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rden Aug 16. 2024

관찰자의 시선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전부인,



내가 두발로 딛고 서 있는 나의 위치란 타인과의 비교에서 알 수 있다. 진짜 부자는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서 기인한다. 가난한 삶이라는 게 있다는 건 알지만, 가난한 세계에 발들여본 적이 없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특별한 순간들을 진열하는 것도 비슷한 논리다. 그것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면 거기에 굳이 올릴 이유가 없다. 값비싼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사치품의 소비, 선망의 장소로의 여행을 늘상 누리는 사람이라면 일상생활을 전시할 필요가 없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이라이트가 될 만하다고 생각하는 특별했던 순간들을 갈무리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러니까,두 세계에 모두 속해보았던 사람이 알 수 있다. 어떤 게 다르고 어떤 게 특별한지. 언젠가는 관찰했을 것이고 또 누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셋은, 강남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관찰자가 되었다. 셋이라 함은 나와 남편, 그리고 첫째다. 우리는 한 집에 사는 가족이었지만, 각자의 세계가 있었고, 거기서 각개약진 중이었다.


“엄마 이동네 애들은 좀 이상해”


첫째 학교에 처음 가고나서 며칠만에 나한테 했던 얘기다. 전학을 갔던 첫날, 잔뜩 긴장했지만 짓궃은 아이는 없었다며 안도했고, 첫째는 곧장 학교아이들에 섞여들었다. 하지만 이 동네 아이들이 이전 동네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 빠르게 알아챘다. 혹시라도 이상한 답이 나올까, 어떤 점이 다르냐며 조심스레 묻는 나에게 첫째는 의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 여기 남자애들은 내이름을 부를 때 성을 떼고 불러. 너무 다정해서 징그러워.”


다정해서 징그럽다니. 가감없는 10대 초반 사춘기 소녀의 표현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어렴풋이 와닿았다. 첫째는 이 동네 아이들은 다들 친절하고 건전해서 재미가 없다는 얘길 하는 거였다. 첫째또한 매사 조심스럽고 나서기보다는 듣기를 택하는 성향의 아이였는데도 그랬다. 장래희망이 굉장히 구체적이며 앞세울만한 취미생활이 하나쯤 있는 것도 특이하다고 했다. 첫째는 어릴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미술학원도 오래 다다. 그래서 늘 그림에 관해서 주목을 받고,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위치였다. 평범한 여느 부모가 그러하듯 미술을 전공하는 건 안된다, 고 주장하는 내앞에 첫째는 그럼 뭘 장래희망으로 삼아야할지 고민하는 아이였다. 그런 본인의 재능과 자부심이 여기서는 ‘보통의 취미’였으며 다들 미래에 무얼 하고 살지 꿈꾸고 있다는 얘길 듣고는 약간 상심했다. 그리고 영어학원엘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런 얘기도 해주었다.


“엄마, 여기 학원 선생님들은 내가 다쳐도 아무도 걱정을 안해줘.”


어휘가 한정적이라 정말 표면적인 의미만을 전달한 거겠지만, 무슨 얘기인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엄마들이라면 모두들 해내야 하는 일, 그시기 내가 아이들이 다닐 학원과 기관을 알아보면서 비슷한 것들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물론 내가 알아본 학원들은 대체로 학생수가 많은 대형학원에,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곳이긴 했다. 하지만 이전 동네에서도 그런 학원엘 다녔다. 이동네 학원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학생이 아쉽지 않다, 는 느낌을 주었다. 학생입장에서도 널린 게 학원이었지만, 학원입장에서도 널린 게 학생이었다. 수많은 수요와 공급이 쉴새없이 짝을 찾고 이동하고 끊고 옮기는 곳. 끝없는 물갈이와 순환이 이루어지는 곳, 그게 여기였다. 정을 나눈다는 건 도태와 같은 의미일지도 몰랐다. 사교육의 근간을 유지시켜주는 기본원리라고 그간 믿었던 친절이 나를 배신하는 느낌이었다. 특정 학원의 특수성이라기엔 여기저기 상담을 다녀봐도 다들 비슷했다. 이전동네도 수도권에서는 교육열로 빠지지는 않는 동네였다. 초등학교 후문에는 학원들이 빼곡했고, 선택지도 많았다. 선생님들은 과하게 친절하셨고, 아이에게 관심이 많아서 가끔 그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기와서 겪어보니 알 것 같았다. 부담스러운 친절과 관심이 일회적으로 그치면 가식이지만 계속되면 그게 어쩔 수 없이 돈에 기반한 관계라고 해도 아이에 대한 관심이란 걸 말이다.


아이들에 대한 심플한 무관심과는 대조되는 본인에 대한 디테일한 소개도 인상적이었다. 원장이나 강사들은 본인이 ‘강남키즈’ 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수도권 중소도시 출신인 나로서는 학원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식의 마케팅을 구사하는 걸 보며 어깨너머로 배웠다. 여기서는 그런게 중요하구나...... 어린 시절을 강남에서 보내고 대학과 사회초년생 시절을 거쳐 다시 자라던 곳으로 돌아왔다는 건, 교육특구인 이동네 정서를 책에서만 배운 게 아니라, 몸소 공기처럼 마시고 자란 사람이라는 증명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듣고보니 그냥 강남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대치키즈인지, 압구정키즈인지 콕 찝어서 본인이 자란 동네를 알려주었다. 강남을 떠나 사는 기간동안, 그들은 ‘강남’ 이라는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하는지를 배웠던걸까. 이사오기 전에도, 이사온 지금도 아리송하지만 나에게 강남은 그냥 강남일 뿐, 대치는 뭐며 압구정은 뭔지 딱히 관심을 가진 적도, 구별을 해본 적도 없었다. 자부심인지, 단순 사실의 언급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저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대화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나니 생각보다 많은 게 눈에 들어왔다. 압구정현대, 청담자이, 래미안대치팰리스, 도곡랙슬 등 이동네 아파트는 특유의 작명방식이 구체적인 동 이름을 건설사 이름 앞에 붙이는 거였다. 그렇지만 예외가 되는 동이 하나 있었으니, 그곳은 비교적 세간에 이름이 덜 알려진 강남구 세곡동이었다. 이 곳의 아파트들에는 대체로 ‘강남’이 붙었다. 강남한양수자인, 강남데시앙파크, 강남한신휴플러스 등등, 아직은 세곡동이라는 동의 명칭보다 강남이라는 네이밍으로 마케팅하는 게 더 효과가 있을 동네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라고 남편과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마치 어떤 정치인 탓에 이미지가 안좋은 대장동에 ‘남판교’ 를 끼얹고, 인덕원이 뜨니까 걸어서는 40분도 넘게 걸리는 곳에 있는 아파트 이름을 변경하면서까지 인덕원을 붙이는 식이랄까. 동네 이름만으로도 장사거리가 되고, 마케팅 수단인 되는 자본주의의 민낯 여기서도 본다.


이방인이 되어 관찰과 비교를 택한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누리는 쪽을 택했다. 남편은 당근부터 시작했다. 이전 동네에서는 늘 '팔러만' 다니던 남편이 여기에 이사오면서부터는 '사러도' 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이 사오는 물건들을 보고 나도 새동네로 설정을 하고 당근을 켰더니, 거기신세계가 있었다. 몇 달씩 웨이팅을 해야하는 수입가구, 오픈런을 해도 사기 어려운 명품 브랜드의 가방, 매장에는 공기만 팔아서 구경하기도 힘들다는 의류들이 즐비했다. 거기서 남편은 골프공이며 5번우드같은 물건들을 잘도 골랐고 시중보다 저렴하게 새제품을 간간이 사다 날랐다. 또 여러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고 이사 소식을 당당히 알리며 집들이를 열기 시작했다. 골프를 치러 다니기도 편해졌고, 강원도로 놀러가기도 좋으며, 무엇보다 출퇴근이 편해졌고, 친구들도 주변에 있으니 정말이지 가장 ‘살판난’ 게 남편이었다. 그런 그였으니 딱히 이질적인 감상이나, 비교가 들어설 곳이 있었을까, 싶은 소회를 밝혀왔다. 그건


“보니까, 이동네 여자들은 다 키가 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의 원초적이고 일차원적인 평가에 기가 찼지만, 그 얘기를 듣고보니 놀랍게도 정말 그랬다. 남자들은 예전에 봤던 그대로, 비주얼이랄지 꾸밈새가 큰 차이가 없었다면 여자들은 확실히 키가 크고, 예쁘고, 잘 꾸민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능력있는 남자가,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뻔한 원리가 잘 작동하는 곳이라는 말로 심드렁하게 갈음했는데 딱히 반박한 논리를 찾지못한 걸 보면 그게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중에 우리 둘째에게는 나의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들과 이방인의 처지에 대한 입장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관찰자인 가운데 둘째만은 아무런 편견없이 이동네의 문화와 정서, 분위기를 그대로 받아 마시고 있다. 첫째는 사실 우리 부부와 모든 걸 함께 했다. 태어나서부터 우리 가족의 발전과 성장의 모든 부분을 함께 했다. 예전 동네와 이 동네의 차이는 딱 12년만큼의 간극으로 첫째에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첫째 금방 아이들과 이세계의 틈에 섞여들 것이다. 조만간에는 자신이 이동네로 이사를 오며 느꼈던 이질감을 느꼈었는지도 모르는 채 이동네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40여년이 넘는 시간을 G시 사람으로 살아온, 나만 남았다. 섞여들지 못할 거라는 약간의 불안과, 왜 섞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의문, 와봤더니 별거 없다는 어느정도의 허탈, 아니 생각보다 생활의 전반이 모두 다른 것 같다는 이질감, 그런 것들이 나에게만 밀려왔고, 나만 여기 혼자 덩그러니 놓여졌다는 기분은 곧 우울을 불러왔다.








이전 01화 강남, 그곳엔 무엇이 있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