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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Feb 25. 2024

두 번째 졸업식

젬시타빈+도세탁셀 항암 종료

2차 항암 전 채혈검사에서 호중구 수치가 낮게 나왔다. 팔다리에 수포가 올라오고 눈에 염증이 생기고 근육통에 며칠을 누워만 있었던 게 다 면역 저하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매몰차게 2차 항암을 퇴짜 맞고 면역 주사와 일주일의 휴식이 처방되었다. 단 하루의 미뤄짐도 없이 6회의 항암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는데 현실은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응급실을 가지 않고 잘 버텨준 몸 뚱아리에 감사했다. 교수님 역시 몸집이 커서 투약량이 많았는데 잘 버텨줬다며 칭찬해 주었다. 그날 이후 2차부터는 항암 사이클이 일주일씩 늘어나게 되었다.


항암이 미뤄지거나 항암 부작용에서 다시 회복이 될 무렵엔 어김없이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멋진 경관도 보며 기분 좋게 힐링하면 어느덧 호중구 수치는 부쩍부쩍 올라 있었다. 그렇게 항암 중에 떠나는 여행을 '호중구 여행'이라 부르게 되었고 면역 증진에 여행만큼 좋은 게 없다는 나만의 미신이 만들어졌다.


2차, 3차, 4차 항암 후에는 하루 정도 열이 펄펄 날 때도 있었지만 부작용 약을 먹고 한숨 푹 자면 금방 열이 내려갔다. 결국 6회의 항암 치료가 모두 끝날 때까지 응급실은 문턱도 밟지 않았다. 역시나 1차에서 부작용이 가장 심했고 갈수록 부작용은 점점 줄어들어 나중엔 설사병은커녕 오히려 변비가 생길 지경이 되었다.


입에 쓴 맛이 도는 것이 싫어서 간식을 주구 장창 물고 있던 데다 스테로이드 부작용까지 더해져 체중이 10kg이나 늘어버렸다. 항암 치료 후 스테로이드 때문에 얼굴이 유독 퉁퉁 붓는 시기가 있는데 하루는 그 시기에 친구 결혼식이 겹쳐버렸다. 나름 예쁜 옷을 꺼내 입고 가발과 화장으로 아픈 모습을 가렸는데도 얼굴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친구와 찍은 사진 속에 도무지 사람 같지 않던 내 모습이 보기 싫었다.




마지막 6회 차 항암을 앞두고는 CT 검사가 이루어졌다. 이번 CT 검사 결과에 따라 6회 차 항암 치료가 마무리될지 아니면 5회를 마지막으로 중단이 될지 판가름이 나는 것이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긴장이 되었다. 검사 결과 폐에 병변이 커졌거나 다른 부위에 재발이 되었다면 그대로 항암은 중단되고 다른 항암 계획이 세워질 때까지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


암센터에 도착을 해서 신체 계측을 끝내고 외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른다. 내 차례가 되고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너무 떨려요.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아유, 당연한 겁니다. 들어오시면서 우시는 분들도 많아요."


보통 환자나 보호자들은 진료실 문을 열면서 미리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교수님은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되묻는다고 한다. 삶 자체가 '무슨 일'인 암 환자와 그 가족.


CT 영상이 채 뜨기도 전에 교수님은 다급하게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진료실에 들어와서 파리처럼 계속 두 손을 비비던 내 긴장감이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채혈검사 결과 이상 수치도 없고 폐에 있는 병변의 크기도 변함이 없었다. 바로 6차 항암이 결정되고 부작용 약이 처방되었다.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고 항암 낮병동으로 가서 6차 항암을 시작했다. 7일 뒤 다시 찾은 병원에서 도세탁셀 투약이 끝나고 젬시타빈을 맞으며 드나드는 간호사마다 "저 오늘 마지막 항암이에요."를 반복하고 총 세 번의 "축하해요."를 받아 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하철 입구에 위치한 꽃집에 들어갔다. 항암 치료를 다니며 꽃집을 지나갈 때마다 항상 꽃을 사고 싶었는데 '항암 졸업'이라는 좋은 명분이 생겨 미니 장미 한 다발을 구입했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아직은 덜 핀 듯 한 작은 장미 다발을 쳐다보다가 향기를 맡았다. 그동안 항암 치료를 받느라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이제 마지막 한차례 부작용이 지나가면 다시 몸이 회복되고 머리가 자라나겠지.


처음 항암 치료를 받았을 때는 빨리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는데 이번 항암은 비교적 부작용이 적어서 그런지 이 순간을 애써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저 힘들면 눕고 배고프면 먹고 기운이 나면 여행을 다녔더니 항암 6차가 금방 지나갔다. 고혈압 환자가 혈압약을 먹고 심근경색 환자가 혈전제를 먹고 당뇨 환자가 당뇨약을 먹는 것처럼 나는 항암약으로 치료하며 사는 것뿐이다. 치료 기간과 항암 졸업 후 일상을 분리하지 않고 암 환자로서의 일상도 내 삶에 포함하기로 했다.


2022년 1월 6일 첫 수술

2022년 1월 14일 평활근육종 암 판정

2022년 2월 21일~ 6월 22일 아드리아마이신+이포스파마이드 항암 6차

2023년 5월 26일 재발

2023년 5월 29일~ 7월 23일 보트리엔트 항암

2023년 7월 31일 두 번째 수술

2023년 8월 25일~ 2024년 1월 19일 젬시타빈+도세탁셀 항암 6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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