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06화

6. 도형 1

공모자

by Bookish

도형은 승호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 보닛을 열어놓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었다.


"잘 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끼익 하고 철판 긁는 소리가 난다니까. 그리고 이게 처음에 시동 걸면 탈탈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다가 어느 정도 예열이 되었다 싶으면 그때는 또 괜찮아지고."

"..."

"가끔 가다 운전석 앞쪽에서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 같은 것도 나고. 아무튼 좀 이상해"

"..."

"야! 내 말 듣고 있어?"

"어... 어?... 미안... 다시 말해봐."

"아까부터 뭐 하고 있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디 아프냐?"

"어... 아니야. 괜찮아."


승호는 며칠째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받은 휴가 동안에도 그는 tv와 신문에서 그 사건에 대한 뉴스를 찾아봤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게 이렇게 하찮을 수 있는지,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자연사도 아니고 죽임을 당했는데...


"어. 별 증상 아닌 것 같아. 브레이크 패드가 거의 다 닳아서 그런 것 같아. 그냥 아무 카센터나 공업사 가서 갈아달라고 하면 돼. 근데 잡소리는 어쩔 수 없어, 잡기 힘들어. 돈만 날릴 수도 있고... 그냥 타고 다녀. 어차피 차도 많이 낡았는데..."


승호가 차 보닛을 닫으며 말했다.


"야 아무리 고물이라도 이 녀석으로 잡은 놈이 몇 명인데. 훈장을 줘도 시원찮구먼"


도형이 웃었다.


"고맙다. 봐줘서. 진단비로 내가 술 한잔 살게. 가자."

"넌 형사가 대낮부터 술 마셔도 돼? 지금 근무시간 아니야?"

"뭐, 많이 안 마시면 되지. 그리고 오늘 탐문조사하러 나온 거라 괜찮아."

"탐문?"

"어. 왜 지난주에 저 골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말이야."

도형은 손가락으로 골목 공사현장 쪽을 가리켰다.


도형의 말에 그의 심장이 또다시 뛰기 시작했다. 비. 모래. 노란 줄. 볼펜. 벽돌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볼펜은 잘 수거되었겠지... 벽돌은 아무도 못 봤을 거야. 그의 머릿속에 불안감과 후회가 밀려왔다. 어제 한번 가볼걸 그랬나? 간신히 멈췄던 눈 떨림이 또 시작됐다.


"너 손은 왜 그래?" 도형이 붕대를 감은 승호의 손을 보며 물었다.

"어... 어... 그냥 좀 다쳤어."

"너 그새 또 술 먹고 다쳤냐?"

"어? 어..."

"어이구 작작 먹어라. 아니면 곱게 마시던가. 그게 뭐냐? 다 큰 어른이."

"응... 미안."

"너 술 마시면 안 되겠다. 그냥 커피나 한 잔 하자."


둘은 근처 카페로 들어가 한적한 자리에 앉았다. 한창 낮시간이라 카페 안은 손님이 없이 조용했다. 도형은 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었지만, 승호는 마치 형사에게 취조를 받는 사람처럼 불편한 자세로 앉았다. 자신의 자세가 이상하게 느끼고는 허리를 폈지만 마음은 펴지지 않았다. 아무리 친구지만 상대가 형사라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혹... 혹시... 지난번 그 살인사건 어떻게... 범인은 잡았어?"

"야이... 못 잡았으니까 탐문조사 나왔지... 이게 요즘 술 처먹더니 뇌가 썩었네..."

"아. 그랬지? 근데 그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됐어?"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도형에게 그날의 사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아. 맞다. 그 죽은 사람 신원은 누군지 알아?" 도형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

"누군지 아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그 사람이 바로 수철이야. 최수철."

"어? 최수철? 최수철이 누군데?"

"그래. 최수철. 기억 안 나? 며칠 전에 tv에도 나왔었잖아. 그래서 너 흥분해서 술 퍼마시고... A그룹 장남, 최수철 상무 음주사망사고 냈는데도 불기소로 풀려난 놈 말이야."

불쌍한 오토바이 운전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뻔뻔스럽던 그 웃음이 떠올랐다. 그때 그 더러운 감정이 다시 떠 올랐다.


도형은 그동안의 조사 내용과 수철의 행적에 대해 말했다. 최수철은 음주사망사고로 구치소에서 나와 그 길로 클럽 엘루아로 찾아갔고,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처럼 거기에서 또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그 후에 클럽에서 나온 것까지는 목격자가 확보되었지만 그 이후로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가 며칠 뒤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실 승호는 자신이 최수철을 죽였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는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자신을 혐오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랬을 리 없다는 현실부정을 했다. 그러나 도형의 입 밖으로 나온 실체적인 인물로 대상이 구체화되자 현실로 느껴졌다. 내가 그런 게 맞는 건가 봐... 그는 자기 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근데..."


도형이 입을 열었다.


"경찰인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걔... 수철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잘 죽은 거야. 어떻게든 살아보려 그 밤늦게까지 열심히 하던 사람을 술 마시고 운전하다가 치여서 죽게 했으면 반성이라도 하던가. 아주 보란 듯이 또 클럽에 가서 술 마셨잖아.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정의의 사도야. 사도."


아니 잘 죽었다니. 도형의 말이 거칠어졌다. 형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 의아했다.


"내가 비록 경찰밥을 먹고는 있지만 법만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놈들이 많아. 법을 잘 아는 놈들이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빠져나간다니까. 뭐 그런 놈들이 한둘인 줄 알아? 경찰서 유치장에도 보면 항상 사람들만 들어가 있어. 돈 있고 백 있는 놈들은 거기 안 들어가. 변호사가 와서 다 빼. 이번에도 수철이 그 새끼 집에 있는 돈하고 지 아버지 연줄하고 다 동원해서 빠져나갔잖아. 피해자한테는 합의금 몇 푼 던져주고. 뭐 거지 적선해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무튼 속 시원해. 잘 뒤졌어."


도형은 그동안 쌓인 불만과 답답함을 내뱉듯이 토해냈다. 승호는 떨리는 손을 테이블 밑으로 내려놓았다.


"버... 범인... 아니... 너희가 용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찾았어?"

승호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천천히 말했다.


"사실 그게 너무 이상해. 현장에서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거든. 기가 막히게도 cctv에 안 잡혔다는 말이지. 꼭 그 동네 지리를 잘 아는 것처럼." 도형은 승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더 웃긴 게 뭔지 알아?"

"뭐가?"

"수철이 그 새끼. 부검했는데 혈액에서 마약 성분이 나왔어. 어쩐지 내 그럴 것 같더라니..."


도형은 점점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클럽 엘루아 쪽을 뒤졌더니 약쟁이들이 굴비처럼 줄줄 딸려 나왔어. 크크크. 그래서 본의 아니게 대박을 쳤지! 이거 원 수철이 그 새끼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도형은 냉소적으로 웃었다. 하지만 승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흥분한 도형이 하는 말만 듣고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 궁금한 점은 많지만, 범인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안심이 되기도 했고 아직 용의자도 확정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약으로 걸렸어도 또 빠져나갔을 거야. 뭐 그런 놈들이 한두 놈인 줄 알아? 우리 기준에 웬만큼 잘 산다고 하는 놈들은 다 한두 번씩 했을걸? 그리고 얼마 전에 너 뉴스 본 거 생각 안 나냐? 어떤 정치인 아들인데 히로뽕인가 대마초인가를 사다가 잡혔는데도 제대로 구속조차 안 했잖아. 이젠 뉴스에도 안 나와. 아무도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몰라. 만약 그 짓을 너나 나 같은 사람이 했어봐라. 그렇게 되나. 아니면 만만한 연예인이라고 연예인 하나만 걸렸어봐. 아주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켜도 백번도 더 했을 거야."


도형의 입가에 하얀 거품이 일었다.


"죽은 놈하고 그 가족한테는 좀 거시기하지만... 아무튼 속 시원해." 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안에 있는 얼음을 으드득 깨물었다.

"용의자는 전혀 특정이 안 되는 거야?"

승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안에 담긴 빨대를 잡으며 도형의 눈치를 살폈다.

"그니까. 이상하더라고. 그렇게까지 흔적이 없을 수도 없는데 말이야."

도형은 승호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도형의 눈길을 느끼고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근데, 너 그 손."

"어? 어..."

"괜찮은 거냐? 병원 안 가봐도 돼?"

"어... 괜찮아... 그냥 좀 날카로운 것에 베었어"

"그래. 뭐 네가 알아서 해라. 내 손도 아니까."

"..."

"내가 병원 소개해줄까? 우리야 항상 다치는 게 일이니까 그런 거 잘하는 병원 알고 있어."

"괜찮아. 이제 거의 다 나아가. 고마워."


그는 붕대가 감긴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췄다.


도형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번 일처럼 나쁜 놈들... 특히 법 알기를 개 좆으로 아는 놈들 누가 싹 다 잡아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좆뺑이 치며 잡아 봐야 맨날 풀려나고... 이거 뭐 보람이 있어야지. 젠장."


승호는 대답 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도형의 말이 새삼스레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제는 그동안 벌어진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눈 밑의 떨림이 사라졌다.


도형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승호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및 사건은 완전히 허구이며, 실존 인물, 생존자 또는 사망한 인물, 사건, 기관, 단체 및 기업과의 유사성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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