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07화

7. 차대서 의원

공모자

by Bookish

오래된 한옥집 마당 한가운데에는 연못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못을 둘러싼 정원수는 마치 연못을 보호하듯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 비밀스러운 요정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늦은 밤 인기척이 없는 적막 속에서도 낮은 웃음소리와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간간이 새어 나왔다.


야릇한 조명이 비치는 방 한가운데 자리 잡은 큰 자게 상 위에는 갖가지 음식이 차려 있었고 문쪽은 A그룹 최동호 회장이 혼자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자 최 회장이 벌떡 일어나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아이고 의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최 회장과 차대서 의원이 반갑게 악수했다.


"우리 최 회장님은 그간 별고 없으시고?"


차의원은 특유의 능글맞게 웃음을 띠며 악수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최 회장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차 의원님... 벌써 4선째 의정생활이 다 끝나가시네요. 다음 선거도 바로 준비하셔야죠?"

"아이... 뭐... 충분히 많이 했는데.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빨리 빠져줘야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오고 그러지. 그래야 이 나라의 정치 발전도 이룰 테고 말이야. 허허허"


'늙은 여우새끼. 저렇게 얘기해 놓고선 이번에도 또 돈얘기 하겠지.'


"그럼 이번에도 부디 제가 의원님 당선을 위해 힘을 보탤 기회를 주시면... 전력을 다 해 힘쓰겠습니다."

최 회장이 차의원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아이고 그래만 주신다면야 제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지요. 껄껄껄"


차 의원은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소리를 내며 술을 들이켜고 입가에 묻은 술을 혀로 핥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무슨 일로 갑자기 연락을... 누가 우리 최 회장 앞길에 방해가 됩니까? 아니면 고민이 있으신가? 제게 말씀해 보시지요. 무슨 일입니까?"

차 의원은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말투였다.


"아... 그게... 저... 다름이 아니라 제... 아들놈 때문에요."

"아니 아드님이 왜요?"

"혹시 뉴스를... 아... 워낙 바쁘신 분이니 뉴스를 못 보셨겠군요."

"아드님... 이름이 수철이라 했던가요? 수철이가 왜요?"

"그게... 저 이번에 저희 애가 실수를 좀... 이 녀석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술을 먹고 운전을 하다 실수를 좀 했습니다."

"아. 그래요? 저런 저런. 많이 다쳤어요?"

"제 아들놈은 괜찮은데, 상대 운전자가 사망을... 그래서 지금 구치소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이고.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애를 좀 꺼내왔으면 합니다."

"하하하. 그것 때문에 최 회장님 안색이 안 좋으셨나 봅니다. 뭐 그깟 일로 그리 걱정하십니까.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지검장이 제 후뱁니다. 걱정 말고 계십시오. 제가 연락 한 번 해보지요. 야! 홍비서... 홍비서 어디 있어? 내 핸드폰 좀 가지고 들어와!"


그 자리에서 차대서 의원은 보좌관을 불렀다. 방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가 들어와서 차의원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의원님. 여기..."


여자는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어. 그래. 아... 그리고 나가지 말고 잠깐 앉아있어."


차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여자의 손목을 가볍지만 단호하게 붙잡아 끌어내렸다. 여자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곧 포기한 듯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최 회장의 입꼬리엔 미묘한 미소가 스쳤다.


차대서 의원은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최동호 회장은 차 의원 옆에 앉아 있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차 의원은 말없이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로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술잔을 가리켰다. 여자는 주전자를 들어 술을 따랐다.


"여이... 고길석이... 별일 없지? 어... 어... 그래... 다름이 아니고 내가 말이야... 내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최동호 회장 있잖아. 그래. 그래. A그룹 회장. 그 집 아들이 이번에 좀 문제가 생겼어. 어? 이름? 수철. 최수철이. 그래. 그래. 거 뉴스에 좀 안 나오게 조용히 처리하지... 아무튼 걔 있잖아. 걔 좀 잘 처리해 줘. 젊은 사람이 말이야 술 좀 마시고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어... 뭐 별로 큰 일도 아니고 말이야. 자네 선에서 별문제 없이 좀 집에 보내주란 말이야. 그래 그래. 며칠 뒤에 한번 보자고. 어. 어. 수고 좀 해줘. 그래 들어가고..."


"어떻게... 잘 처리될까요?"


최 회장이 차 의원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아이고.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차 의원은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옛날부터 저를 좀 많이 따랐습니다. 제가 말했으니 다 잘 해결될 겁니다." 하며 술잔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빨았다.

동시에 다른 쪽 손은 옆에 앉아 있던 여자의 허벅지 위로 뱀처럼 미끄려져 올라갔다. 여자는 움찔거리며 차의원의 손을 막았지만 이내 멈칫했다.


"아. 여기 옆에 이 친구는 홍비서라고 합니다. 뭐 해? 빨리 인사드리지 않고."

"송채인입니다."


그녀는 볼에 홍조 띤 굳은 얼굴로 최 회장 쪽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언듯 봐도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듯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별거 없는 앤 데 그냥 일 좀 가르쳐 주느라 데리고 있어요."


차의원이 음흉한 미소를 띠며 여자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역시 우리 의원님. 불철주야 나라를 위해 바쁘신데 이렇게 젊은 사회 초년생에게 까지 일을 가르쳐 주시고... 역시 의원님은 대단하십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두 사람의 끈적한 웃음소리가 밀실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건... 이번 일에 대한 제 자그마한 성의입니다."


최 회장은 잠시 망설이듯 가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능숙하게 차 의원 쪽으로 밀어놓았다.


"부디 부담 갖지 마시고 나라를 위해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허, 뭐 이런 걸 다. 그동안 후원해 주신 것도 제가 다 보답을 못 해드렸는데..."

"지금보다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의원님은 충분히 받으실 자격도 있으시고요. 하하하."

"그래요. 최 회장 같은 분들이 애국자입니다. 애국자. 하하하하하"


두 사람은 술상 위에서 서로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차의원의 한쪽 손은 상 아래에서 바쁘게 여자의 허벅지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손으로 더러운 손을 밀어내고 있었다.




승호는 양손을 서로 주무르면서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침대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고 최근 통화 목록에서 제일 위에 있는 사람에게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며칠째 채인이 전화를 받지 않자 승호는 점점 불안감에 휩싸였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던져 놓고 냉장고 쪽으로 몸을 틀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반쯤 먹다 만 생수를 들어 안에 있는 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입에서 떼지 않고 마셨다.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펼쳤다.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글씨의 흔적만 따라갈 뿐이었다.


"딴따라라라 딴딴딴딴 딴."


까맣게 꺼져 있던 휴대전화 화면이 밝아지며 벨소리가 반갑게 퍼졌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채인♡'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승호의 오래된 연인 송채인이었다.


"채인아. 아니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 내가 몇 번이나 전화했는데. 바빴어?"


승호는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말을 두서없이 쏳아냈다.


"어... 오빠... 미안해... 일이 좀 있었어"


채인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기운이 하나도 없네. 그렇게 힘들어?"

"어...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렇게 힘들면 그 일 그만둬. 내가 있잖아."

"아냐. 괜찮아... 그것보다... 좀... 오빠 시간되면 우리 좀 만날까? 할 얘기도 좀 있고..."

"어. 그래. 난 아무 때나 괜찮아."

"그럼 있다가 퇴근하고 우리 항상 만나던 거기서 봐."

"그래. 기다릴게.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먹어."

"그럴게. 그럼 있다 봐"

"응"


승호는 전화를 끊고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꼭 연인들이 이별 통보를 하기 전 분위기 같이 느꼈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우리 사이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그것만 빼면 완벽해. 그는 손을 주물렀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내내 채인의 목소리가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지난번 프로젝트가 잘 완료된 후 추가로 맡은 일이 없는 상태여서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를 아니었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잔뜩 흐리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무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시곗바늘이 세로로 길게 맞춰지자 사무실을 나섰다. 그날따라 카페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카페는 채인과 처음 만난 장소였다. 그래서인지 둘은 만날 때 항상 그곳에서 서로를 기다리곤 했다.


그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1층 카페의 문을 열고 주변을 열심히 살폈다. 다행히 채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구석 쪽 빈자리를 잡고 카페 카운터에서 커피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한참 동안 커피에만 눈길을 주면서 가만히 채인을 기다렸다. 두 손을 주무르며...


한참이 지난 후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비에 젖어 초췌한 모습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힘겹게 우산을 접고 승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미안... 내가 좀 늦었지?"


채인은 아까 전화에서 들리던 소리만큼이나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근데 너... 무슨 일 있어?"


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채인을 바라보았다.


"..."

"일단 커피부터 마시자. 가서 주문하고 올게. 따뜻한 아메리카노 괜찮지?"

"어... 괜찮아. 고마워."


승호는 불안감을 느끼며 채인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채인은 커피를 마시지는 않고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빠..."

"그래. 무슨 일인데?"

"..."


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저녁 시간이 꽤나 지난 터라 카페 안에 있던 손님은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채인은 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여전히 만지며 말을 꺼냈다.


"오빠... 우리..."

"그래. 얘기해."


채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오빠… 나… 이제 정말 힘들어. 우리… 헤어지자.”


힘들게 꺼낸 채인의 말에 그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빠르게 뛰고 있는 맥박을 느끼며 채연을 바라보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걱정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왜?"

"오빠... 더 이상 못하겠어. 이제... 그만하자..."

채인의 목소리는 떨렸고, 마치 오래 참았던 모든 감정이 목 끝에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이내 채인의 눈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두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리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내가 왜 싫어졌는데?"

"..."

"뭐라고 말 좀 해봐. 한동안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그런 얘기를 왜 하는 건데?"


차대서 의원실에서 채인을 채용할 때 원래는 수행 비서가 아닌 행정비서관으로 채용되었지만, 차 의원의 지시로 거의 수행 비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그녀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근무했지만, 차 의원이 외부 행사나 약속이 있을 때는 꼭 채인을 데리고 다녔다. 의원실 모두 차 의원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일삼고 있는 차 의원이지만 같은 의원실 그 어떤 보좌관도 더러운 의도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분명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차 의원은 싫증을 낼 것이 뻔했고 - 매번 그랬으니까 - 그렇게 되면 다음 기회는 자기들이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녀가 의원실에 있을 때는 그 어떤 사람도 그에게 업무를 주지 않았다. 업무는 따로 있었으니까. 스스로 공범 역할을 자행한 셈이었다.


채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어. 나 너무 지쳤어..."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동안의 일을 힘겹게 꺼낸 채인은 어깨를 떨고 있었다. 승호는 손에서 통증이 느껴져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이내 하얗던 손바닥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지만 한가운데 손톱자국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승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피가 배어 나왔다. 채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렸다. 카페 주인이 유리컵을 닦다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채인의 말을 듣는 내내 팽팽하던 그의 머릿속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의 어금니 부근 양쪽 근육이 불룩하게 도드라졌다. 이 고통은 고스란히 돌려주마. 너 같은 놈은 지옥도 아깝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채인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걱정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든 놈들을 벌 받게 할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지만, 눈빛은 전에 없이 단호했다.


그날 밤 채인의 슬픈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 될 줄 승호는 꿈에도 몰랐다. 며칠 후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그녀의 영정사진 속 미소 없는 얼굴은 그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죄책감과 분노가 뒤섞인 채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나중에 승호는 차대서 의원실에서 장례식장에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냉혹한 침묵이 승호에게 더욱 깊은 분노와 결심을 남겼다.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및 사건은 완전히 허구이며, 실존 인물, 생존자 또는 사망한 인물, 사건, 기관, 단체 및 기업과의 유사성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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