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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하 Jul 11. 2023

이제는 아파도 엄마에게 전화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럴 때 제일 서러워



"엄마."



그저 한 단어에 불과하지만 이 말만큼 용기와 위로를 주는 단어는 없다. 기뻐도, 슬퍼도, 무서워도, 용기가 필요해도 내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였다. 1년의 재수 끝에 합격 글자에 가장 먼저 전화한 사람도, 그렇게나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최종 불합격을 했을 때도, 늦은 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으며 집에 올 때도 늘 생각나는 단어는 '엄마'였다. (아빠를 찾으시는 분들이 있을까 혹여 첨언하자면, 부모님께선 함께 자영업을 하셔서 항상 같이 계신다. 엄마에게 전화하면 아빠의 목소리는 늘 함께 들려온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세 자매 중 엄마는 내 건강을 가장 많이 신경 쓰셨다. 중2 때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었다. 이후로 엄마는 내가 감기로 골골거리기만 해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식의 건강을 신경 쓰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냐만, 살면서 3번의 수술을 겪고 체력도 늘 바닥인 내게 엄마의 전화는 늘 건강을 묻는 말로 시작하고 끝이 났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고 나는 슬슬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했다. 대학교 4학년 땐 세 자매끼리 자취를 했었다. 그때 팔 한쪽에 두드러기가 잔뜩 올라와 피부과에 간 적이 있었다. 약을 먹으니 쉽게 가라앉았지만, 나는 그 두드러기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엄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저 모든 게 괜찮아지고서 '엄마, 나 이랬었어.'라고 덤덤히 말을 전할 뿐.

살면서 처음으로 아프다는 전화를 엄마에게 하지 못했던 날이었다.


이제 취업을 하고, 정말 온전히 독립을 하고 나니 내 건강과 관련된 전화는 더 무거워진다. 자물쇠를 잔뜩 채우고 더, 더 무거워진다.


엄마, 나 아파.


서울에 혼자 올라와있는 딸이 아프다고 하면 얼마나 속상해할지 눈에 훤히 보여서.

늘 슈퍼맨 같았던 엄마의 키가 자꾸만 작아지는 게 보여서. 

이제는 엄마가 내게 아프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서.


이제는 아파도 엄마에게 전화할 수 없게 되었다.


가끔은 서러움이 치고 올라올 때도 있다.

입맛이 뚝 떨어질 만큼 심한 감기가 걸릴 때는 어릴 때처럼 엄마에게 잔뜩 투정이라도,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은데. 혹여 엄마에게 전화라도 오면 그냥 컨디션이 별로네,라고 얼버무리는 날들이 늘어난다. 


이럴 때 제일 서럽지만,

이제는 서러움보단 엄마의 걱정 서린 말투가 내겐 조금 더 커져 버렸다.


조금은 우스운 생각도 든다. 이게 어른이 되었다는 걸까? 

홀로 던진 물음에, 고개를 마구 끄덕이다가도 이게 어른이라면 조금은 슬프다는 생각도 한다. '어른'이란 건 참으로 자기 멋대로라 한없이 어린애 같은 나에게 이따금씩, 아무런 노크도 없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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