 영역을 지키려는 노력을 무력화하고, 영역을 침범당한 사람은 점차 도망이 가고 싶어진다.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는 도구로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 외로움이라는 건 아무리 옆에서 챙겨주고 맞춰주고 돌봐줘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과도 같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보다, 상대를 더 강도높게 통제하고 옥죄는 경우가 더 많다. 정작 본인은 자신의 문제를 모르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렇다면 동굴로 숨어드는 사람의 경우는 어떨 것인가. 이런 이들은 보통 연애때부터 상대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이나 가고 싶은 곳이 없고, 해본 것도 없어서 상대를 리드하거나, 헌신하는 연애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해보고자 시도하나 서로 익숙해지는 시기가 오면 대부분 집에서만 데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사랑하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누어야 하는 지 모르고, 딱히 취미도,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사람은 외롭고 고독해보이며, 한편으로는 순수해보인다는 그 이유로 이성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불러일으키거나, 어딘가 사연있어보이는 그 부분이 상대에게 매력으로 어필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관계를 진전시키고 진지하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외로움을 나에게 기생하면서 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가, 혼자 숨어서 외로운 채로 그저 있고 싶어 하는가, 그 중간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정성적 외로움의 스펙트럼안에 있는 사람을 찾는 일, 물론 어렵다. 아주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우니까. 그러나 그것이 나를 지치게 할 때.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내 에너지를 필요로 할 때는 그 관계에 대해 반드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알랭드보통은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남녀간의 사랑이 부모에게서 받았던 조건없는 사랑을 다시 한 번 받길 바라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에서도 연인들이 싸우게 되는 발단을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처럼, 이기적이고 조건없는 것들을 상대에게 바라면서부터,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얘기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솔직해지며, 어느 정도는 상대방이 응석이나 투정도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한 명 쯤은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결혼을 하게 되면 지인이나,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걱정이나 고민들, 여러가지 고충들을 배우자가 들어주기를, 함께 고민해주기를 바라고 사실 그렇게 하는게 맞다.


문제는, 원초적인 외로움을 가졌거나, 외로움을 혼자 해결할 줄 모르는 사람은 끊임없이 나를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생각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이다. 모든 걸 같이 하기 원하는 배우자를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하거나, 가정을 등한시하하고 나를 방치하는 동안에도 집안은 굴러가야 하며, 나는 그걸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몇 배의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외로운 배우자는 나에게 배우자, 애인, 친구, 부모, 자녀들의 부모 역할까지 바란다.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어 있다. 늘 어른스러워야 하고, 그런 역할만 주어지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린아이가 되어 투정을 부리고 고민을 털어놓고, 조건없는 사랑을 바랄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배우자와의 결혼생활은 늘 고달프고 서글프며 버겁다. 정작 혼자서도 잘 지내던 내가 부철 데 없고 비빌 데 없이 점점 외롭고 우울한 사람이 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먼저 꾸준히 ‘집에서만’ 데이트하길 원하는 사람, 무계획‘만’ 으로 데이트에 임하는 사람은 다시 생각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데이트가 늘 특별한 이벤트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집에서 만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일의 우선순위에서 데이트가 늘 최상위에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나와의 만남에서 늘상 아무런 준비가 없고, 설렘과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연애시절부터 무성의한 사랑을 한 사람이, 결혼하고 나아질 리는 만무하다.


한편, 연애할 때 동성친구와 지인들과 연락이 끊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이들도 쉽게 넘겨선 안된다. 본인이 연애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은 상대방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나 생활, 활동에 참여하고 집중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대에게도 모든 주의와 관심을 본인에게만 집중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사랑과 착각해선 안된다.


마지막으로 아무런 취미생활도, 세상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흥미도 없고,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경계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런 이들은 태생적으로 건조하고 마음이 매마른, 원초적 외로움을 가진 사람이라서 본인이 외롭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세상을 부정적이고 잿빛으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랑과 따뜻함을 누군가와 나눌 줄 모른다.


혼자서도 잘 살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 결혼해서도  잘 산다. 외로움을 컨트롤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이 상대의 외로움에 내 곁을 내어줄 줄도 알고 내 외로움을 적절히 위로받고 스스로 다독일 줄도 안다. 너의 외로움이 나를 부를 때, 많은 사람들은 그 때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사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인간은 두 막대기가 서로 기울여 지탱하고 있는 사람인 ‘人‘ 이라는 한자처럼 분능적으로 누군가를 향해 기대고 싶어하고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사랑과 결혼은 인류애로 하는 일이 아니다. 그건 사회나 시민단체에서 할 일이다. 연애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에로스로 하는 것이다. 철저히 나의 행복을 위해, 불행하지 않기 위해 하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밑이 빠져서 채울 수 없는 외로움으로 누군가가 당신을 부를 때, 다가가지 말고 오히려 한 발치 떨어져서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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