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내가 사랑해야 할 존재들이다.
최근 나는 대장염(E.coli 0157)에 걸려 총 20일간의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다.
첫 번째 진단: 코로나일지도 모른다.
10일 정도 전신의 통증과 복통에 시달렸다.
결국 통증이 악화되어, 동네의원을 찾아갔다.
왜? 즉시 의사를 안 보고, 굳이 10일 정도 고통에 시 달린 후, 병원을 찾았을까?
이곳에서는 어느 정도 고통스럽고, 증상이 지속되지 않았을 시에는 의사진료를 해도 거절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7일~10일 정도 증상이 지속되고, 나아지지 않으면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의사는 증상이 마치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면서, 코로나 검사를 권했고, 통증은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두고 보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이미 코로나에 걸렸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 진단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음성이 나왔고, 고통은 계속되었다.
두 번째 시도: 독감으로의 오진
수요일, 증상이 악화되어 다른 의사를 찾았다.
이번에는 독감으로 진단받았고, 물을 많이 마시고 진통제를 먹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이틀 동안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진통제조차 듣지 않았다.
세 번째 시도: 응급 상황의 연속
금요일, 통증이 너무 심해져 강한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하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두드러기와 어지러움을 겪었고, 통증은 계속되었다.
새벽 1시에 체온 상승과 심한 통증에 다시 진통제를 먹었고, 새벽 3시에는 식은땀과 호흡 곤란으로 응급 전화를 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응급 시 앰뷸런스를 부를 수 있는 케이스는 따로 있다.
나처럼 이런 증상으로는 앰뷸런스를 부를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국번 없이 111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러면 전화로 상담사가 전화를 받는다.
장장, 3 시단동안 죽을 것 같았던 아뜩한 상황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몇 차례 전화를 걸어서 상담사를 설득한 후, 그다음 날 아침 9시. 총 9시간이 지난 후, 간호사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간호사는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드디어 의사를 오후 1시에 만날 수 있도록 약속을 잡아주었다.
시티의 의사와의 첫 만남
일요일 오후 1시, 시티에 있는 시간 외 근무하는 의사를 만났다. 소변에서 혈뇨가 발견되었고,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조금은 황당했다. 소변채취 시 눈에는 혈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를 만날 수 있어서 심정적으로는 조금 안정되었는데, 오히려 혈뇨가 있다고 하고,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자, 가슴 한편으로는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역시 약처방은 없다. 그냥 진통제 열심히 먹고 물 많이 마시라고 했다.
도움의 손길
일요일 저녁 7시, 마침내 하혈과 혈변이 시작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남편은 없고, 딸은 오히려 스트레스받아서 오히려 신경질과 울음 섞인 소리를 내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마침, 그때 나의 지인인 Sam이 전화를 해왔다.
괜찮은지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길길이 날뛰던 불안감이 순간 가라앉았다.
그래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가 나를 데리고 응급실로 쳐들어갈 수 있겠구나.
다시 111에 전화를 걸어서 사태를 알리고, 그제야 의사를 연결시키고, 그 후, 그 의사는 다른 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시간을 예약해 주었다.
밤 10시 30분: Sam은 나를 싣고, 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프리카계 의사는 세심한 사람이었고, 천천히 그리고 정성껏 진료하셨다.
특히 내가 가장 걱정했었던 뇌졸중의 증세는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나를 안심시켰고, 효율적으로 통증을 억제하기 위하여 타이레놀과 아이브로펜을 번갈아 복용하라는 지시 하였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소변과 대변을 채취하여 반드시 동네의원에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의원만 가도 볼 수 있는 엑스레이기계조차 없다. 오직 이런 기계는 병원에 가야만 있다. 병원에 가는 케이스는 당장 죽을병 아니면 못 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검진 결과, 대장염(E.coli 0157)으로 판명되었다. 내가 위생에 신경을 썼음에도 이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워낙 위생적인 것에 민감한 내가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리지?
마침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입해서 먹은 할인된 샌드위치가 원인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 스트레스로 인한 변화
영국으로 역이민을 온 이후, 나는 살인적인 공공요금과 대중교통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영국의 생활비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고, 이로 인해 생활 속에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할인된 제품을 찾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적은 금액이라도 아끼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둘째, 경제적 압박
특히, 이번에 지붕 수리비로 400만 원이 청구될 예정이라는 사실은 나를 더욱 압박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수록 나는 돈에 점점 집착하게 되었다. 상황이 나를 몰아가는 것 같았고, 내가 가진 불안감은 더 큰 문제로 번져갔다. 단 몇백 원이라도 아끼려는 강박이 생겼고, 그 집착은 나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셋째, 옛 친구의 모습과 나의 모습
이때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다. 약 30년 만에 만난 나의 중학교 동창이자 천문학적인 부자인 친구였다. 그녀는 내가 제주도로 처음 왔을 때 우리 집에 3일 머물렀다. 당시 딸이 5살이었는데, 그녀는 딸의 레깅스가 3만 원이라며 비싸다고 지적했었다. 그녀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에도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문득, 그때의 그녀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돈을 아끼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점점 더 집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마치 그녀처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나의 집착은 결국 나에게 건강 문제로 이어졌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할인된 샌드위치 한 개로 나는 대장염에 걸리게 되었고,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작은 행동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돈은 중요하지만, 그 집착이 내 삶과 건강을 무너뜨릴 정도로 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의 상황은 내 의식과 행동이 바뀌어야 할 때임을 가르쳐 주었다.
대장염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동안, 나는 가족에게 기대했던 바와 현실의 차이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가족은 곁에 있었지만, 내가 바랐던 것처럼 응원하거나 조언을 주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겪는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 감정적인 지원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다. 놀랍게도 나를 진정으로 도와준 사람은 지인 Sam이었다. 그녀는 내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아낌없이 제공해 주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이나 아직 미성년자인 딸에게는 내가 신체적 질병에 처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감정적 지지나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강해져야만, 오히려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존재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지나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