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05화

5. 기억

공모자

by Bookish

승호는 며칠째 집 밖으로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을 범인이라고 지목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었다.


'내가...? 설마 내가 왜?'


밤새도록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그럴 이유가 없다고 되뇌었다. 알 수가 없었다.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며칠간 뉴스만 반복해서 보던 그는, 더 이상 불안을 견딜 수 없어 직접 현장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밝아지려면 시간이 좀 더 있어야 했지만 승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리고 누가 들을까 문을 조용히 닫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호가 집을 나서자 가늘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입고 나온 옷이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 점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모자를 덮어쓰고 그곳으로 향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골목 입구에 노란 출입금지 줄이 쳐 있어서 멀리서도 그곳을 알 수 있었다. 문득 흑백 화면에 노란색만 두드러진 화면처럼 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노란 테이프만 남아 거미줄처럼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사람들 눈에 자신의 행동이 어색하게 보이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멀리 보이는 흙바닥에는 아직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순간 승호는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어제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손을 문질러 씻었지만 마치 바닥의 피와 같은 피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핀 후 몸을 숙이고 신중히 테이프 아래로 들어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닥이 엉망이었다. 뱃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며 토할 것 같았다. 흐흡... 하... 몇 번 심호흡을 하며 좀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형이 말한 것처럼 벽돌 더미에서 벽돌 한 장이 비어 있었다. 집에 숨겨둔 벽돌과 같은 색, 같은 모양이었다. 집에 있는 것을 채워놓으면 완벽한 모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전체로 남아 있어야 할 벽돌 더미가 자신 때문에 불균형이 생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놔두었던 벽돌을 가져와 채울까...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쌓여 있던 모래 더미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에 있던 벽돌을 가져다 두었으면 빗물과 흙더미에 묻혀 아무도 몰랐을 텐데... 구멍이 점점 커졌다. 빗물에 패인 모래를 무심코 내려다보던 그는, 모래 속에 익숙한 글씨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조심스럽게 모래 속에서 그 물건을 주워 들었다.


OO바이오


그가 매일 같이 출퇴근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는 곳이다. 볼펜이 승호의 손에 닿는 순간, 모든 혈액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듯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분명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게 여기에 있다는 건, 현장에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볼펜은 지난번 회사 홍보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개인별로 할당되어 주위에 나눠주고 남은 것이었다.


이건 어제도 사무실에서 사용을 하고 안쪽 주머니에 넣어 뒀던 것인데... 근데, 이게 왜 여기에? 이건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분명 그가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는 황급히 볼펜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일어섰다. 다리를 펴고 일어나자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잠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볼펜을 쥐고 주머니 속에 숨긴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삐용삐용삐용삐용"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렇게 잡히는가. 안돼. 무조건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 범인은 범죄현장을 다시 찾는다는 말이 증명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는 침을 삼키며 노란색 테이프가 떨어지지 않게 간신히 빠져나왔다. 사이렌 소리는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졌다. 그는 마치 자기 심장이 귀 옆에서 뛰는 것 같은 착각에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테이프 밖으로 나왔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사건 현장은 이제 엉망이 되었다. 다행이다. 아마 없겠지만 혹시라도 남아 있었을지 모르는 그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 갔다.


승호는 미친 듯이 뛰었다. 혹시라도 떨어질까 주머니의 볼펜을 손에 꼭 쥔 채 뛰었다. 아마 살아오면서 가장 빨리 뛰었던 것 같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아니. 그냥 여기서 터졌으면 좋으련만.


드디어 그의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위에 '1'의 숫자가 보였다. 다행이다. 올라가는 버튼을 눌러 문을 열고 들어가 15층 버튼을 눌렀다. 왜 문이 안 닫히는 거야! 버튼을 연타했다. 드디어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얼굴에서 흘러내린 땀인지, 아니면 머리에서 떨어진 빗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발, 제발, 아무도 타지마. 그냥 15층까지 올라가. 부탁이야.


나였어. 결국 내가... 그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두렵거나 분하거나 막다른 길이라 생각될 때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고 들었다. 혹시 피가 흐르나? 그렇게나 많이 씻었는데...


볼펜을 물에 씻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휴지로 닦아냈다. 이쯤이면 지문도 지워졌겠지. 침대 밑에서 벽돌을 싸 놓은 비닐봉지 안에 볼펜을 넣었다. 혹시라도 볼펜과 벽돌이 사라질까 입구를 꽁꽁 몇 번이고 박스 테이프로 둘둘 싸맨 후 다시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깊숙이.


온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땀을 없애고 싶었고, 눈물을 지우고 싶었고 피를 말리고 싶었다. 몸에 배어 있는 살인의 냄새, 죽음의 냄새를 없애고 싶었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의 눈동자에서 광기를 느꼈다. 가슴속 깊이 숨겨뒀던 분노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너야! 네가 그런 거야. 네가 사람을 죽인 거라고!"


그는 자기 모습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주먹을 쥐고 거울 속의 얼굴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와장창!


"아냐! 내가 아니라고!"'


다시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그의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세면대 위로 피가 흘러내렸다. 피를 보고 그의 입에서 또다시 끈적이는 액체가 토해 나왔다. 나야. 내가 죽였어. 내가 사람을 죽인 거야.


그는 그대로 주저앉아 쓰러졌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든 그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다. 욕실 바닥은 찢어진 손에서 흐른 피로 엉망이 되었다. 이제는 빨간 색깔만 봐도 몸이 덜덜 떨리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샤워기를 틀어 바닥과 세면대를 씻어 내렸다. 엉망이 되어버린 거울 조각도 같이 치웠다.


현관 바닥은 빗물과 흙이 엉켜 마치 공사장 바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신었던 운동화도 흙탕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승호는 주방 서랍에서 커터칼과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두 장 꺼냈다. 그는 커터칼을 쥐고 조심스럽게 운동화를 해체했다. 신발 밑창과 겉면을 분리해 하나씩 나누어 봉투에 담았다. 그의 눈에서 초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이 운동화였으리라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을 때쯤 그는 두장의 봉투에 각각 나누어 담았다. 봉투의 남은 공간에는 집안에서 굴러다니던 잡동사니를 채워 넣었다. 혹시라도 그의 신분을 알 수 있을만한 것들이 같이 들어가지 않도록 모두 빼내 따로 치웠다. 기간이 지나버린 고지서 봉투, 이름이 쓰인 홍보전단지 등 조금이라도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제거했다.


승호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아파트를 빠져나오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 하나하나가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두 개로 분리한 종량재 쓰레기봉투 하나는 102동 아파트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다른 하나는 다른 동에 가져다 버렸다. 볼펜도 반으로 잘라 각각 봉투에 담았고,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가면서 침대 밑에 남아 두렵게 그를 괴롭히던 벽돌도 가져갔다.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아파트 뒤 후문 쪽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 한쪽 구석에 파 묻었다. 주변을 확인하며 가능한 한 깊이 파고, 주위를 나뭇가지로 덮어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승호는 집으로 돌아와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온몸에 남아 있는 기운과 이성이 모두 빠져나가 손가락 하나를 들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및 사건은 완전히 허구이며, 실존 인물, 생존자 또는 사망한 인물, 사건, 기관, 단체 및 기업과의 유사성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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