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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하 Jul 26. 2023

아빠가 내게 화를 냈다

아빠의 작아진 어깨



지난 주말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다녀왔다.

거의 한 달 만에 가는 본가였다. 회사와 개인적인 일로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심한 요즘이라 금요일 오후가 되자마자 반차를 쓰고 냅다 집으로 내려갔다. 본가로의 도피였다. 


"아빠한테 그런 얘기까지 하지 마."


금요일 저녁. 맛있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 위로 아빠의 목소리가 조금은 차갑게 내려앉았다. 멋쩍은 내 웃음소리가 뒤따라 붙었다. 대화 주제는 내 연애.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는 게 연애라 담담하게 남자친구와 다퉜던 일을 말했는데 아빠에겐 참으로 속상한 일이었나 보다.


"아빤 그냥 나를 위로해 주면 돼!"


괜히 더 밝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결국 아빠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해버렸다.


"이제 아빠한테 남자친구 얘기 하지 마. 결혼하고 와서 말해."


옛날이었다면 너무 서운했을 아빠의 말이었지만, 이제는 왠지 모를 속상함만이 차올랐다. 아빠에 대한 서운함에 나오는 속상함이라기보다는, 괜한 말을 꺼내 아빠를 속상하게 했다는 후회였다. 

힘들고 슬프다고 잔뜩 응석을 부리고 싶다가도, 내 말 한마디에 속상해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잠시 죄송스러운 마음도 차오른다. 왜 내 딸이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해. 결국 아빠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취급이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하기엔 정말 그냥 말다툼뿐이었는데, 아빠의 눈엔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딸로 보일 게 분명했다.


자라면서 아빠랑 참 많이 치고받고 싸웠었다.

유한 성격의 언니나 동생과는 달리, 아빠를 똑 빼닮은 나였다. 


'누굴 닮아서 이래.'

'다 아빠를 닮아서 그렇지!!'


학창 시절의 나는 아빠의 말에 그렇게도 아빠와 닮아서 그렇다는 대답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따라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에 내 어깨가 잔뜩 작아지고 말았다. 너도 잘한 거 하나 없어. 덧붙여지는 아빠의 말에도 아무런 말 없이 입술만 삐쭉였다. 더 말을 꺼내 아빠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은 딸만 셋이라 아빠는 조금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종알종알 떠드는 딸은 셋이나 되지만, 알게 모르게 의지하고 싶은 아들은 없었으니. 단 한 번도 티를 내신 적은 없지만 아들 있는 집이 조금은 부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엄마!'가 먼저 튀어나오는 터라 아빠는 더 서운했을 거다.


스물 후반이 되고 나자, 이제야 그런 것들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아빠는 그동안 내 연애 얘기를 꽤 좋아하셨다. 이젠 안정적인 연애를 하길 바라셔서 그러셨을지도 몰랐다. 먼저 물어보신 적은 거의 없었지만, 가끔씩 얘기가 나오면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시곤 했다. 늘 마지막은 싸우지 말고 잘 만나라는 말까지 하시면서. 그래서 이젠 더 이상 연애 얘기를 아빠에게 하지 말라는 그 말이 참으로 속상했다. 예전이라면 왜 얘기해 줘도 그러냐며 나도 모르게 서운함을 비췄겠지만, 그날따라 그럴 수 없었다. 속이 상하신 아빠의 얼굴이 여전히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


이제야 조금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늘 홀로 삭이셨을 수많은 감정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다.


늘 묵묵하게 슈퍼맨처럼 옆을 지켜주셨던 아빠. 

아빠가 내게 화를 냈다.

슈퍼맨의 작아진 어깨가 오늘따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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