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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나 Aug 22. 2023

아이의 이름


많은 아기들의 작명비화가 그렇게 시시하듯, ‘정이현’이란 이름도 일산 어딘가 점집에서 돈 십만원에 탄생했다. 사주팔자와 음양오행의 장단점을 보완한 요즘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적당한 이름.


원래 아이 이름은 한글로 짓고 싶었다.

어릴적부터 나는 내 이름에 대한 묘한 자부심이 있었고,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한글 이름을 물려주겠노라 다짐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신나서 한글 이름을 검색하던 즐거움도 잠시, 시댁에서는 아이이름 후보를 철학관에서 받아오셨다. 아이 사주에 ‘재물’이 부족하다 하여 ‘재물 재’ 자가 들어간 이름으로만 다섯 개.

잊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고, 나는 김씨, 내가 낳은 작은 생명은 정씨라는 사실을.

내 배아파 낳은 자식 이름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는 우울함에 며칠밤을 울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어찌보면 온전히 엄마 몫인데 이름 하나 엄마 마음대로 짓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아이러니다.


우울한 조리원 생활이 이어졌고, 나는 작은 도발을 준비했다.

며칠을 인터넷을 뒤지고 어플을 돌려가며 아이 탄생일에 어울리는 음절 후보를 여러개 찾았고,

동생을 시켜 철학관에서 그에 맞는 한자를 받아오라고 시켰다.

사주에는 사주로 대항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소심하고 어리석었던 며느리.

우여곡절 끝에, 

할아버지의 고집으로 ‘김하출’이 될 뻔한 내 이름을 ‘김하나’ 로 지켜낸 우리 엄마처럼,

나는 정재욱이나 정재돈이 될 뻔한 아이의 이름을 좋아하는 소설가와 동명인 ‘정이현’으로 지켜냈다.

정이현 작가는 예뻐서 좋아한다. 예쁜데 필력도 좋다니.

어제 알게 된 사실인데 정이현 작가의 생일이 11월 25일. 열매의 예정일이 생일보다 하루 전인 11월 25일이었는데. 

엄마 마음이 이렇다. 좋은 건 별 걸 다 엮고 묶는다.

사람의 운명은 이름따라 간다, 라는 말을 어느정도 신뢰하는 편이다.

내 아이도 제 이름처럼 예쁘고, 섬세한 감성의 어른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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