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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닿지 않는 우리의 우주에서

소아정신과 이야기 5

by 책피는엄마

일주일 후, 둘째가 다니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다음 주 수요일에 취소된 시간이 있어요. 오실 수 있나요?"

"네! 감사합니다."


취소자리를 부탁하던 간절한 목소리가 통했는지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다.

너무 기뻤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묵직했던 마음의 무게가 덜어졌다.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위중한 병을 가진 아이를 둔 부모의 두려움이 어떤 색을 띠는지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아픈 친구들과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일상에 감사해야겠다고 뻔하면서 뻔하지 않은 생각을 했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모르는 게 많아서.

모르는 채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세상을 다 아는 사람처럼 굴며 살아갔겠지.

아마 그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지금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독서모임 덕분이다)

내가 낳은 내 아이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특히 첫째 아이를 키울 때 암흙속을 걷는 것처럼 깜깜했던 때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요즘 공부 모임에서 읽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자꾸 겹쳐진다.

<시간의 역사>를 읽다 보면 우리가 속한 태양계가 우주 안에서 얼마나 작은 점인지 알게 된다.

태양계는 우리 은하(‘은하수’, Milky Way) 중심에서 약 2만 6천 광년 떨어진 변두리에 있고, 은하 전체 지름이 약 10만 광년임을 생각하면 태양계는 실제로 모래알 하나보다 작은 존재다.


빛의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돌 만큼 빠르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닿기까지는 겨우 8분 남짓.

우리가 지금 보는 태양은 사실 8분 전의 모습이다.

그 생각을 하면, 우리가 사는 ‘지금’이라는 순간조차 얼마나 불완전한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빠른 빛이 세상의 모든 것을 비추지만, 그림자는 남는다.

병원 대기실에서 그 그림자들을 마주한다.

아이를 보는 엄마들의 눈빛에는 불안이 스며있고,

진료실 앞에 서서도 여전히 검색창을 두드린다.

그 손끝에서 두려움이 툭툭 새어 나온다. 아이들의 긴장된 표정과 눈빛도 그렇다.

그런 것들은 어떤 속도의 빛으로도 닿지 못해 어둠 속에 남는다.



아, 그래. 여하튼-

아이를 데리고 모든 걸 해결해 줄 것만 같은 의사를 만나러 갔다.

우리의 어두운 곳을 조금이라도 비춰주길 바랐다.

의사는 나와 아이를 각각 면담한 뒤,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를 권했다.

종합심리평가(일명 ‘풀배터리’)라고 불리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 그리고 뇌의 여러 기능을 측정하는 검사였다.

이 검사는 문제가 없어도 아이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많은 부모들이 받는 것으로 들었다.

예전에 고민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의사는 말했다.


“아이도 필요하지만, 부모님 검사도 함께 하시는 게 좋아요.”


그 말은 아이뿐 아니라 나도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놀랍지는 않았다. 내 영향도 있을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마음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팠다.


뭐든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제안에 응했다.

그런데 데스크 앞에서 검사 예약을 잡는 내 모습이 왠지 부끄럽고 바보 같았다.

한때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심리와 상담을 공부했던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수많은 교육 영상과 강연을 찾아들었던 내가—
결국 소아정신과까지 오다니.

그동안 나는 뭘 한 걸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일을 키웠을까.

검사 날짜를 잡으면서도 두려움은 나를 지배했고, 자책이 뒤따라왔다.

아직 하지도 않은 검사 결과가 걱정이 되어 데스크 앞 다 큰 어른은 손끝을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또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밀려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미지의 우주를 탐구하듯이,

우리도 매일의 흔들리는 삶을 알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알기 위해 애쓰는 그 과정 자체가 사랑일 것이라 믿는다.

자책과 두려움의 그림자 위로 더 단단한 사랑이 자라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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