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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Feb 25. 2024

암 환자와 임산부의 대환장 여행

전북 군산

근육통을 핑계로 회복될 때까지 누워서 먹기만 했더니 체중이 2kg이나 늘었다. 1차 항암 후 설사병은 삼일 만에 잠잠해졌고 면역 저하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같이 배에 맞았던 면역 주사가 몸에 잘 맞았던 모양이다. 그 사이 슬슬 머리카락은 빠지기 시작했다. 입원이 밀리는 바람에 예정보다 일주일은 더 유지되었던 탈색머리와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더 빠지기 전에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몇 달 전에 계획한 여행이었는데 몸도 마침 항암 부작용으로부터 회복되고 있었다. 여행지는 군산과 전주였다. 친구와 나 모두 군산 여행 경험이 있었지만 단 둘이 여행을 가본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친구는 7년 전 결혼을 하고 긴 신혼생활 끝에 최근 임신을 하였다. 5개월에서 6개월로 접어들 무렵 배가 제법 나와 어엿한(?) 임산부 같은 친구의 모습이 신기했다. 군산으로 가는 내내 한숨도 자지 않고 들떠있는 임산부 친구를 보며 말했다.


"야, 나는 암 환자고 너는 임산부고, 뒤에 구급차 하나 따라와야 되는 거 아니야?"


누구 하나 면역이 떨어지면 큰일 나는 대환장 조합에 친구와 나는 크게 웃었다. 아직까지 서로의 눈에는 교복 입은 10대 여고생 모습인데 현실은 30대 암 환자와 임산부가 되어있었다. 더위가 한껏 물러난 9월의 따스한 날씨에 우리는 교복을 빌려 입고는 다시 17살이 되어 군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옷에, 모자에, 차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이 이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베갯잇부터 확인을 해보았다. 이럴 수가, 마치 베개에서 자라난 양 빼곡하게 박혀있는 머리카락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체크아웃을 하기 전, 샤워를 하며 간밤에 두피를 떠나간 머리카락을 샤워기로 모두 흘려보냈다. 한참을 씻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수건에 묻어 나오는 머리카락 또한 다시 한 움큼이었다. 모텔 사장님께 미안해지지 않게 베개에 박힌 머리카락을 모두 모아 둥글게 뭉쳐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시내 한복판이라 걸을 수 있는 거리에 미용실이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영업 시작한 미용실이 있을까. 네이버 지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로 표시되어 있는 미용실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혹시 지금 오픈하셨나요?"

[아, 네 뭐, 오세요?]


'아직 오픈 전이지만 너 오는 김에 지금 오픈하지 뭐.'라는 투의 대답이 돌아온다. 미용실로 들어서니 어제 마감하면서 널어놓은 듯한 얇은 수건들을 건조대에서 차곡차곡 걷어 내고 있는 사장님의 모습이 보인다.


“뭐 하실 거예요?"

"삭발하려고요."

“일단 여기 앉으세요.”


사장님은 수건을 정리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나와 친구를 번갈아 쳐다본 후 의자로 안내했다. 사장님에게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크게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왜 밀어요?”

“아, 제가 항암치료 중인데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 밀어버리려고요."


그제야 사장님의 시선은 거울 속 내 얼굴에서 정수리로 옮겨졌고 내 머리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네, 많이 빠졌네.”


허전한 정수리를 한번 훑다가 힘없이 묻어 나오는 머리카락에 미안했는지 사장님은 더 이상 내 머리를 만지지 않고 전동 이발기를 집어 들었다.


“사장님, 잠깐만요. 혹시 제가 해봐도 돼요?”

“그...럼요?”

“이거 위험하진 않겠죠?”

“하나도 안 위험해요.”


원장님에게서 건네받은 전동 이발기의 전원을 켰다. 손바닥 가득 울리는 잔잔한 진동이 느껴졌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몇 가닥 남지 않은 두피에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감촉이 신기했다. 단 한 줄의 고속도로를 만든 후 나머지 삭발은 전문가의 손에 맡겼다. 몇 분 채 걸리지 않은 삭발이 끝나고 거울 속에 달덩이처럼 떠오른 내 모습을 보며 까칠한 두피를 개운하게 문질렀다.


“야, 내 속이 다 시원하다.”

“그니까 말이야. 진작에 밀어버릴걸.”


친구의 입에서 먼저 후련함이 터져 나왔다. 젊은 나이에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친구가 왜 안타깝지 않겠냐마는 그 마음을 꼭꼭 숨긴 채 큰 소리 뻥뻥 쳐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쓰고 온 모자로 허전해진 머리를 덮고는 미용실을 나섰다.




이성당엔 갓 나온 야채빵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지금 먹을 것, 집에 가지고 갈 것, 친구 줄 것까지 모두 16개의 야채빵을 샀다. 부자가 된 듯 풍족한 마음으로 야채빵을 품에 안고 차로 돌아왔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모자를 벗었다. 친구는 내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두 번째라 그런가, 좀 익숙한 것 같아.”

“그치, 역시 대머리가 편해.”


정말 괜찮았지만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 같은 말을 주고받고는 온기가 남아있는 야채빵을 두 개 꺼내 들었다.


“야 먹어봐. 이거 내가 전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빵이야.”


이성당이 처음인 친구에게 야채빵을 내밀었다. 그날 우리의 아침 식사 메뉴는 이성당 야채빵이었다. 얇은 빵 속에 야채 몇 가지가 볼품없이 들어가 있는 이 2,500원짜리 소박한 빵이 뭐가 그리도 맛있는지. 연신 감탄하며 야채를 아쟉아쟉 씹어 삼키는 나와 다르게 친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만두같네"

"근데 분명 나중에 생각날걸?"


작아진 빵 조각을 한 입에 털어 넣고 시동을 걸었다. 한산한 평일의 군산 시내를 벗어나는 덴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첫 항암 이후 어렵게 기른 머리를 다시 밀어 버린 것이 정말 괜찮았던 건 그 순간을 함께 했던 가장 친구 때문이었는지 전국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두 번째가 주는 익숙함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세 가지 모두 마음 한편 쓰라림을 잊게 해 주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치료제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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