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12화

12. 세 번째 살인

공모자

by Bookish

붉은 저녁노을과 함께 어둠이 슬며시 몰려오고 있는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네온사인이 입구를 밝히고 있었다. 레스토랑은 고급스럽고 차분하며 클래식한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었고 커다란 통유리창을 통해 식당 내부의 조명이 은은하게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입구 양 옆에 놓인 키 작은 화분에는 전구가 반짝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겉에서 보는 화려함과는 달리 이 식당은 주로 지역의 유명인사, 사업가들처럼 주로 조용하고 은밀한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레스토랑 건너편 가로수 그림자 아래 승호가 서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초조하게 손을 주물렀다. 시곗바늘은 정확히 오후 8시를 가리켰다. 그때 그의 시야에 검은색 벤츠 S클래스가 미끄러지듯이 식당 뒤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 식당은 앞문으로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유명세가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주차장에서도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최 사장은 항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뒷문으로 출입했다. 특별히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뒷문으로 드나들면 꼭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의 운전석이 열리고 최 사장이 내렸다. 그를 보는 사람은 없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 원장은 최 사장 도착 30분 전 이미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는 척하며 최 사장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최 사장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 승호는 바로 옆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가 보행신호를 기다렸다. 공연히 무단횡단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너 건물 뒤편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최 사장은 늘 그렇듯 입구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로 이동했다. 최 사장은 항상 정문입구 쪽 창가 자리로 예약을 했다. 이날도 최 사장은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최 사장이 앉은자리는 정문 입구 쪽에 가깝고 주차장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이런 최 사장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오히려 승호의 작업을 쉽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오늘은 어떤 것으로 드시겠습니까?"


식당 지배인이 다가와 최 사장을 아는 척하며 물었다.


"뭘 묻고 그래? 항상 먹던 걸로 가져와."


매니저는 최 사장의 거만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깍듯이 인사한 후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트러플 크림소스를 곁들인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와인과 함께 가지런히 놓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매니저가 사라지고 최 사장은 테이블 위 한쪽에 자신의 휴대전화와 벤츠 로고가 반짝이는 리모컨 키를 울려두었다. 근처 테이블에서는 이 원장이 식사를 하며 최 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 사장은 접시 위에 놓은 스테이크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접시 위에는 몇 점 남지 않은 부드러운 핑크빛 고기와 함께, 반쯤 남은 소스가 펼쳐 있었었다.


그 옆에 샐러드를 담았던 작은 접시와 바게트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최 사장은 바삭한 빵의 끝을 손으로 뜯어 남은 소스를 바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와인 잔을 천천히 들어 음미했다.


최 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 원장이 일어났다. 한 손에 핸드백을 들고 출구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 원장이 최 사장 옆을 지나가는 순간, 들고 있던 핸드백을 팔에 걸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물 잔을 살짝 건드렸다.


"어이쿠야."


잔에 담긴 물이 테이블을 지나 최 사장의 사타구니로 흘러내렸다. 최 사장이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원장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당황한 모습을 취했다.


"어머. 죄송해요. 이를 어쩌나?"

"아니, 어쩌긴 뭘 어째? 이거 어떻게 할..."


최 원장은 벌컥 화를 내다가 이 원장의 얼굴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아... 괜찮습니다. 하하. 그럴 수도 있지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이거 너무 죄송해요."


이 원장이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최 사장의 허벅지를 닦았다. 최 사장의 입가에서는 음흉한 미소가 흘렀다.


"어떻게 하죠? 많이 젖은 것 같아요."


이 원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최 사장의 차키를 살짝 덮었다. 그리고 핸드백에서 티슈를 꺼내 다시 최 사장의 사타구니 쪽으로 가져갔다. 최 사장은 조금 전 마신 와인 때문인지 얼굴이 발그스레 달아올랐다.


"아... 아... 이제 괜찮습니다. 더 안 하셔도 됩니다."

"아직 얼룩이 남았어요."

"하하하. 어차피 갈아입을 옷이라 괜찮아요."

"정말 죄송해요. 세탁하시고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제가 보상해 드릴게요."


이 원장은 명함을 꺼내 최 사장 눈앞으로 내밀었다. 최 사장이 명함을 받아 바라보는 그때 이 원장은 손수건에 가려진 차키를 들어 몸 뒤로 감추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

"아닙니다. 개의치 마세요. 그럴 수도 있죠..."


그 순간 어느새 레스토랑 안에 들어와 있던 승호가 이 원장 뒤를 지나쳐가며 그녀 뒤로 감추었던 최 사장의 차키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주차장과 연결된 뒷 문으로 빠져나갔다.


"이럴게 아니라, 제가 죄송한 마음을 그냥 가지고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커피 한잔 살게요. 괜찮죠?"

"네... 아... 네... 그럼 그럴까요?"


최 사장이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원장이 최 사장 옆 의자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최 사장도 따라 자리에 앉았다. 이 원장은 최 사장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뒷문으로 빠져나온 승호는 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그리고 남아 있을지 모르는 지문을 닦기 위해 차키 표면을 문질렀다. 까만색 버튼을 누르자 딸깍하고 차 문이 열렸다. 자동차 내부는 세련된 고급 가죽 향과 고급 방향제의 부드러운 향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는 에어컨 송풍구에 꽂혀 있는 방향제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미리 준비한 작은 유리명을 꺼냈다. 병 안에 든 농축 독극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뚜껑을 닫았다. 천천히 흔들어 섞은 다음 원래의 자리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블랙박스의 메모리를 제거한 후 차에서 빠져나왔다.


완벽했다.


승호는 다시 레스토랑 뒷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최 사장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지나치며 허리를 굽혔다.


"혹시... 이거..."


그가 허리를 펴며 차키를 들어 보였다.


"아... 네... 그게 언제 떨어졌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하하."


최 사장이 웃으며 리모컨 키를 받았다.


"어머. 아까 제가 실수할 때 떨어졌나 봐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오늘 제가 계속 실례를 범하게 되네요.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아이고...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런 걸 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이 원장이 시계를 보며 자리를 일어섰다.


"아니. 왜 벌써 가시게요? 아직 커피도 다 안 드시고..."

"제가 조금 뒤에 약속이 또 있어서요. 오늘 실례 많았어요."

"아니... 그래도..."

"죄송해요. 이만 가봐야 해서... 세탁하시고 거기로 연락 주세요."


이 원장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명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아... 네..."


최 사장은 아쉬운 듯이 멀어져 가는 이 원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승호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이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몇 시간만 있으면 최 사장은 그동안 그가 행했던 모든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승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원장이 나간 방향으로 뒤를 따라 나갔다.




승호가 나가고 나서 약 한 시간 후 최 사장은 레스토랑을 나와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냈다.


"뭐... 이 정도면 알코올이 다 빠져나갔겠지? 안 나갔으면 또 뭐 어때?"


이 도시는 최 사장의 힘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라 음주운전 적발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항상 그랬듯이 지역 경찰은 최 사장의 차량 번호만 봐도 그냥 보내주곤 했었다.


운전석 문을 열고 가죽 시트에 몸을 묻었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부드러운 엔진 소리가 가슴을 두드렸고 차량 내부엔 익숙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신나는 유로비트 음악이 차체를 흔들었다. 최 사장은 그 박자에 맞춰 가속페달을 밟았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는 굉음을 내며 도로로 접어들었다. 차량이 번화가를 벗어나 한적한 외곽 도로에 접어들 무렵, 그는 목구멍에 따끔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몸의 변화였다. 헛기침을 하며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창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몸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이게 뭐야?'


최 사장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최 사장은 목을 잡고 있던 손을 가슴으로 옮겼다. 심장 부위를 몇 차례 주먹으로 쿵쿵 쳤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손으로 눈을 비볐다. 가쁜 숨을 통해 들어오는 방향제 향기가 이제는 불쾌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손에 힘이 빠져 최 사장의 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생각이 손 근육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며 몸부림쳤다. 어둡고 좁은 지방도로에는 가로등 불빛 없이, 두 개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흔들거렸다. 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무서운 공포감이 밀려왔다.


"헉... 헉..."


더 이상 가면 안 될 것 같아 브레이크로 발을 옮겨 눌렀다. 발에서는 아무 느낌이 올라오지 않았다. 차는 이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 사장은 아래를 내려보았다. 브레이크 페달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 그의 발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가속페달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의 시야는 점점 흐려졌고 좁아졌다. 앞의 모든 사물들이 겹쳐 보였다. 핸들에서 손이 떨어졌다.


'아... 안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땀 방울이 최 사장의 두툼한 배 위에 떨어졌다. 이제는 목구멍이 붙어버린 것 같았다. 가슴을 부풀렸지만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입을 크게 벌려 공기를 빨아드렸지만, 공기의 흐름음 멈춰있었다.


차량이 급격히 흔들리며 갓길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의 흐린 시야에 다가오는 회색 기둥이 보였다. 전신주였다. 급히 핸들을 잡고 방향을 틀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떨어진 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손인 것처럼 머리에서 내린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쾅!


차량과 전신주가 정면으로 부딪히며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충돌로 인해 전신주가 넘어지고 차량의 본닛은 움푹 파였다. 차량의 모든 창문과 라이트는 산산이 부서져 눈 조각처럼 쏟아졌다.


최 사장의 머리에서 흐른 피가 핸들이 빨갛게 물들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


조용한 밤하늘 아래 차에서 피어오른 하얀 연기가 검은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차 바닥에서 불꽃이 튀었다. 잠시 후 폭발음에 깊은 잠을 자던 새들이 날아올랐다. 곧바로 주변이 환해졌다.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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