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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하 Sep 17. 2023

주말에 집에만 있을 순 없어요

저는 찐 내향인이에요



'떡볶이 2인분과 김밥 한 줄이요.'


중학교 2학년, 15살이었던 나는 친구와 함께 분식집에 들어가 저 한 문장을 말하지 못해 20분이 넘게 가만히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윤기가 가득 흐르는 매콤한 떡볶이가 그렇게 먹고 싶어서 찾아간 것과는 달리, 나의 먹방 전투력은 꽤나 빠르게 식어갔다.  눈동자만 도르르, 도르르 굴리며 주문할 메뉴만을 되뇌고만 있었었던 20분. 그 이유는 고작 '직원 분을 부르기 부끄러워서'였다. 나와 같이 내향적인 성향이 강했던 친구 역시 이는 마찬가지였으리라. 말할 때마다 모두가 놀람을 금치 못하는 이 일화는 나의 내향적인 모습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일이었다.


E는 외향적인 성향, I는 내향적인 성향.


나는 MBTI 검사를 하면 내향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오는 사람이다. 둘을 나누는 행동이나 성향에 대해서 여러 말들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I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바로 위의 일화만 봐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인 아이였다. 새 친구를 만나는 새 학기 첫날은 나에게 1년 중 가장 걱정되는 날이었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나 고역이었다.


대학교에 가면서 음식점에서 직원 분을 부르는 게 부끄럽지는 않게 되었지만, 내향적인 성향이 변하지는 않았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만, 나는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선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한 번에 집중되는 것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며, 수많은 대화 틈 사이로 나의 말을 꺼내는 것도 선호하진 않는다. 특히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주말엔 뭐 하셨어요? 점심은 뭐 드셨어요? 회사 사람들끼리 종종 하는 스몰 톡도 회사 생활을 한 지 1년이 넘어가니 나도 모르게 탑재된 사회력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에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대화를 주도한 적은 살면서 손에 꼽기도 어려울 빅 이벤트이다.


이러한 성향이 인간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체력을 채우는 방법도 조용한 것을 더 선호한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가는 등 밖으로 돌아다니며 힐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집에서 가만히 있으며 힐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혼자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아니면 침대에서 뒹굴뒹굴 쉬거나. 친구들과의 약속이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잡히면 그 주는 체력이 너무나 빨리 소진되었으며, 일주일에 하루라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상황이 보장되지 않으면 다음 주를 살아갈 힘이 제대로 충전되지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집과 물아일체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


나는 내가 이런 성향인 줄로만 알았다.










직장 생활을 한 지 1년이 넘어가면서 가장 많이 변했다고 생각이 든 부분이 바로 나의 이러한 성향과 관련된 것이다. 일주일을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고 나니, 주말을 그냥 휘릭 보내는 게 요즘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말 중 하루를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월요일의 출근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오는 기분이 든다.


잠깐 낮잠을 하면 두 시간이 휘릭-.

잠깐 침대에서 뒹굴거리면 또 두 시간이 휘릭-.


그럼 나를 기다리는 것은 얼른 자라고 재촉하는 시곗바늘뿐이다.

당장 내일을 위해선 열두 시엔 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금요일과 토요일 밤을 새벽에 자서 그런지 일요일 밤 역시 새벽 한 시까진 눈이 말똥 하다. 다음 날이 월요일인 것을 더 부정하고 싶어서 의미 없는 유튜브 쇼츠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주말에 이틀 다 나가는 새롭고도 (나에겐) 이상한 습관이 생기고야 말았다.

친구를 만나는 약속이 없으면 혼자라도 나가고야 만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고, 혼자 쇼핑을 하러 가고, 혼자 서점을 가고, 혼자 카페에 간다. 특히 날이라도 화창한 날에는 더더욱 밖으로 나가고야 만다.


'OO이 MBTI가 I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요즘 들어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항상 내게 하는 말이다. 그동안 쌓아온 사회력도 나의 성향을 꽤나 외향적으로 바꿔놓긴 했지만, 주말마다 어디든 나가는 나를 보며 다들 저렇게 말하곤 한다.


아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성향이 나와는 반대로 바뀐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늘 밖으로 돌아다니는 E의 성향이 강했던 사람이 회사 생활을 하고선 쉬어야 한다며 주말에 하루는 꼭 집에 있곤 한다. 지금까지 스물몇 년을 살아오면서 이게 나의 성향이라고 확고히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요즘이다.


스물 후반이 되어서는,

'변화'라는 말에 조금은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건 아닌 듯싶다.

새로운 삶의 루틴이 생기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내 모습들이 많아진다.


새로운 나도 더 소중히 아껴줘야지.


나를 흘러가는 대로 놔두기도, 곧게 붙잡기도 하는 것 역시 나다.

나를 제일 사랑하는 것.

그것 하나만 똑같으면, 무엇이든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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