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15화

15. 네 번째 살인

공모자

by Bookish

승호는 도형에게 박성훈의 이름을 듣고 난 후 그의 과거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하면 할수록 거부할 수 없는 역겨움으로 몸서리쳐졌다.


박성훈은 돈만 받으면 그 어떤 파렴치범이라도 스스럼없이 변호를 했다. 단순히 변호만 한 것뿐만 아니라, 거꾸로 억울한 원고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결과까지 만들어냈다. 교묘하게 원고의 치부를 흘리면 그 이후는 언론이 알아서 사건을 키우고, 대중은 그 사건을 따라 무지성으로 원고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며 짓밟았다.


예전 박성훈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기 전, 이제 막 변호사로서 조금씩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하던 시절에 발생한 일이 있었다. 피해자는 스물세 살의 여성으로, 직장 상사의 지속적인 성희롱과 추행 끝에 고소를 결심했다. 당시 상대편 변호사로 선임된 사람이 박성훈이었고, 그는 교묘한 변론 전략과 언론플레이를 통해 피해 여성이 가해자로 몰리게 만들었다.


법정에서 박성훈은 피해 여성의 과거 연애사를 비롯한 사적인 부분까지 부풀려 언급했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성추행 가해자를 고소한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고 매도당했다. 덩달아 언론도 그녀의 평소 품행을 문제 삼는 듯한 기사를 써댔다. 결국 그녀는 패소하게 되었고, 무고죄 소송까지 당하면서 큰 금전적인 빚을 지게 되었다. 소영의 경우처럼 그런 사건 이후 주변은 그녀를 멀리하게 되었으며 삶이 점차 무너져갔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상태였던 피해 여성에게 박성훈이 다시 연락을 취했다고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변론 덕북에 꽃뱀으로 낙인찍힌 피해 여성이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그 약점을 이용했다.


박성훈은 피해 여성을 강남의 고급 호텔로 불러들였으며, 추후 전해지길 그곳에서 피해 여성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박성훈의 행위에 저항하지 못했다. 이미 폐인이 되다시피 자포자기한 피해 여성은 그날 이후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졌으며, 무고 소송은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이것과 유사한 일이 몇 번 더 있은 후 박성훈은 성범죄 사건의 전문 변호사로 부각되었다.


소영의 경우도 동일한 패턴을 따랐다. 박성훈의 의뢰인이 무죄 판결을 받고 난 후 그는 평소 친분이 있는 오창섭 기자에게 소영의 과거를 거짓으로 꾸며 보도하게 뜸했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대중들은 기사가 사실이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각자가 가진 세상에 대한 불만을 쏟아부을 대상만을 원했다. 오 기자는 진실을 보도한다는 기자의 사명감 따윈 없었다. 가끔, 아주 가끔 기사의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갖는 존재가 나타나면 신문 한쪽 구석에 '바로잡습니다.'라는 짤막하게 한 줄이 면죄부가 되었다.


악마는 신이 만들지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자신의 욕망을 뭉쳐 악마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다. 작은 행동 하나가 어떤 세상을 만들게 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온전히 자신의 쾌락과 욕구 해소를 위한 찰나의 선택이 누적되어 박성훈 같은 악마들을 만들었다. 과거의 작은 행동 하나가 현재의 현상을 만들고, 그 현상이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승호가 박성훈을 다음 목표로 지정하게 된 것은, 결정적으로 소영의 판결 이후 그녀가 점차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 모습이 마치 그의 옛 연인 채인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채인 옆에서 그녀가 얼마나 힘든 고통을 겪게 되었는지, 그 결과 어떤 운명의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다시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이제 악인을 제거하는 일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더 이상 불안감과 죄책감,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젠 동료까지 생겼다.


승호는 박성훈의 과거를 조사하고 처벌의 방법을 모색하던 중 박성훈이 항상 특정 호텔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장소를 활용하기 위해 사전 답사 중이었다. 이번 처리도 지난번처럼 이 원장이 도와주면 훨씬 쉽고 완벽한 계획을 세울 수 있으리라 판단해 이 원장을 설득 중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박성훈의 옆에서 통화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승호는 이 원정을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이 원장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강남에 있는 박성훈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탐욕스러운 눈빛의 박성훈은 먹잇감을 발견한 듯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았다.


"기다렸습니다."


박성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끈적함이 묻어나고 있어 이 원장은 목소리 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


그의 음란한 시선은 이 원장의 입술과 목덜미,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둥근 골만, 날씬한 다리, 섬세한 발목까지 노골적으로 훑어내려 갔다. 박성훈은 의도적으로 상판이 강화유리로 되어 아래가 투명하게 보이는 테이블로 이 원장을 안내했다. 그리곤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전달했다. 이 원장은 받은 명함을 앞에 두어 계산된 행동으로 박성훈의 음흉한 시선을 테이블 아래 그녀의 다리 사이로 유도했다.


의례적인 인사와 상담을 시작했지만, 박성훈의 육체적 욕망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다리 사이로 집중되었다. 상담 내용은 그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의 상담이 얼추 마무리되어가자 이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박성훈은 다급한 목소리로 이 원장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제가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만..."


그는 문으로 향하는 이 원장을 불러 세웠다.


"좀 더 편안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어려운 법적 용어 말고 원장님께서 좀 더 이해하기 쉬게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걸려들였다. 이제 1단계 완료. 이 원장은 짐짓 모른척하며 말을 꺼냈다.


"어디서요?"

"제가 머리가 복잡할 때 자주 가는 곳이 있습니다. 내일 그곳에서 만나면 어떨까요? 제가 관련된 자료를 준비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사무실에서는 분위기상 딱딱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서요."

"음..."


그녀는 일부러 망설이는 듯이 주먹진 손으로 입을 가렸다.


"좋아요."

"하하하! 다행... 아니 좋습니다. 그럼 내일 저녁 8시 XX호텔 1407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제가 먼저 가서 이번 사건에 대한 내용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네. 그러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 원장이 돌아서 문을 나가자 박성훈은 사타구니 사이를 움켜쥐며 미소를 띠었다.


"하루에 두 명이라... 이게 웬 횡재야. 미리 약을 좀 먹어둬야겠네. 흐흐흐"




다음날, 시계는 오후 7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박성훈은 미리 예약한 1407호에서 초초히 이 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세 잔의 위스키를 비웠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마지막 한 잔은 비아그라 한 알과 같이 먹었다. 그 때문인지 얼굴에 미세한 열감이 느껴지고 아랫도리는 이미 단단해져 있었다. 박성훈은 방 안을 서성이며 시간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이 원장과의 약속은 8시, 김소영과는 10시. 연속으로 이어지는 두 건의 흥분에 오히려 스릴이 느껴졌다.


이윽고 10시가 조금 넘자 호텔방 문쪽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흥분으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약한 조명 속에서 이 원장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전날의 모습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늦어서 죄송해요."


이 원장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사타구니 사이의 물건이 터질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바로 이 원장을 눕혀버리고 싶었다. 혹시나 이 원장이 눈치를 채고 돌아갈까 봐 안쪽으로 안내하고 그는 문을 등지고 섰다.


"자... 이리로..."


그는 이 원장을 안쪽으로 안내하며 와인을 따랐다. 그리고 그 잔을 이 원장에게 건넸다.


"우리 시작하기 전에 긴장도 풀 겸 한잔 할까요?"


박성훈은 이날 밤의 이벤트를 위해 모든 준비를 사전에 바쳤다. 자주 가는 롬살롱 마담에게 부탁해 준비해 둔 가루를 미리 와인에 타 두었다. 사후에 검사를 하더라도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가루였고 꽤나 비싼 값을 치르고 구한 것이었다. 가루는 즉시 붉은 와인 속으로 녹아들었고, 그가 병을 살짝 흔들자 완전히 용해되었다.


이 원장이 손을 내밀었다. 자. 받아. 그리고 마셔. 그래 그 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가. 그리고 단숨에 삼켜. 그럼 너도 좋을 거야. 황홀한 밤을 지낼 수 있어. 그의 가슴은 기대감으로 쿵쾅거렸다.


"우리 오늘 일이 원만히 해결되도록 건배할까요?"


그도 자신의 잔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이 원장이 마시기만 하면 따라 마시는 척하며 다시 내려놓을 계획이었다. 이 원장이 와인잔을 받는 순간, 그는 그녀의 눈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감지했다. 경계심? 의심? 순간 불안했지만 욕망이 불안감을 눌렀다. 이 계획의 성공률은 백 프로였다.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가 잔을 떨어뜨렸다. 붉은 와인이 흰 카펫 위로 쏟아졌다.


"아! 정말 죄송해요!"


그녀가 놀라며 외쳤다.


박성훈은 순간 당혹스러웠다. 완벽할 줄 알았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해야 한다. 더 당황하면 상대방의 의심만 살뿐이다. 어떻게 만든 기회인데.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하하. 괜찮습니다."


박성훈은 잠시 어긋난 계획을 수정하려는 듯 자신의 와인잔을 내밀었다.


"이걸로 드세요. 전 위스키로 한잔 하죠."


바로 그때, 박성훈은 등 뒤에서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바람을 타고 학교 다닐 때 생물 실험실에서 맡아본 냄새가 느껴졌다. 클로로포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박성훈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어두운 그림자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누구지? 남잔데? 룸서비스일리가 없는데. 짧은 순간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그때, 손수건이 그의 코와 입을 강하게 덮쳤다.


"뭐...?!"


박성훈의 놀란 외침은 손수건에 막혀 들리지 않았다. 박성훈은 본능적으로 저항했지만, 이 원장을 기다리며 마신 술에 의해 반응 속도가 느렸다. 그의 팔이 공기를 헛되이 휘두르는 동안, 마취제는 이미 알코올로 둔해진 그의 신경계를 빠르게 공략했다. 눈이 점차 흐려지며 다리에 힘이 풀린 몸이 어두운 그림자에 기대어 늘어졌다.


흐려진 눈앞으로 이 원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로 보이는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는 바닥에 누워있는 박성훈을 보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원장님."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승호씨!"

"네. 수고하셨어요. 이제부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먼저 나가 계세요. 볼 것이 못 됩니다."

"네. 그럼 전 밖에서 기다릴게요."


이 원장은 나가며 박성훈을 바라보며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사라졌다.


승호는 박성훈을 끌고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서 박성훈의 옷을 모두 벗기고 옷은 한쪽에 흩트려 놓았다. 그리고 그는 안쪽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온 베쿠로늄을 담은 소형 주사기를 꺼냈다. 그는 가장 은밀하고 쉽게 눈에 띄지 않을 곳을 골랐다. 작은 바늘 끝이 살을 파고들었고, 무색의 액체가 거침없이 주입되었다. 베쿠로늄이 혈관을 타고 스며들자, 이미 클로로포름에 멍해진 박성훈의 몸은 더욱 부자연스럽게 경직되었다. 그의 눈은 간신히 떴지만, 눈에는 분노나 저항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공포로만 가득 채워졌다.


승호는 계획의 좀 더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박성훈이 마시던 위스키 병을 욕조 옆에 내려놓고 눕혔다. 병에서 위스키가 흘러나왔다. 이쯤이면 완벽하지. 더 이상 좋을 수 없어.


"기분이 어때?"


승호는 박성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성훈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의 신체 어떤 부분에도 지시를 할 수 없었다.


"너도 피해자들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서히 죽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껴봐."


승호는 서서히 욕조의 물이 차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욕실 문을 닫았다. 미세하게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 1407호의 문이 닫히고, 승호는 복도 끝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몇 분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김소영이 나타났다. 그녀는 1407호 문 앞에서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잠시 후 결심이 선 듯 노크를 하고 손잡이를 돌렸다. 방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인기척을 냈다.


"박 변호사님."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박성훈을 불렀다.


"저기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정확히 10시. 1분도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텅 빈 호텔방바닥에는 빈 와인잔과 붉은 와인이 흘러 엉망인 상태였다. 그녀가 한걸음 더 들어가자, 한쪽 욕실에서 물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긴장감에 머뭇거렸지만, 조심스럽게 욕실 문을 열었다.


욕실 안은 은은한 조명과 더운 공기가 습기를 머금은 채 가득 차 있었다. 욕조 가장자리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그녀의 눈에 충격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나체의 박성훈이 욕조에 잠긴 채 머리만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온기가 느껴지는 물 위로 그의 가슴이 힘 없이 둥둥 떠 있고, 그의 눈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헉...!"


그녀는 짧고 강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욕실을 빠져나왔다. 욕조에 잠긴 박성훈의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뒤로 물러났지만, 곧 머릿속에 스치는 온갖 기억과 응어리들이 가슴을 짓눌렀다.


"어... 어떻게... 왜!"


잠시 숨을 고른 후 그녀는 겁에 질린 채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아직 욕조 속에 있는 박성훈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미동도 없었다. 그녀는 살며시 손가락을 펴 박성훈의 볼을 눌렀다. 가슴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아 죽은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녀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다시 욕실을 벗어나기 위해 문쪽으로 다가가다 갑자기 멈춰 섰다.


그동안의 고생과 억울함, 피폐해진 기억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배신감, 분노, 무력감 그녀가 그동안 겪었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녀는 욕조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그랬어요?"


그녀는 반응이 없는 박성훈을 보며 소리쳤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내가 그런 거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잖아요! 내가 피해자라는 거 뻔히 알고 있으면서 왜 나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흑! 흑! 도대체 왜!"


그녀는 오른손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바닥을 박성훈의 머리 위에 올렸다.


"죽어!"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손에는 그동안의 멍울진 감정이 모두 실려 있었다. 아래로 눌렀다. 욕조에서 몇 차례 공기방울이 올라오더니, 이내 욕조가 조용해졌다. 몇 초가 지났을까. 그녀는 손을 뗐지만, 박성훈은 더 이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욕실 공기는 아직 습하고 더웠지만 그녀는 계속 떨고 있었다. 덜덜 떨고 있는 손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매고 있던 핸드백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액정 화면의 버튼을 3번 눌렀다.


"사람이... 죽은 것 같아요. 제가... 제가 죽였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통화 도중에 떨림이 멈췄다. 그녀가 떨어뜨린 휴대전화의 수화기 너머에서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욕실을 나온 김소영은 소파에 몸을 묻고 앉았다. 그녀의 몸이 소파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녀의 귀에 물이 넘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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