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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Jun 29. 2024

시골의 불편한 진실

산골 일기

부억 창문에서 바라보이는 양배추밭

시골의 불편한 진실


아침 일찍부터 자잘한 돌멩이에 삽날 부딪치는 소리가 앞 뒤 밭에서 들려오고,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진 것을 보니 뉴스를 안 들어도 큰 비가 오실 거라는 걸 알겠다.

아니나 다를까!

양배추밭 여기저기 살피면서 물이 채일 만한 곳의

흙을 떠내고 그 옆을 돋우는 손길들이 바쁘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양배추밭 한가운데서 살고 있기에 양배추를 심고 (난 뒤 밭떼기로 팔면) 사서 관리하는 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생각할 때 이웃이 먼저 실행에 옮기고 있다.

철물점에서 모래주머니를 사다가 모래를 채워 길가에 쌓고 있다. 밭으로 흘러 들어갈 빗물 길을 막는 작업이다. 나도 거든다.


길바닥에 흘러 내려온 흙의 양이 제법 많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겐 흙이 재산이다. 조금의 빈 터만 있어도 콩 몇 포기를 심고, 밭고랑 하나에도 감자가 몇 상자라며 한 뼘만 줄어들어도 엄청 속상해한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시골에서는 (어디든 마찬가지려나?) 길 내는 일에 엄청 민감하다.

도심에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들어온 사람들과 가장 많이 부딪치는 일이기도 하다. 군(郡)의 땅일지라도 길을 내기 위해 농사지을 땅이 줄어들면 마치 빼앗긴 듯 속상해하고, 임자가 없는 줄 알고 농사를 지었는데 나중에 임자가 나타나 울타리라도 칠라치면 공짜로 썼던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농사를 못 짓게 된 걸 더 껄끄러워한다.


땡볕 내리쬐는 날 낮에 노동을 하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밭이었던 땅이 팔리고 땅을 산 이는 당장 무엇을 할 것을 아니기에 그 해 농사를 계속 짓게 하였다. 그다음 해도 한 번 더 빌려줘 농사를 짓게 했으나 올해는 더 지을 수 없게 됐다.

땅을 산 사람들은 길을 닦고 집을 짓고 울타리를 쳤다.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설계해 짓느라 했지만 밭보다 지대가 높다 보니 비가 좀 많이 오는 날이면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빗물은 걷잡을 수 없고 없던 물길까지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남의 양배추 밭으로 내달려 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양배추 주인의 으름장이었다.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기만 해 봐, 고소를 해 버릴 거니까.”


그 말을 안 들었으면 몰라도 들었던 터라 이웃들의 일임에도 팔 걷고 나섰다.

타고난 병인지 누군가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지르거나 욕하는 소리에는 여전히 심장이 두근대는지라 만약에 불편하고 껄끄러운 일이 생기면 가까이에 사는 내게까지 그 기운이 전달될 까봐.

이렇게라도 조금은 대비를 한 것 같아 몸은 되어도 마음은 편하다.




해가 서쪽 산마루를 막 넘어갈 무렵, 바깥이 소란스럽다.

큰 비가 오시기 전, 비를 맞으면 병이 들어 짓무를 까봐 약을 치러 온 모양인데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 노동자이다 보니 목소리가 자꾸 더 커지는 모양이다.

아직 저 위쪽에서 치고 있건만 냄새는 엄청 지독하게 달려 내려온다. 아마도 살균 살충제인가 보다.


얼마 전 창문을 빨리 닫지 못해 일어났던 일이 있다.

그날도 이런 냄새가 나는 약을 치고 있었는데 창가에 상추를 씻어 얹어 두었다는 걸 잊고는 문을 빨리 닫지를 못했다. 아니 닫을 생각을 안 했다.

활짝 열어놓은 것도 아니고 한 뼘 정도 열어 두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냄새야 금방 사라지겠지' 생각했다.

비록, 봄에는 발효 안 된 거름 (똥) 냄새, 여름에는 약 냄새, 가을에는 양배추 썩는 냄새가 나는 양배추밭 한가운데라 살지라도 집안의 문들을 너무 꼭꼭 닫고 살면 숨이 막히는 듯 여겨져 부엌 창문쯤은 조금 열어놔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기에 열어놓는 버릇이 있다.

이중 창문에 밖으로 처마도 있고 모기장도 쳐져 있으니 약이 흩날려 들어온다 해도 몇 조금이나 들어올까 싶기도 했다.


문제는 그날 저녁 일어났다.

몇 명이 모여 저녁을 먹는데 창가에 두었던 상추도 밥상에 올랐다. 물론 낮의 약 냄새를 맡았을 거라 여겨 다시 흐르는 물에 다시 잘 씻었고  모두 맛나게들 쌈을 싸 먹었다.

5분쯤 지났을까, 한 사람이 입술이 부르트기 시작하더니 발진이 온몸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농약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 양약 알레르기까지 있어 별다른 약을 쓰지 못한 채 독이 빠져나가 발진이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채소가 짓무르지 말라고 치는 약, 벌레 파먹지 말고 끼지 말라고 치는 약이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걸 말로만 들었는데 눈으로 보고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예민하다' '유난스럽다'는 한마디로 퉁치고 넘어갈 일일지 모르겠으나 벌레가 못 먹는 채소라면 사람도 먹어선 좋을 게 없다는 데 우리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렇게 지독한 냄새의 약을 반드시 치라고 선전하고 아무 의심 없이 반드시 쳐야 하며 그게 당연한 일이라 여긴다는 사실이 더 놀랍고 충격이다.


시골의 너른 들녘, 밭들의 흙에는 지렁이나 땅강아지들이 살지 않는다. 어렸을 때만 해도 땅강아지를 가지고 놀았는데 요즘은 아예 볼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 지나 봄이 오고 얼었던 땅이 녹아 풀들이 올라온다 싶으면 농사 지을 준비를 하는데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제초제를 뿌리는 일이다.

그다음은 트랙터로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이랑에 비닐을 덮는다. 그 뒤 비닐에 구멍을 뚫어가며 채소 모종을 심고 며칠에 한 번씩 영양제 비료와 살균 살충제를 번갈아가며 뿌린다.

벌레가 못 먹게 하면서 빨리 크라고 영양제까지 뿌려대니 흙은 그저 채소 뿌리 지지대 역할일 뿐 흙에서 받을 영양분이 있을까 싶다.

농부들은, 땅이 (산성으로 바뀜) 죽어 천연 양소 유기질을 만들어줄 지렁이나 땅강아지가 없는 건데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건 둘째 치고라도 조금도 심각하게 생각하질 않는다.

그저 눈에 걸리적거리는 풀이나 벌레만 없애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모든 존재들은 먹이사슬의 법칙으로 얽혀있고 그게 자연의 순리고 섭리인데 인간들의 욕망이 그 법칙을 어그러뜨리고 있다. 그 결과, 과보를 받는 일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틈새로 들어온 지독한 냄새가 방 안에서 한참을 떠도는 가운데 하늘은 아까부터 그르렁 거린다. 큰비가 오시긴 올 모양이다.

농사를 짓거나 안 짓거나 비 때문에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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