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재를 시샘하지 않게 된 것은, 작가 역시 기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일종의 기술자라서 평생 자신의 기술을 반복 연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일찍 인정받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끈질기게 자신의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느냐다. 기술을 닦으면서 연습하는 동안 얼마나 행복한가이다.
김중혁 <대책없이 해피엔딩>
민화를 배우기 시작하고 6개월 정도가 흘렀다. 아직 동양화 물감의 색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한 초보중의 초보 단계다. 그래도 꾸준히 일주일에 한두번씩 나가며, 나만의 그림을 네댓개 정도 완성했다. 화실가는 날은, 아침부터 가뿐했고, 정신이 유독 맑았으며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고 하면 완전한 거짓말이고 화실에 가는 날도 여느날처럼 몸이 무겁고 찌뿌둥했다. 머리는 안개낀 듯 자욱했고, 침대에서 일어나기까지 한참이 소요되었다. 맞다. 나는 유독 아침에 에너지가 없는, 밤형 인간이다. 오전 내내 병든 닭처럼 골골대다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정오무렵 부터 차차 정신이 들기 시작하고, 그 힘으로 오후를 지나 밤으로 향하면서 쌩쌩해지는, 올빼미같은 여자였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침잠이 너무 많아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학교를 두고도, 1분이라도 더 자보겠다고, 교복을 입고 잤다 하면 믿겠는가. 믿든, 믿지않든, 사실이다. 블라우스를 입고자니 다음날 말도 못하게 구겨지길래, 흰 반팔티에 교복치마와 흰양말로 고이 환복하고 잔 게 바로 나다. 사춘기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나의 생체시계와 바이오리듬은 내게 멀쩡한 아침을 허락하지 않았다. 쌩쌩하고 맑은 밤을 선사했다. 하지만 학교는, 직장은, 그러니까 내가 속했던 세상은 나한테 아침에 빨리 깨라고, 정신을 차리라고, 옆사람과 속도와 열을 맞춰 걸으라고 다그치고 재촉했다. 육아를 하며서 바닥을 치던 체력을 길러보기 위해 헬스장엘 등록했던 적이 있다. 아침마다 썩은 동태같은 눈을 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헬스장에 가는 길은 마치, 영겁의 시간을 거슬러 저승에 이르는 길을 터벅터벅 걷는 유배지 죄수의 기분을 느끼게 했다. 도착해서는 괜찮았는가, 그럴리가. 팽팽한 활시위처럼 최고조로 당겨진 텐션과 활력이 넘치는 그곳에서 멍하니 어슬렁거리는 나는 마치, 드레스코드가 틀린 채 파티장에서 주눅든 사람처럼 겉돌았다. 나는 운동을 잘하는 편이고 싫어하지는 않는데도 그랬다.
아이 둘을 각각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고, 한결같이 멍하고 흐릿한 정신으로 어슬렁 어슬렁 화실에 도착해 지난 시간까지 그린 그림을 살피며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서두를 필요없이 붓을 잡고 천천히 색을 섞고 칠하고 있노라면, 감각없던 내 몸의 손끝에서부터 시작해 심장에 가까운 곳까지 느릿한 속도로 피가 돌기 시작하고, 머릿속에 자욱한 희끄무레한 안개가 한겹 한겹 벗겨지기 시작해 이내 명징한 정신만이 남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 온다. 식는 것은 빠르고, 그에 반해 예열은 느리기만 한, 성능이 뒤처진 가전같은 나를 기다려준다, 는 느낌을 항상 화실에서 받았다.
그래서일까, 그림을 그리고 있자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천천히, 그리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시간이 내 옆을 스쳐간다. 지루하다거나 따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온전히 이 시간의 주인이 되어 지금을 누리고 있다는 느낌. 그런 충만함이 그림을 그리는 내내 있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재미있다는 느낌과는 별개로, 화실가는 시간은 나에게 힐링, 그 자체다. 그런 벅찬 느낌에 비해 보잘것 없는 내 실력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그 충만함으로 이미 내가 그림에서 얻고자 했던 모든 결실을 미리 다 딴 느낌이다.
배우고 있는 민화들
한편, 예전부터 생각만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 글도 써보고 있다. 학창시절, 백일장에서는 항상 상을 받았었는데,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늘 읽고 무언갈 써야하는 전공을 택하면서 조금씩 알게되었던 건, 나에게 문학 유전자가있다는 사실이었다. 잘쓴다, 는 것과는 상관없이 문학작품을 읽으면 심취했고, 필요이상으로 감동받고 우울하고 들뜨고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필요이상이라는 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다. 그게 문학이, 그유전자를 가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거란 걸 조금씩 더 나이들어가면서 알게됐지만 쓰는 일은 늘 엄두가 나질 않았다.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전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우왕좌왕 동분서주 갈팡질팡 하며 내놓은 결과물은 별볼일이 없어 맥이 빠지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무엇을 쓸 것인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과촉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의식이 흐르는대로 아무렇게나, 아무거나, 아무때에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 그러자면 신기하게도 언어가 되지 못하고 맴돌던 보잘것없던내마음속의 여러가지 소리, 느낌, 감각, 생각들이 봇물터지듯 한순간 쏟아져 나온다. 마치 고자질하는 아이들처럼 앞다투어 망설이는 내 펜앞으로 달려온다. 그 소리에 일일이 귀기울이며 들어주고, 옮겨주고, 다듬고 갈무리해온전한 이야기를 간직하게 되는 건 오롯이 내 몫으로 남는다. 쓰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지금은 터져나오는 하찮은 글자들이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그 문장들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이 과정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어느 것에도 흔들림이 없다던 불혹, 불혹에 만난 첫경험들에 설렐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다. 그건 내가 나를 이렇게도 모르고 살았다는 자조적인 고백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을 거슬러 나에게 그렇게도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던 사사롭고 소소한 내 적성의 영역에 발을 담그니 그것이 나에게 숨쉴 틈을 만들어주고 기대할 내일을 펼쳐보인다. 나를 기꺼이 춤추게 하는 불꽃의 화력은 셀 필요가 없었고 내가 추는 춤이 아이돌처럼 능숙할 필요는 더욱 없었다. 그저 김중혁 작가의 말대로 ‘그것들을 연습하면서 얼마나 행복한가 ’ 그 느낌들에 집중해보려 한다.
우울증 동지인 언니가 내게 그랬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을 돌보고 극복해가고 있는 중이지만, 우리 마음에 그런 나락이 있다는 걸 안 이상, 벼랑에 이미 가본적이 있는 이상, 언제든 다시 거기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을 것 같아. 그게 두려워.”
맞다. 지금도 내 안에는 어둡고 깊은 늪이 있다. 메워서 없앤 것이 아니라, 뒤돌아보지않고 서있는거고 그 늪위를 낙엽같이 한없이 얇고 약한 것들로 한겹 덮어둔 상태다. 그건 언제든 내가 뒤돌아보거나 미세한 바람이 분다면 다시 마주치게 될 곳이다. 나는 그래서 더 힘껏 나를 껴안고 보듬어보려 한다. 혹여라도 언젠가 다시 내가 뒤돌아보고싶어지는 날이 온다거나, 검고 어두운 장막이 슬며시 내 앞에 드리우는 날이 오더라도,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