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11화

11. 독극물

공모자

by Bookish

다음날 승호는 XX케이칼 공장이 위치한 경기도 외곽 지역을 찾았다. 인터넷 포털 뉴스 사회면에 폐수 유출 사건이 며칠 동안 제일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장 위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치 하이에나처럼 달려들던 기자들도 모두 철수한 공장 입구는 오히려 적막감이 흘러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굳게 닫힌 정문 사이로 보이는 공장 내부는 고요했다.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자 일시적으로 폐쇄한 것 같았다. 그는 공장 주변을 살폈다. 공장 바로 옆에는 폐수를 몰래 방류했던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뉴스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깨끗하고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오염 제거를 했어도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개울을 쪽으로 몸을 돌려 발을 떼자 그의 뒤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요?"


그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흔적이 없던 정문 옆에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승호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에게 다가갔다.


"누구 찾아오셨소?"


그 남자의 가슴에는 노란색으로 XX케미컬이라고 글씨가 쓰여 있었다. 구겨진 모자 대충 걸쳐 쓴 경비원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공장 운영 안 하나요?"

"아 이거 원. 기자슈? 낮에 그렇게까지 사람 귀찮게 다 물어보고선 뭐가 또 남았수? 더 이상 할 말 없으니 가요! 가!"


경비원은 그를 기자로 착각한 듯 인상을 쓰며 노골적인 거부감 표시로 손을 내저었다. 승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핑계를 찾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 좀 부족한 것이 있어서요. 그런데 공장 안 돌리나요?"

"보면 모르겠수? 기자 양반들이 그렇게 난리를 쳐놨는데 당분간은 꼼짝없이 가동 중단이지. 우리야 좋지 뭐. 며칠 강제 휴가지, 휴가."

"아 그런가요? 하하."

"어차피 댁들이 여기서 죽치고 있어 봐야, 오가는 사람도 없고 공장 문도 안 열거니까 그만 가 보슈. 괜스레 여기 있다가 윗분들이 보기라도 하면 나만 난처해져요. 어서 가요. 가."

"아... 알겠습니다. 이만 돌아갈게요."


경비원은 그를 쫓아내듯이 밀어냈다. 승호는 못 이기는 척 돌아섰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개울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뭔가를 발견한 듯이 눈빛이 밝아졌다.


그날 밤, 승호는 다시 공장을 찾았다. 경비원의 눈에 띄지 않게 공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개울로 내려가 물을 따라 공장 쪽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 달빛에 어느 정도 사물 인식은 되었지만 주변 상황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아주 작은 플래시를 꺼내 전원 버튼을 눌렀다. 빛이 멀리 퍼지지 않게 플래시 전구 쪽을 검은색종이로 말아 확산되지 않고 앞으로만 좁게 직진하도록 개조한 것이었다. 역시 사건 후 정화처리 했는지 개울물은 깨끗했다.


공장 가까이 다가가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에는 공장에서 바로 연결된 듯한 시멘트 배수관이 보였다. 그는 이 배수관을 통해 폐수를 버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미리 준비한 라텍스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배수관 아랫부분을 훑었다. 생각대로 물이 아닌 다른 점성의 액체가 손에 묻어 있었다. 그는 손에 묻은 액체를 가지고 간 샘플병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그 밖의 다른 몇 곳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폐수로 추측되는 샘플을 몇 병 더 채웠다.


바로 그때 공장 정문 가로등이 켜졌다. 승호는 급히 몸을 숙였다. 썩은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공장 정문이 불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사이로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빠져나왔다. 열린 승용차 운전석 유리가 내려가며 안에서 큰 소리가 경비실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날아갔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 한 번만 더 졸고 있으면 잘라버릴 거야!"


스쳐가는 승용차 유리 안으로 최동섭 사장의 얼굴이 비쳤다. 경비원은 고개를 숙인 채 사장의 차량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긴장으로 경직된 어깨가 그의 불안한 처지를 보여줬다. 경비원이 사라지고 정문 앞을 비추던 불빛도 사라졌다.


승호는 숨어있던 개울을 올라오며 승용차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최동섭. 며칠밖에 남지 않은 삶을 즐기고 있어라. 곧 찾아갈 테니."




승호는 채인과 함께 할 날을 기다리며 몇 년 전부터 한적한 시골에 농막이 딸린 조그마한 텃밭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다. 매달 한두 번씩 함께 찾아와 모종을 심고, 심은 모종에 비료를 주고 잡초도 뽑아내며 나름 둘 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그는 채영의 일이 있은 후 농막을 실험실로 개조했다. 그는 그곳을 동굴 속 베트맨의 아지트로 삼았다. 물론 베트맨의 아지트처럼 외부에서는 평범한 농막처럼 보이도록 꾸몄다.


그는 오랜만에 찾은 농막 문에 걸린 자물쇠를 열었다. 신경을 긁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농막 내부 한쪽 구석의 파란색 비닐을 걷어내자 깔끔한 작업대와 약품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머니 안쪽에서 채취한 샘플 병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먼저 샘플을 유리 비커에 조금 붓고 미세 필터로 거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필터에 불순물로 보이는 것이 하나씩 나타났다. 지저분한 것들이 걸러지자 액체는 훨씬 맑은 색을 띠기 시작했다. 1차 필터링을 마친 폐수를 소량 덜어 pH 시험지를 꺼 냈다. 시험지가 푸른빛에서 보라색으로 변해갔다. 심한 염기성으로 판정되자 그는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그는 이 정도만 되어도 치명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용액을 한쪽 구석에 설치된 작은 원자흡광분광기에 내려놓고 기기의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 달린 모니터에 각종 중금속에 대한 수치가 표시되었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중금속 수치가 높아도 너무 높았다. 추가 실험을 통해 인체에 치명적인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몇 시간 뒤 샘플에서 유독 성분만 추출해 농축해 냈다. 증류 플라스크 아래에 투명하게 빛나는 액체가 모이자 작은 유리병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유리병을 들어 전등빛에 투영해 바라봤다.


시안화합물. 폐수의 정체였다. 이 정도면 사람 하나쯤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제 거의 다 끝났다.


그는 유리병에 담긴 액체를 작은 유리 쟁반 위에 얇게 붓고, 작은 저온건조기에 넣었다. 잠시 후 건조기에서 꺼낸 유리 쟁반에는 수분이 사라진 하얀 결정만이 남았다. 이렇게 얻은 하얀 결정을 분쇄기에 넣고 곱게 가루로 만들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소형 분무장치에 HPMC 용액을 채우고, 하얀 분말 위에 균일하게 분사하여 얇고 정교한 코팅막을 형성했다. 겹겹이 코팅된 덩어리는 말릴수록 희미하게 광택이 빛났다. 이 코팅층이 몸속에 들어가면 치명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승호는 마지막으로 건조된 덩어리를 분쇄기에 갈아 작은 유리병에 넣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작은 병을 들어 올렸다. 그 안엔 육안으론 절대 구분할 수 없는 고운 가루가 담겨 있었다.


"이게 바로 네가 만든 죽음이야. 이젠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어. 곧, 네가 직접 이 맛을 보게 될 거다."


그는 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다시 한번 밀봉 상태를 확인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원장님이라면 저를 도와주실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퇴근 준비를 하던 이 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우선 앉으세요."


이 원장은 고객 상담실 문을 닫으며 말했다.


"원장님, 얼마 전 화학 공장에서 폐수가 유출되어서 공장 부근 마을 여러 사람이 중독 증상이 나타난 기사 보셨죠? 그리고, 그 회사 사장이 부하 직원에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다 자살하게까지 만든 사건 말입니다."

"네... 한동안 그 사건으로 난리가 났었지요. 그 회사 대표는 너무 뻔뻔했어요. 마치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같이 보였어요. 그게 왜요?"

"그 일로 원장님이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네. 원장님이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요? 무슨 일인데요."


그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병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 원장의 눈길은 그의 손 움직임을 따라 병으로 흘렀다. 병 속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었었다.


"이걸 최동섭 사장의 몸속에 넣어야 합니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이게 뭔데요?"

"최 사장의 죗값입니다. 최 사장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한 가족을 망가트렸어요."

"그 사람이 악랄한 인간이란 건 알아요. 그래도 승호 씨가 직접 뭔가 하겠다는 건... 전 솔직히 두렵네요. 사람 죽이는 일에 관여하는 건 좀..."

"이해합니다만, 이 원장님은 이미 알게 모르게 관여되어 있었어요. 차대서 의원 건으로..."

"그거와는 다르죠."

"부탁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질 테니 조금만 도와주세요. 최 사장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알고 계신다면서요? 김창수 부장의 남은 가족들의 아픔은 악마 같은 그놈에게 어떠한 고통을 준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놈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될 겁니다. 차 의원처럼요."

"그래도 그건..."


이 원장은 깊은숨을 내쉬며 한참을 망설였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거죠?"

"최 사장은 돈과 권력으로 또다시 빠져나갈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또 누군가가 희생될지도 몰라요."


이 원장은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제가 뭘 하면 되죠?"

"최 사장이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가는 식당이 있습니다. 이 원장님께서 그곳에 가셔서 최 사장이 식사할 때 눈길을 끌어주세요. 그럼 제가 최 사장의 차에 달려있는 방향제에 이 가루를 섞을 겁니다. 그런 후에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죠. 원장님께 피해 가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최 사장의 관심만 끌어주시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 것이라면 제가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근데, 승호씨가 위험해지지 않으시겠어요? 아무래도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의심할 할 텐데요. 지난번 사건도 있고..."

"괜찮아요. 차 시동을 걸면 송풍구에 연결된 방향제가 작동하면서, 그가 숨 쉬는 동안 미세입자가 그의 몸속으로 흡수될 거예요. 그 시간에 원장님과 저는 서로 다른 곳에 있게 될 겁니다.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는 거죠."


그는 다시 한번 당부하듯이 다시 말을 했다.


최 사장은 늘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와 함께 차 키를 놔둡니다. 잠깐의 혼란 중에 원장님께서 그의 휴대전화나 차 키를 우연인 듯 떨어뜨리면 자연스럽게 키를 저한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최 사장은 원래가 과시욕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늘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와 함께 차 키를 놔둡니다. 최 사장을 정신없게 만드시고 그때 제가 원장님 옆을 지나갈 때 차 키를 제게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원장님께서는 제가 설치를 마칠 때까지 최 사장의 관심만 잡아주세요."

"네.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제 하시게요?"

"내일입니다. 오늘이 목요일이니 내일 저녁 최 사장이 그 식당에 갈 겁니다. 이 원장님은 최 사장보다 조금 먼저 가서 계시면 의심받지 않으실 거예요."

"알겠어요."

"그럼 자세한 내용은 내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이 원장은 승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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