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08화

8. 두 번째 살인

공모자

by Bookish

승호는 채영을 보내고 집밖으로의 외출은 멈추었다. 수염은 중구난방으로 온 턱을 덮고 있었고, 머리는 오히려 윤기가 흘러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현관에는 평소에 신던 신발 대신 라면 박스가 차지했고 식탁에는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가 가득했다. 주방 싱크대 안은 끈적끈적한 음식물 찌꺼기가 가득했고 무엇보다 냄새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었다.

승호는 한쪽에 자리 잡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채인을 그렇게 만든 차대서 의원에게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었다. 이미 관련 내용을 신문과 방송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지만 그들로부터는 그 어떤 회신을 받지 못했다. 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차대서 의원의 지역구는 승호가 사는 동네였고, 지역사무소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건물은 승호가 출퇴근할 때 항상 지나다니는 곳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가끔 그 앞에서 차 의원을 본 것 같기도 했다. 한 번은 퇴근길에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고 있었는데 그 건물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승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를 한 채로 집을 나섰다. 평소 마스크를 착용할 때마다 미세먼지를 원망했지만, 이번에는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 의원의 지역사무소는 그 건물 10층에 있었다. 승호는 로비 한쪽 구석에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릴까 겁이 났다.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혹시나 하고 노트를 해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승호는 문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덜컥거리는 소리만 나고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 오셨어요?"


승호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비록 얼굴은 모자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돌아보았다. 건물 관리인이 서 있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아... 의원님 지지자인데 의원님을 좀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이런, 의원님 오늘 안 나오시는데..."

"그런가요? 하하" 승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언제쯤 뵐 수 있을까요?"

"그건 잘 몰라요. 워낙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이라."


승호는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아... 그럼 다시 와야겠네요. 그럼 이만..."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승호는 다시 사무소를 찾아갔지만 그날도 지역사무소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승호는 포기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유난히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승호는 닫힘 버튼을 눌러 문이 닫히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닫히는 그때 불쑥 손이 들어와 문이 다시 열렸다. 몇 번 마주쳐 얼굴이 익숙해진 건물 관리인의 손이었다. 승호는 초초해 보이는 미소로 관리인을 바라보았다.


"저기...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관리인이 머뭇거렸다.

"의원님은 사무소에 거의 안 오시고... 가끔 이 건물 3층에 있는 피부관리숍에 가세요. 거기 알아보는 게 빠를 겁니다."


늙은 정치인이 피부관리숍이라니. 승호는 어이가 없었다. 관리인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조용히 덧붙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방문하시니까 날짜 잘 맞춰봐요."


관리인이 문에서 손을 떼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승호는 그제야 가벼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60이 넘은 정치인이 피부관리라니. 물론 지탄받을 일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예상을 벗어난 이야기였다.

그날 이후 승호는 차 의원의 일정을 확인할 겸 관리인이 말한 피부관리숍을 여러 번 방문하며 직원들과 안면을 익혀두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차 의원이 샵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도 듣게 되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말 그대로였다. 차 의원은 샵에서도 직원들에게 성추행을 일삼았고 그 뒷수습은 차 의원의 보좌관들이 담당했다.




승호는 오랜만에 사무실로 출근했다. 최근 승호에게 벌어진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둘씩 승호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전했다. 승호는 그들에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승호는 연구소 책상 앞에 앉아 회사 인트라넷 서버에 접속했다. 그리고 최근 부작용 때문에 개발이 중지된 신약 데이터 파일을 열었다.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여 빨간색 아이콘이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는 항목을 선택했다.


'테트라카인: CYP450 효소 강력 억제제'

'보통 무해하나, 칼슘 채널 차단제(고혈압약)와 병용할 경우 급성 심정지 발생 가능. 특히 피부흡수만으로도 작용함'


모니터 속 붉은색 경고문구가 승호의 눈앞에서 깜빡거렸다. 이 약의 개발은 동물실험 결과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안정성 재확인을 위해 보류되었다.


'이거야! 이거면 될 거야.'


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 가득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왼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차 의원은 항상 자신이 관리를 받는 동안은 다른 손님들이 샵에 있지 않도록 요청했다. 워낙 갑자기 요청하는 터라 직원들은 차 의원이 방문하기로 예정되었던 시간에 미리 예약한 손님들에게 일일이 연기하거나 취소전화를 했다. 승호 역시 연기 전화를 받았지만 오히려 예약시간을 차 의원이 방문하기 전 시간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승호는 테트라카인 성분을 첨가한 패치를 가방에 넣었다. 샵에 방문한 승호는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피부관리를 받기 위해 개인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준비해 간 패치를 바꿔치기했다. 차 의원이 사용하는 패치통에는 차 의원의 이름이 붙어있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패치는 차 의원만 사용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일도 전혀 없었다. 승호는 차 의원에 대해 조사할 때 고혈압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파악했으며, 다른 손님들에 대한 대략적인 특성도 조사해 두었다. 만에 하나 일반인이 사용한다고 해도 이 샵의 특성상 고혈압 약을 복용할 만한 손님은 없었다.


승호가 관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 그때 문이 열렸다.


"지잉..."


차대서 의원이 보좌관과 들어왔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던 직원이 차 의원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의원님"

"어. 그래. 별일 없지?"

"네. 항상 의원님 덕분이에요. 호호호"

"그리고 내가 올 때는 다른 손님은 받지 말라니까."


차대서 의원은 승호를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이 원장 자리에 있지?"

"네. 말씀드릴게요."


카운터 직원이 원장실로 쪼르르 달려갔다. 승호는 차 의원 옆을 지나쳐 샵을 나왔다. 샵 문이 닫히자 승호는 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채인 아. 조금만 기다려"


개인실로 들어간 차 의원은 준비된 가운으로 갈아입고 테이블 위에 누웠다. 이윽고 이 원장이 들어왔다. 이 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아. 의원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별일 없지?"

"네... 그럼요." 이 원장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차 의원에게 다가갔다.

"지난번에 하던 대로 해 줘. 그거 효과 좋은 것 같아. 보는 사람들 마다 젊어졌다고 한단 말이야. 허허허허허"


차 의원은 이 원장의 입술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이 원장은 아까 승호가 바꿔놓은 패치를 차 의원 얼굴에 하나씩 붙였다. 그리고 차 의원의 손바닥도 이 원장의 허벅지에서 허리까지 붙어서 움직였다.


한참 후 이 원장이 개인실을 나왔을 때, 표정은 굳어 있었고 얼굴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는 모습이 문 밖으로 잠시 내비쳤다. 차대서 의원이 허리띠를 조이면서 개인실로 나왔고 보좌관을 향해 만족한 듯이 웃었다.


"나는 말이야. 여기 와서 관리를 받으면 항상 젋어지는 느낌이란 말이야. 하하하하하"

"네.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 다음 어디지?"

"잠시 후에 지역 행사에서 축사하나 만 하시면 오늘 일정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동 시간이 있어서요. 지금 출발하시면 시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 가자."


차 의원은 원장실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이 원장. 오늘 수고했어. 다음에 또 보자고"


원장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저 이번 회기 내에 국회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예산 및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 의원이 축사를 마치자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 의원은 원고를 양복 안쪽 주머니에 넣고 오른편 계단을 통해 무대를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차 의원이 갑자기 왼쪽 가슴을 움켜쥐며 한마디 비명을 질렀다.


"헉!"


그리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보좌관이 차 의원에게 뛰어갔다.


"의원님! 의원님!"


장내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좌관은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며 소리를 질렀다.


"구급차! 119 불러 빨리!"


모든 것은 승호의 계획대로였다. 차 의원의 심장은 그 구급대원이 오기 전에 멈추었다. 차 의원이 사망하고 경찰은 며칠간 피부관리숍과 의원 지역구 사무소를 조사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게다가 의원의 유가족과 당에서 더 이상의 조사를 막았고 결국 자연사로 마무리되었다. 승호는 그날 바꿔치기 한 패치를 다시 회수하려 피부관리숍에 찾아갔다. 카운터에 직원은 없었고 때마침 원장실에서 이 원장이 나왔다.


"어쩐 일로 또 오셨어요? 어제 왔다 가셨잖아요?"


승호는 마땅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연속 이틀 동안 피부관리를 받는 것도 이상한데 그것도 남자가 연속으로 오다니.


"아... 뭘 좀 흘리고 간 것 같아서요. 혹시 그날 왔을 때 개인실에 흘렸나 해서 좀 찾으러 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어색한 변명이었다. 이 원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승호에게 원장실에서 잠시 얘기를 하자고 했다. 승호는 순간 당황했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워 아무도 모르게 성공까지 한 그날 그 일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이 원장이 먼저 원장실로 들어가고 승호가 뒤따라 갔다. 승호가 들어오자 이 원장이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 좀 앉으세요."


승호는 두근거리는 가슴의 진동을 느끼며 맞은편에 앉았다. 원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실 개인실 앞 복도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어요. 그날 의원님 오시기 전 복도에서 승호씨가 패치를 꺼내서 개인실로 가져가는 모습을 봤어요."


순간 승호는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들켰다.'


"여기..."


이 원장이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그 화면 속 승호는 주변을 살피며 가방에서 패치를 꺼내 차 의원이 사용하는 개인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냥 넘기기에는 좀 수상해 보여서요. 그리고는 그날 차 의원이 죽었고요."

"..."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그 개인실에 비치된 패치를 보니 저희가 사용하는 패치가 아니었어요. 뭔가 손대신 거죠?"


승호는 무릎 위에 두었던 가방을 끌어당기고 두 손을 주물렀다


"그날 이후 너무 불안했어요. 차 의원이 죽은 것과 관련이 있을까 해서요. 그런데 지금 승호씨의 모습을 보니 제 생각이 맞나 보네요. 뭔가 하신 거죠?" 이 원장은 고개 숙인 승호를 보며 말했다.


이 원장은 삼촌이 평소 차 의원과 같은 고혈압 약을 먹다가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하는 바람에 쓰러졌던 기억을 얘기했다. 그래서 승호를 의심하게 되었고 일전에 받았던 승호의 명함을 보고 승호가 제약회사 직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승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이 원장에게 모두 말했다.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되셨으니 경찰에 신고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불만도 없고요. 채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어요."

"처음엔 신고를 할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원장이 힘들게 말을 이었다.

"사실 승호씨 여자친구가 당했던 일을 저도 차 의원에게 개인실에서 여러 번 당했어요."


이 원장은 잠시 멈췄다 다시 말했다.


"신고를 왜 안 했냐고요? 신고를 할 수가 없었어요. 해봤자 소용도 없을 것 같았고요. 차 의원의 대상은 승호씨 여자친구와 저만이 아니에요. 근처에 젊은 여자만 있으면 대상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구만 채웠어요. 그리고 권력을 이용해서 매번 빠져나갔어요. 그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신고한 사람에게 돌아왔지요. 그런 인간은 죽어 마땅해요. 승호씨 덕분에 저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승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이 원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경찰이 와서 조사하기 전에 영상은 모두 지웠고 cctv는 고장을 내버렸어요. 그래서 경찰도 cctv가 고장 나서 그날 녹화된 영상이 없는 줄로 알고 있어요. 심장마비가 여기서 일어난 것도 아니고, 경찰도 국회의원이 피부관리숍을 다녔다는 사실이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전 승호씨 편이에요."


승호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간신히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항상 생각했어요. 그런 짓을 하는 악마들을 누가 좀 없애줬으면. 영화에 나오는 베트맨이 나타나서 그 못된 나쁜 놈을 없애주길 바랐었는데, 승호씨가 그렇게 해 주신 거예요. 승호씨 아니었으면 저도 여자친구분처럼 얼마 못 갔을 거예요. 승호씨가 제겐 영웅이에요."


승호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놈들은 없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및 사건은 완전히 허구이며, 실존 인물, 생존자 또는 사망한 인물, 사건, 기관, 단체 및 기업과의 유사성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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