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며칠 전 샴푸가 똑 떨어져 버렸다.
아무리 펌핑을 해도 찔끔 나오고야 마는 샴푸를 보며, 그제야 나는 다급히 샴푸를 주문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까지만 해도 내게 샴푸는 늘 화장실 한 켠에 있던 것이었다. 떨어질 때가 된 것 같은데, 잠시 생각해도 며칠 뒤면 다시 새 샴푸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샴푸를 사야 한다.'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날들이었다.
취업을 하니 독립도 자연스레 이뤄졌다.
굳이 독립에 대한 열망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교 땐 기숙사 생활, 대학원 때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었기에 굳이 회사를 다니면서까지 자취를 하고 싶진 않았다. (이때 자취는 고작 6개월이었다.) 물론 혼자 살면 좋겠지만, 아직 내 작고도 소중한 월급으로 자취까지 감당하기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가 본가와 꽤 멀리 있는 바람에 자연스레 독립은 당연한 수순이 되어버렸다. 매달 한 번씩 꼬박꼬박 나가는 관리비와 대출 이자는 사실 그다지 겁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잔뜩 하고 시작한 독립이기에, 마음은 조금 아프지만 그려려니 하고 만다.
독립의 무게가 커지는 것은 이미 다 써버린 샴푸 통을 볼 때다. 평온한 일상마저 모두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그 무게를 다시 한번 느낀다. 빨래, 설거지, 청소부터 생필품을 그때그때 맞춰서 주문하는 것까지. 집 안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것들은 꽤 많다.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는 휴지조차 전부 내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다.
소중함은 언제나 빈자리가 되어서야 느껴진다. 덩그러니 놓인 샴푸 용기가 소중함을 한 번 더 일깨워준다. 사소한 샴푸 하나가 늘 그 자리에 있기 위해,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혼자 살기 전까진 알지 못했다. 늘 채워져 있던 가지런한 수건들, 화장실 찬장만 열면 항상 있던 치약들. 냉장고를 열면 늘 우유는 한쪽을 채우고 있었고, '과일 먹고 싶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다음 날 냉장고엔 과일이 놓여 있었다.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그 자리에 있기 위해선 그만한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을 이제야 성큼 깨닫는다.
익숙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를 온전히 짊어지는 건, 이제 나라는 생각이 또다시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