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자
비닐 천막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희미한 가로등 빛을 반사한 벚꽃 잎이 포장마차 안으로 눈처럼 날려 들어왔다. 어느새 4월 중순이었다. 며칠 전까지 화려하게 거리를 밝히던 꽃잎은 이제 바람이 부는 대로 떨어져 흩어졌다. 주위 상가들의 불빛은 모두 꺼졌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포장마차만 홀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승호는 불안했다.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낸 도형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밤 열한 시라는 늦은 시간에 도형이 근무하는 경찰서에서 가까운 곳을 약속장소로 정한 것은 결코 우연 같지 않았다.
그는 어색하게 목덜미를 문지르며 안주를 집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묵 국물 위로 도형의 시선이 슬쩍 지나쳐갔다. 친한 친구 사이지만 도형의 그 눈빛이 거슬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앞에 앉으면 저절로 주눅이 들었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모두 심문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 날도 그랬다.
승호는 최근 자기가 한 일 때문에 의도적이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도형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야. 요즘 너 피부가 좀 달라졌다? 반짝거려."
도형은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지만 그 말은 승호의 가슴을 찔렀다. 젓가락이 멈췄다. 그는 어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팔 근육이 뼈에서 떨어진 것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관리받냐?"
"그냥... 가끔... 그냥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서 변화를 줘 보려고..."
"잘했다. 그래. 그렇게라도 하면서 이젠 채인이를 보내줘."
"..."
그는 대답 대신 어묵을 집어 입에 넣었다. 뜨거워서 다시 뱉고 싶었지만, 그대로 씹었다.
"너네 동네 큰길에 피부관리숍이 있던데... 거기 다니지?"
"어?"
승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 원장이 운영하는 피부관리숍을 다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이 자리도 의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거기 있잖아. 지난번 심장마비로 죽은 차대서 의원 지역사무소가 있는 건물 3층에 있는 피부관리숍 말이야."
"어? 어...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차 의원 죽었을 때 사건 조사 들어갔잖아. 지역사무소와 같은 건물이고, 차 의원 일정에 주기적으로 그곳을 방문했더라고. 그래서 한번 조사해 봤어. 하여튼 그 양반 다 늙어서 피부관리숍은..."
도형의 입에서 차 의원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차 의원을 살해하기 위해 준비했던 과정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소주잔을 들었다. 하지만 술잔 표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승호는 모른척하며 입에 털어 넣었다.
"거기 등록회원명부를 보다가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네 이름 말이야..."
"아... 하하. 그랬구나."
"근데, 넌 언제부터 다녔어? 최 의원은 꽤 되던데."
"응. 난 거기 몇 번 안 갔어. 다녀 봐도 뭐 별로인 것 같아서."
도형이 술잔 너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승호는 여전히 도형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최 의원. 그놈 죽은 건 심장마비가 맞는데 부검 결과가 좀 묘해. 아. 그래 넌 잘 알겠네. 네가 하는 분야이니까. 난 당최 이게 뭔 말인지... 하여튼 좀 쉬운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될까? 하하."
도형이 주머니에서 꺼낸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너 CYP450 효소 강력 억제제라고 들어봤어? 뭐라 하더라? 아 여기 있다. 테트.. 뭐라 하던데. 그래. 테트라카인."
그의 심장이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어? 어. 그... 그래? 난 처음 듣는데?"
도형이 수첩을 옆 의자에 올려두었다.
"너 안 들어봤어? 그거 마취제라고 하던데, 고혈압 환자한테는 치명적이라고 하더라고. 뭐라 하더라... 고혈압 환자가 그걸 먹거나 하면 약하고 같이 작용해서 부작용이 온다고 하더라고. 심장마비로..."
승호의 귀가 꿈틀거렸다. 차가운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래?"
그는 짐짓 처음 듯은 말인 것처럼 도형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에서 열이 느껴졌고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테트라카인. 아 실수다. 알고 있다고 말할걸. 너무 모른 척하면 오히려 더 의심받을 텐데. 대부분의 범인들이 취조를 받을 때 모르는 일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지 않던가. 이건 거의 나 좀 의심해 줘라고 한 것과 다름없는데.
"그런데 말이야..."
그는 도형을 쳐다봤다. 하지만 눈은 마주치지 못했고 눈썹 사이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동안 도형의 눈길을 너무 피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히려 도형이 눈길을 피했다.
주변은 조용했다. 포장마차 안에 손님은 그와 도형 두 사람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언제 갔는지 모르게 빈 의자만 남아 있었다. 포장마차 주인은 한쪽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꽤나 피곤해 보였다.
"조사를 하다 보니, 차 의원 말이야. 꽤나 더러운 짓을 많이 하고 다녔더라고. 그 피부관리숍 직원 대부분이 차 의원에게 추행을 당한 것 같았어. 거기 직원들이 꽤나 예뻤고, 특히 그 원장... 이름이 뭐더라? 하여튼 그 원장은 상당한 미인이더라고.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차 의원이 무지하게 껄떡댔다는 것 같아. 더러운 새끼. 다 늙은 새끼가."
도형이 비웃는 사이에 승호는 테이블 아래 내려놓은 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혹시 들켰냐? 지금 뭔가 알고 말하는 거 아닐까?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랬다면 벌써 나를 찾아왔을 거야. 이 원장이 패치는 완벽히 처리했고 의심이 될 만한 사항은 아무것도 없어.
"근데, 그거 말고도 또 있어."
도형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녀석이었나? 승호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포장마차 안의 공기가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XX케이컬 최동섭 사장. 그 사람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 들었지?"
또다시. 이건 뭔가 이상하다. 일부러 두 사람의 이름을 연결하고 있다. 그동안 죽은 사람이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닌데 하필이면 꼭 집어 그 두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승모근이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목뼈에서 삐그덕 하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손 끝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주물렀다. 그제야 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 어깨를 살살 돌렸다.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좀 더 크게 돌렸다. 비어있는 소주잔이 보였다. 팔을 들어 소주병을 잡고 소주를 따랐다. 이런... 조금 넘쳤다. 도형이 눈치챘으려나? 설마. 소주잔을 들어마셨다. 빈 잔을 살살 내려놓았다. 다시 소주를 채웠다.
"그 사람 사고 직전에 갔던 레스토랑에 가 봤거든. 뭐 어차피 행적을 조사해야 했으니까. 근데 그 사람 그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셨더라고. 뭐 술 마시고 운전하다 사고내서 죽은 거지. 근데 거기에서도 네가 보이던데? 잠깐이지만 너 cctv에 찍혔더라고? 거기 피부관리숍 원장도 보이고. 희한하지?"
아. 이것도 실수다.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는 없앴지만 cctv는 깜빡했다. 이건 크다.
승호는 고개를 들어 도형을 봤다. 이건 더 이상 친구 간의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다. 여기가 취조실이고 나는 용의자이고 지금 대화는 나를 심문하는 것이다. 점점 좁혀지고 있다. 도망칠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건... 그냥 주변에서 하도 그 식당이 유명하다고 해서 한번 가 본거야. 그리고 거기서 원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지만, 그냥...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길래 아는 척을 못했고. 이 원장과는 말 한마디도 안 했어. 차 키가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그거 줒어서 전해준 것뿐이야."
젠장. 말이 너무 길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아. 당황했다. 자꾸 말이 헛나온다. 큰일이다.
"알아. cctv 영상에도 그래 보이더라."
우당탕!
포장마차 주인이 졸다가 넘어졌는지 뒤편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도형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내 별일 아닌 듯 머리를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렸다.
"근데 두 사건 모두 네가 있어서, 신기하더라고. 하하. 농담이야 농담."
도형의 웃음소리에 맞춰 승호도 같이 웃었다. 입만 웃고 있는 것 같아 일부러 눈도 약간 찡그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누가 보면 내가 꼭 용의자 같다. 하하..."
"그럼 잠깐 서까지 같이 가실까요? 하하하."
"진짜 이거 장난 아니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지?"
"뭐. 신경 꺼.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도형의 목소리가 다시 차분해졌다. 승호의 얼굴에도 미소가 사라졌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술만 마셨다. 승호의 등에는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땀을 따라 그의 몸에 소름이 퍼져나갔다.
"최근 사건들 보면 평범한 사망사건인데, 몇몇은 마치 심판받은 것 같은 느낌이야. 최수철이 죽은 것도 그렇고 차대서, 그리고 이번에 최동섭 사장까지. 죽어야 할 놈들만 골라서 죽은 것 같아. 신이라는 것이 있나? 꼭 느낌이 그래."
"그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죽였다는 뜻이야?"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느낌이 좀 그래. 휴... 지나간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승호는 더 이상 이야기가 진척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참. 그건 그렇고... 하... 내가 이딴 나라에서 경찰을 한다니. 자괴감이 들더라. 내 말 좀 들어봐. 이번에 우리가 성범죄자를 한 놈 잡아서 검찰로 넘겼거든. 검찰에서는 그 새끼를 기소했지. 그래서 얼마 전에 재판이 열렸는데... 하... 이것 참... 기가 막힌 일이 벌여졌어."
"뭔?"
"그 새끼가 그 바닥에서 꽤나 잘 나가는 변호사를 써가지고 풀려났잖아. 이거 원. 어떻게 변호를 해도 그런 놈을 변호하냐... 비위도 좋아..."
승호는 이 말을 듣고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좀 자세히 말해봐."
도형은 안주를 씹으며 말을 이었다.
"그 변호사가 성범죄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구원자로 알려져 있어. 신이지 신! 그 사람이 변호하는 사건은 대부분이 무죄로 풀려나거든. 이번에도 그 변호사가 사건을 교묘하게 뒤집는 바람에 범죄자가 무죄로 풀려나고, 피해자가 오히려 꽃뱀이 돼버린 거야. 이게 그 변호사가 매번 하는 스타일이야. 피해자에게 덮어 씌우기. 그놈 특징이지. 그래서 이번에도 피해자가 역으로 고소당했어. 무고죄로. 참 세상 좆같지. 에이 씨팔!"
도형은 비운 술잔을 쿵 하고 내려놓았다. 그 바람에 소주병이 테이블에서 떨어져 깨졌다. 그와 동시에 졸고 있던 포장마차 주인도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의 상황 파악을 했는지 인상을 쓰고 다시 의자에 앉아 팔짱을 꼈다.
도형은 혀를 낼름 거리고 멋쩍게 웃더니 깨진 유리 조각을 발로 밀어 한쪽으로 모았다.
"변호사 이름이 뭔데?"
"잠시만."
도형은 옆 의자에 올려두었던 수첩을 들어 뒤적였다.
"아. 여기 있다. 박. 성. 훈."
"박성훈?"
"응. 나름 그 바닥에서는 꽤나 잘 나가."
"그렇구나."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승호는 이름을 되뇌었다.
박성훈. 박성훈. 박성훈.
집에 도착하자 그는 노트북을 열어 검색창에 입력했다. 박성훈. 엔터.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