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10화

10. 나쁜 회사

공모자

by Bookish

그날따라 김 부장은 예정에 없던 야근으로 늦었다. 비록 퇴근은 늦고 온몸의 기운은 다 빠졌지만 자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손에 들고 있는 치킨 봉지가 무겁지 않았고 발걸음은 구름을 걷는 듯했다. 김 부장은 50이 넘어서 얻은 아들을 깨질까 애지중지 키우고 있었다.


아가. 조금만 기다려라. 내 금방 갈 테니 우리 치킨 같이 먹자.


한적하고 어두운 지방 소도시의 길은 가로등이 없는 곳이 많아 달빛이 없는 밤이면 가끔 지나다니는 전조등에 의지해야만 길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날도 무척이나 어두운 밤이었다.


김 부장이 거의 단지 입구에 다달을 때였다. 원래는 깜깜해야 할 단지 입구가 번쩍거리는 불빛에 휩싸여 있었다. 김 부장은 어리둥절했다. 지금껏 이 작은 읍내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가까이 가자 불빛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까지 내린 비로 검게 흐르는 하천 옆에 구급차와 경찰차의 붉은 경광등 불빛이 요란하게 깜빡거렸다.


김 부장은 경광등 불빛이 꽤나 방정맞게 촐싹댄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몰려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한 소년이 구급대원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나왔다. 들 것에는 한 어린 소년이 누워 있었고, 소년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은 허공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우리 애가 갑자기 왜 이런 거야? 낮에 까지만 해도 멀쩡했단 말이야. 이게 대체 일이래."


옆집 박씨아냐? 그럼 저 애는 박씨 아들 수호? 김 부장은 자신과 가까이 지내던 박씨의 저런 당황한 모습을 난생처음 보았다.


"이봐. 박씨. 이게 무슨 일이야?"


김 부장은 울부짖는 박씨의 팔을 잡고 물었다. 박씨는 정신을 못 차린 듯 옆에서 누가 팔을 잡은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김 부장은 다시 한번 박씨의 잡은 팔을 흔들었다.


"이것 봐. 박씨. 정신 차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수호가 왜? 왜 저기 있어?"


그제야 정신이 약간 든 박씨가 김 부장을 알아봤다.


"나도 몰라.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정신을 못 차리고 저러고 있잖아."


김 부장에게 짧은 대답을 하고는 수호를 데려가는 구급대원을 향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것 봐요. 우리 애가 도대체 왜 이러냐고?"

"선생님. 저희도 정확한 것은 몰라요. 빨리 병원으로 가 봐야 해요."

"그래도 당신들은 알 거 아냐?"

"아니, 저희도 명확하게는 잘 몰라요. 보호자 되시죠? 어서 타세요. 같이 가셔야 해요."


구급대원은 박씨를 구급차 속으로 밀어 넣다시피 태우고 문을 닫았다. 경찰은 구경꾼들을 벌리며 출구를 열었다. 그 사이로 간신히 구급차가 빠져나갔다. 사람들 무리를 빠져나가 구급차는 곧바로 사이렌을 켜고 멀어졌다. 소리가 작아지자 사람들도 하나둘씩 흩어졌다. 김 부장도 차갑게 식어버린 치킨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굳게 닫힌 XX케이컬 본사 사장실 문 밖으로 큰 소리가 들렸다.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도 들렸다.


"야이 새끼들아. 니들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사장실 소파 한가운데 앉은 최동섭 사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떨렸다. 그 앞으로 양쪽으로 길게 펼쳐진 오래된 검은색 소파에는 작업복 점퍼를 입은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점퍼 상의에는 노란색 실로 XX케이칼이라고 자수가 박혀 있었다. 최 사장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침을 튀기며 떠들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재떨이를 손에 쥐고 들었다 놨다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이 김 부장."

"네."

"너 뭐야? 그러고도 월급을 받아가?"

"죄송합니다."

"뭐? 죄송? 죄송하다면 다야? 이 새끼야."

"..."


최 사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또다시 흥분해 말을 이었다.


"니들도 다 마찬가지야. 니들이 합심해서 나 엿 먹일라고 그런 거지? 어? 그래. 니들이 나 엿 먹여서 쫓아내고 니들이 내 회사 먹으려고 그런 거야. 내 말 맞지? 그렇지?"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이 긴장된 상황이었다. 자칫 그 긴장이 깨지는 일이 벌어진다면 최 사장 손에 쥐고 있는 재떨이가 날아올 판이었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최동섭 사장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행히 손에 쥐고 있던 재떨이도 원래 자리를 찾았다. 담배를 두 가치나 연달아 피고 난 최 사장은 그제야 좀 진정이 되었는지 한숨을 내 쉬곤 말을 꺼냈다.


"이번 일, 절대 커지면 안 돼. 어떻게 해서든지 조용히 시켜. 알았어?"


그는 옆에 앉은 김 부장을 강하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봐 김 부장!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번 일로 내 이름이 나와서는 절대 안 돼. 알아들었어? 밥값 좀 하란 말이야. 그리고 이번 건 네가 회사 방침 어기고 한 것으로 해. 잘만 마무리되면 이사로 올려줄 테니까."


김 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사장님. 지난번에 사장님께서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말고, 비가 내릴 때 폐기물 흘려버리라고 하셔서..."


최동섭이 김 부장 쪽으로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다행히 재떨이는 김 부장 머리 위로 날아가 벽에 부딪친 뒤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입 안 다물어? 이 회사 망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어?"


김 부장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최 사장은 이겼다는 듯이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김 부장. 자네 아들 아직 어리잖아. 자식새끼 영원히 이 촌구석에서 키울 거야? 그래서 농사나 짓게 하려고? 도시로 학교 보내야지. 안 그래? 잘 생각해 보고 현명하게 판단해."


최 사장은 모두를 내보내고 소파에 몸을 묻으며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새끼들이 꼬박꼬박 밥 먹여주고 월급 쥐어주니까 누가 주인인 줄 몰라. 이 새끼들이."


최 사장이 내뿜은 담배연기가 사장실을 가득 채웠다.


며칠 뒤 XX케이칼 앞에 이동 방송차량과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비 오는 날 이 회사에서 몰래 유독성 폐기물을 몰래 개울로 방류했고, 개울에서 놀던 아이가 그 폐기물에 포함된 독극물에 중독된 사실을 신문과 방송이 보도한 것이다. 처음에는 지방의 작은 지역신문 한쪽 구석지면에 단독 기사로 보도되었지만, 특종에 메말라 있던 대형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몰려온 것이었다. 해가 저문 지 한참이 되었지만 그들은 떠날 줄을 몰랐다. 회사 정문은 이들이 내뿜는 조명으로 한낮같이 밝았다.


김 창수 부장은 공장 뒤편 자재창고의 바닥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찬기가 올라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의 발길이 멈추자 거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다.


"이것 봐요. 김 부장님. 일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김 부장은 올라오는 찬 기운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경찰서 가서 말 몇 마디하고 죄송합니다... 사과만 하면 되잖아. 응? 그게 그렇게 힘들어?"


그 남자는 김 부장을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 그... 그래도 제가 한 게 아니고... 사장님이 시켜서...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딱딱한 구둣발이 김 부장의 배로 날아들었다. 김 부장은 순간 숨이 막혀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집에 있는 아들 안 보고 싶어? 자꾸 그러면 네 아들 내일 아침 햇빛도 못 봐. 그러면 네 마누라는 미친년처럼 돌아다닐걸? 남편새끼랑 자식새끼 동시에 저세상으로 보낸 년 제정신에 살 수 있을 것 같아? 뭔 말인지 알아들어? 너만 잘 선택하면 남은 식구들 잘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왜 말을 안 들어? 어? 그 머리로 어떻게 부장까지 올라갔냐고."


그 남자는 쓰러져 있는 김 부장에게 다가가 말을 계속했다.


"당신만 책임지겠다고 하면 다 끝나는 거야. 이봐. 여기 우리가 당신 사과문도 써 왔잖아. 얼마나 쉬워... 그냥 여기 사인만 해. 그럼 모든 게 다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거야. 알아들어?"

"예...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데로 다 할 테니 제발 부탁입니다. 제 가족만은..."


남자는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건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이제 생각이 바뀌었어? 자. 여기 볼펜...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남자는 김창수가 서명한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그의 점퍼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자. 이제 다 되었으니까... 이거 가지고 경찰서에 가서 경찰에게 줘.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잘 기억해. 결론은 당신이 돈 욕심에 눈이 멀어 벌인 짓인 거야. 응? 회사는 폐수가 유출되지 않도록 설비를 점검하고 발생한 폐수를 처리업체에 돈을 주고 처리를 요청하라고 지시한 거야. 알아들어? 근데, 당신이 비 오는 날 개울로 흘려보냈고 총무 쪽에는 잘 처리한 것으로 서류를 써서 그 비용은 네가 빼돌리려고 한 거지. 알았어? 근데 재수 없게도 개울에서 놀던 애가 모르고 조금 먹게 된 거야. 그 때문에 중독된 거고. 이해했지? 이해했냐고. 나중에 딴 소리하면 그냥 너네 가족들 다 죽을 줄 알아."


남자는 다시 한번 상기시키려는 듯 김창수의 배를 걷어찼다.


다음날 신문에는 이 사건은 김창수의 개인적 욕심에 의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의 집 현관은 동네 사람들이 던진 달걀과 음식물 쓰레기로 범벅이 되었고 악취가 심하게 났다. 수호의 아버지인 박씨는 매일같이 찾아와 현관을 발로 차며 소리를 질렀다.


"내 아들 이렇게 만든 놈. 어디 갔어! 당장 안 나와? 너 거기 숨어 있는 거 다 알고 왔어. 빨리 나와!"


현관문 안쪽은 불이 꺼져 있었다. 안방에서는 그의 가족들이 웅크린 채로 잠이 들었다. 김 부장은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거실 바닥에 벌써 빈 병들이 여럿 굴러다니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술잔에 김 부장의 눈물이 떨어졌다. 그는 그 술잔을 천천히 마신 후 내려놓았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안방문을 슬며시 열고 잠들어있는 가족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얌전히 색색 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아들의 모든 머리카락을 기억하려는 듯 한 올 한 올 손으로 매만졌다. 그 옆에 잠들어 있는 아내의 손을 살포시 쥐었다.


"미안해. 그리고 잘 부탁해."


이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방을 나왔다.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술 병을 모두 한쪽으로 정리하고 거실 테이블도 깨끗하게 닦았다. 어두운 밤 베란다 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깨끗해진 테이블에 반사되어 거실 벽이 환했다. 드르륵하며 베란다 창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달빛이 비친 벽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거실 한쪽에 세워둔 빨래 건조대에 걸린 수건이 바람에 날렸다. 밖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김창수 부장의 집 거실 위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그간의 모든 상황이 적혀있었다. 모든 시선이 최동섭 사장에게 향했지만 경찰의 조사는 김 부장의 행위로 결론 내려졌다.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관련 내용은 이미 김 부장이 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관련 서류는 지역 신문에서 보도하기 전부터 미리 만들어져 있었다. 당초 폐수의 방류가 최 사장의 구두로 지시한 것이라서 서류를 새로 만드는 일은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쉬웠다.


최 사장은 방송에서 억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 눈물이 신맛이 날지 짠맛이 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승호는 표정 속에서 웃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승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세게 쥐어졌다.


"저런 괴물이 나를 만든 거야."


그는 차가운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곧 김창수 부장 뒤를 따라가게 될 테니 사과는 그 사람에게 해라."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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