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
딸, 딸, 딸.
우리 집은 첫째도 딸, 둘째도 딸, 셋째도 딸이다.
소위 말하는 딸부잣집.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주변에 형제자매 2명이 있는 집은 매우 많았다. 물론 세 명은 그럼에도 많은 축이긴 했다. 그것도 딸만 셋인 집은 내 주변에선 없었다.
어렸을 때 언니와 동생은 같이 치고받고 커가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닭다리는 왜 두 개인지 우리는 치킨을 먹을 때마다 아주 신중하게 가위바위보를 해야 했다. 오늘 먹은 저녁은 누가 설거지를 할 것인지 역시 우리의 가위바위보 질문 중 하나였다. 내가 설거지할 테니까 언니는 청소기 밀고 막내는 빨래 널어. 우리는 집안일도 똑같이 나눠서 했다. (한 명이 소파에서 쉬는 건 볼 수 없었다.) 내일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언니의 옷장은 내 옷장이 되었고, 막둥이가 처음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날 입을 옷은 우리 셋의 매우 중요한 토론거리가 되었다.
옷 하나 가지고 싸우다 엄마아빠한테 혼나는 것은 일상이었다. 가족 여행에 똑같이 검은 티와 청바지를 입으면 서로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라며 집을 나서지 않았고, 자동차에서 제일 불편한 가운데 자리는 아무도 앉기 싫어 맨날 뛰어가 차문을 열었다. 별의별 이유, 모든 일상에서 다툼은 일어났다. 특히 둘째인 나는 언니랑 싸우면 동생이라고 혼나고, 동생이랑 싸우면 막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언니가 되어 혼났다. 늘 억울했다.
(이 글을 보는 그 누구라도 주변에 둘째가 있다면 서러움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세 형제인 집이 그다지 많지 않아 장남장녀와 막내의 서러움보다 둘째의 서러움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는다. 그것도 같은 성별 사이에 낀 둘째라면 더더욱.)
하지만 참 철이 든다는 게 뭔지, 스물 후반이 된다는 게 뭔지.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인 언니와 동생은 이제 내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사소한 질문부터 심각한 주제까지. 엄마아빠에게도 이젠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모든 대화 주제가 우리 셋 톡방에서는 이뤄진다. '비밀의 방'이라고 불리는 우리 셋의 단톡 방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알림이 울린다.
'나 카톡 프사 뭐 할지 골라줘.'
프사 추천을 바라며 우다다 올라가는 수많은 사진들은 친구나 남자친구에게 물어보기엔 꽤나 곤욕스러운 질문이다. 하지만 우린 그 사진들을 하나씩 분석하며 1번이 안 되는 이유와, 2번이 안 되는 이유를 말하고, 3번이 그래서 제일 좋다는 추천을 해준다.
'나 오늘 팀장이 개빡치게 함.'
'오늘 남자친구랑 싸웠어.'
속상함이 차오를 땐 우리 톡방은 위로와 공감으로 바뀐다. 누가 괴롭혔는지 말만 해라, 당장 나와라 술이나 먹자. 단순히 말만이라도 그 한 마디에 속상함이 사르르 풀어진다.
'아빠 환갑 준비 각자 계획 세워와.'
이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꽤 어른스러워진 내용까지. 식당 예약은 누가, 플랜카드 준비는 누가, 케이크 예약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척척 짜오는 계획들은 너무나도 믿음직스럽다.
자라면서 언니와 동생이 있어 내가 성장한 부분은 너무나 많다. 함께 나누는 법, 공감하는 법, 서로를 배려하는 법. 서로의 옷 입는 취향, 영화 취향, 먹는 취향 모든 것은 다르지만 모든 게 재밌다. 웃긴 게 있으면 서로 링크를 보내주며 아무런 걱정 없이 깔깔 웃고 만다. 일주일 뭐 했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막둥이가 일하는 카페에 가서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만 봐도 재밌다. 피자가 너무 먹고 싶어서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우리 집에 오라고 언니를 꼬시는 것도 재밌다. 서로의 웃긴 사진은 필사적으로 저장해 놓고, 가끔씩 추억 여행을 하며 놀리는 것도 재밌다.
그냥 옆에서 함께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서로의 친구였고, 서로의 선생님이었고, 서로의 부모님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온전히 주기만 하는 사랑도 행복함을 배웠고, 늘 든든하게 내 옆에 평생 있을 사람이 있다는 감사함을 배웠고, 내가 이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좋을 수 있다는 법을 배웠다. 어떨 때는 무조건적인 응원만을 보내다가, 어떨 때는 누구보다 단호하게 나를 다그친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내 친구들.
"딸이 셋이라 좋겠어. 부모님이 든든하시겠네."
요즘 우리 가족 다 같이 나가면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도 우리 집이 딸 셋이라 너무 좋아요.
엄마아빠가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
언니, 동생이랑 함께 자라고, 커가며, 같이 늙어 갈 수 있어서 나는 매 순간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심심할 때마다 우리 셋 비밀의 방에 묻는다.
오늘 다들 뭐 해. 나랑 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