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로 시작해서 '함께'
2017년 도망치듯 떠나온 제주도 여행에서 우연히 수필 작가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글을 쓰는 공간으로 마련한 북카페와 거기에 딸린 자그마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며 몇 달간 제주살이를 했다. 수필 작가답게 그녀는 나에게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글로 남겨보라는 권유를 했다. 학창 시절 일기 쓰는 것을 수학문제 푸는 것보다 싫어했던 나는 글 쓰기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억지로 짜내어 글을 쓰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인생에 잊지 못할 순간, 만남, 여행 등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은 즐거웠다. 삶이 팍팍하거나 지루하다고 느낄 때는 SNS나 블로그에 남겨진 행복의 흔적을 종종 꺼내다 보았다. 단순히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낸 글을 읽으면 다시 일상에 생기가 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의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을 기록했던 내가 이제는 인생에서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기록하고 있다. 이 힘겨운 삶이 오직 나만 겪는 시련이 아님을, 누군가는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음을 느끼고 공감받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면 나 스스로를 위로해 보고자 쓰기 시작한 글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효과가 있었다.
은밀한 곳에 비공개로만 올리던 나의 아픈 일상을, 이제는 SNS에 또 블로그에 그리고 브런치에 내보냈다. 홀로 시작했던 위로에 이 글을 읽는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온기를 더해주었다. 그러다 이름과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독자들 까지도 그 위로에 함께 해주었다. 글이 가지는 힘은 그렇게 시너지가 되었다.
행복했던 순간 사이사이에 암과 싸우고 있는 근래의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섞여 이 또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좌절하고 부정하고 체념했다가 다시 힘을 얻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과정을 기록할 때는 그 순간마다 나에게 찾아가 좌절하는 나에게는 너무 그럴 필요 없다고, 부정하고 체념하는 나에게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다독일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을 다시 떠올리고 글로 담아낼 만큼 많이 단단해진 나 자신을 체감할 수 있었다.
분명 다시 현실을 부정하고 더 이상 글 쓸 힘을 잃게 되는 날이 다시 올 것이다. 이미 그때는 다시 힘내보려 애써도 절대 힘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땐 이 글을 꺼내 보기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힘을 내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