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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Sep 30. 2024

좋은 애인은 쉽지만 좋은 배우자는 어려운 진짜 이유

책임이 누구에게 전가되는가.

좋은 애인이 되기란 쉽다. 본능에만 충실하면 되는 까닭이다. 서로 감출 수 없는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원하지 않아도 먼저 무언갈 해주고 싶고, 상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도파민은 연애를 시작하고 짧게는 3개월에서 아무리 길어도 3년밖에 유효기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설레고, 보고 싶고, 해주고 싶고, 희생하고 싶은 시기가 지났다면 사랑과 연애는 끝인가, 아니다. 그때부터는 인지상정이 생긴다. 애인이 야근에 시달리면 “힘내” 라는 말로 위로하고,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얼마면 돼?” 라는 음에도 없을 패기넘치는  한마디면 전화기 너머 이깊은 위로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친구나 회사 상사와 갈등을 겪으면 얼굴도 모르는 그들을 같이 흉보고 공감해주는 것으로 좋은 애인은 역할을 다한다.


좋은 배우자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서 출발한다. 배우자가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그 돈은 내 돈이기도 하다. 머저리같은 배우자가 내 돈을 잃었다. 맞벌이 부부사이에 정해진 집안일과 역할이 있을텐데, 배우자가 야근에 시달린다면 그이가 못한 일은 내몫이 된다. 나도 힘든건 매한가지라, 힘내라는 말이 차마 입밖으로 나오기 전에 “그럼 빨래는 누가할건데?”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이 먼저 입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상대방의 경제적 손해, 육체적 힘듦, 정신적 서글픔이 전가되는 대상이 그어떤 누구라도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같이 슬퍼하고, 힘이 되어주고 싶고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짐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짐’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부는 재산, 자식, 미래까지 모든 걸 공유하고 나누고 짊어지는 사이다.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건 각자의 역할과 본분이 있다는 얘기지, 네 짐까지 내 등에 실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걸 많은 부부들이 오해한다. 그래서 자의적으로 또 타의적으로 내가 맡은 역할과 일을 상대에게 전가한다.


특히, 육아를 하면 부부가 당장 헤어질 듯이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고 밑바닥까지 보이고 막다른 곳에 이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육아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우리는 충분히 이성적이고 어른스럽게 대답해줄 수가 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나는 다 알고, 시간이 약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 몸이 힘들다고 괜히 남편(아내) 에게 짜증내지 말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기분전환하라고 커피쿠폰이라도 보내줄 여유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러나 배우자와는 다르다. 배우자가 야근때문에, 약속때문에 육아에 참여하지 못하면 그건 오롯이 내 몫이 되고,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육아로 배우자가 힘들어하면 내가 그걸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보통은 그걸 외면다. 나도 힘드니까. 갈등이 거기서 시작된다.


떠안은 짐이 나에게 전가되느냐, 안 되느냐, 그 차이가 이렇게나 무섭다. 아무리 오랜기간 연애를 했어도, 결혼해서 헤어지는 커플들이 있다. ‘책임의 전가’에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이들은 그렇게 오랜 기간 사이좋게 잘 만나놓고 왜 결혼을 해서 헤어지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 성격도 비슷하고, 잘 맞아보이는 문제없는 커플도 결혼하면서 너의 짐과 나의 짐의 합계가 1이 되는 순간,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책임을 지고 해내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말만으로 위로하고 공감해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기는 결혼을 하면 반쯤은 끝이 나고, 출산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끝난다. 결혼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하지 못한 집안일, 역할, 짊어진 짐을 내가 다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에 몇절 더 어려운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가 되고, 첫째와 둘째를 출산하고, 남편이 몇 번의 이직을 거듭하면서 점차적으로 알게 되었다. 연애할 때는 그와 나도 사이가 좋았고 이 사람을 매일 보지 못하는 게 아쉽고 안타까워서 결혼을 선택했다. 결혼은 연애와 달랐고, 우리는 상대방을 향해 ‘변했다’ 는 말을 달고 살았다. 물론 변한 것도 맞다. 도파민은 애저녁에 바닥났을 거고, 그가 변한만큼 나도 변했으니. 그러나 그보다 연애시절에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가 너무 쉬웠기 때문에 서로 속고 속였던 탓이다. 우리 그릇은 원래 이정도다. 상대방의 짐을 내가 떠안기 싫고, 육체적으로 힘들 때는 더더욱 상대의 일을 책임지기 싫은, 지극히 이기적인, 딱 그정도. 상대방도 나도 나빠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결혼후 여러가지 일들을 겪어내고, 두 번의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나와 남편이 아직 배우자로 자신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걸 한 번 복기해본다.


남편은 ’주둥이 사랑꾼‘ 이다. 도와주지 못할거면서 사랑한다, 미안하다, 힘들어서 어쩌냐, 입으로는 사랑꾼도 이런 사랑꾼이 없다. 말은 아무리 공짜라지만 정말 공짜라고 아무렇게나 남발하지만 집안일은 손도 까딱 하지 않는다. 첫째가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집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었을 때, 남편은 제3자였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도 절대 깨는 법이 없고, 목욕부터 식사까지, 평일에는 한 번을 해본 적이 없다.


아내는 ‘주둥이 살림꾼’ 이다. 그녀는 말로는 냉장안에 들어온 식재료는 절대 썩은 채로 나갈 수 없다, 하고 육아용품부터 살림까지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해서 사지만, 그건 냉장고 안에 뭐가 있는지 알 때 얘기고, 실은 들어있는지 모르는 식재료들이 넘쳐나므로 그것들이 썩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인터넷 최저가의 늪에 빠져 안사도 될 물건까지 최저가를 검색해서 사는 건 과연 살림을 잘 하는 것인가.


남편은, 그 때 당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6시 출근과 자정 퇴근을 밥먹듯이 했다. 토요일 오전에는 영어학원엘 다녔고, 그에게 가족과 보내도록 허락된 시간은 그러니까 일요일 하루뿐이었다. 그래서 일요일 하루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족들과의 화목하고 단란한 시간도 중요하지만  외벌이이면서 월급쟁이로 성공할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유한하다고 여기는 남편과 아내는 같은 생각이다. 아내는 한편으로는, 일찍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꼭 같이 밥을 먹고 티비앞에 난닝구만 입고 비스듬히 누워서 코를 파며 리모콘을 두드리는 남편을 보는 것보다는 눈앞에 안보이는 게 낫겠다고 스스로와 타협도 해본다.


아내는, 육아를 전담하면서 끊어진 인연들이나, 단절된 경력에 대해 못본 척한다. 아쉽긴 하지만 그녀의 생활이나 자존감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주부에게 돈을 아끼는 일이란 그만큼 귀찮음을 무릅쓰거나 돈대신 몸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만 육아를 전담하면서 절약까지 하는 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고 그 스트레스와 피곤함과 짜증은 전적으로 아이에게 가게 되어 있었다. 남는 시간에는 커피도 마시고 쇼핑을 하거나 낮잠을 잤다.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보냈고 적당히 배달 이유식과, 포장음식을 섞었다. 설거지나 청소도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의 도움을 받으며 육아를 이겨냈다. 실은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를 사라고 독려한 것은 남편이었으니, 설거지와 청소의 책임이 본인에게 넘어올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가전제품을 사라고 한 것이기는 하나, 결과적으로 아내도 남편도 만족했다. 그들은 그들의 '공공의 짐'을 가전제품들에 일임하는 데 성공했다. 남편은 살림을 전담하는 아내에게서 돈이 새고 있음을 직감했지만, 아내의 고충과 힘듦을 본인이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적당히 입을 닫는다.


내가 그 시기를 이겨낸(?) 방법이다. 남편에게도 아마 ‘이겨내야 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싸울 고비를 넘기고, 어물쩡대며 어느 정도는 모른 척을 하고, 또 어느정도는 제3의 도움을 받고, 또 한스푼 정도는 배려가, 포기와 체념도 한방울 정도씩 들어가는, 그런 것들을 한 데 넣고 저어서 간신히 유지되는 게 결혼생활아닐까.


우리는 모두들 좋은 사람이었던 그 사람이 결혼을 하고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다. 본래 결혼의 속성이 그다. 궁금하고 알고 싶었던 사랑하는 이와 모든 걸 공유한다는 책임이 그렇다. 상대방이 책임지지 못한 일은 반드시 내 책임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는 것. 책임의 합계가 어떻게든 1이 되는 것. 그게 결혼생활이다. 그 짐을 떠안을 자신이 있는가, 책임을 감내할 수 있는가, 그게 '내가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를 판단 첫 질문이 될 것이다. 리고 이 결혼의 속성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훨씬 쉽게 상대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 독박육아를 감내한 나처럼, 외벌이를 짊어진 남편처럼, 너그러움만으로도 지나가게 되는 힘든 시기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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