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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걸 Sep 24. 2024

조용한 강함: 그것은"사랑"이었다.

그것은"사랑"이었다

조용한 강함: 그것은"사랑"이었다.


아침 7시 40분: 집을 나섰다.

대장염으로 인한 신장기능검사 결과를 듣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보통은 아침 8시 땡 하면 전화로 GP에 전화를 걸어서 예약을 해야만 한다.

만일 20명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날 의사는 볼 수 없다.


아이돌가수들의 콘서트티켓을 구매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전쟁이다.

한 달 전 신문에서 HNS에서 파업에 들어갈 것인데, 그중에서 GP가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수를 25명 이내로 제한하자는 건의안을 국가에 냈고, 받아들여지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했다. 

아마도 10월에 할 것 같은데, 신문을 다시 들추어 봐야겠다.


보통은 전화로 예약하는 소위 핏게팅인데, 그나마 감사하게도 위급한 상황은 GP로 달려와서 리셉션에 물어보면, 약국에 가라던지, 시티에 있는 워크인에 가라든지, 또는 반드시 봐야 하는 건은 간호사를 보게 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늙을수록 병원 근처에서 살아야 하고 시외보다는 시티에 살아야 한다.

가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헌 옷수거함: 이번에 중형에서 대형으로 수거함을 바꾸었음에도 넘치고 있다. 수거함이 아니라 쓰레기통이 되어버렸다. 

아침 7시 50분:

이미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8시:

리셉션에서 블라인드를 열고, 입구를 열어준다.

내가 다니는 GP는 8시에 오픈하고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tmi: 이곳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NHS와 협력하여 의료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의사도 5명을 두고 있으면서 체계적으로 일을 하는 곳이다. 물론 5명 중에 2명은 굉장히 뛰어난 의사들이다. 

그리고 이곳은 지역주민 7명으로 구성된 자치단은 어떻게 하면 GP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을지는 의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이곳의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을 기여하는 참여자로서(Participant)로서 진료후기를 남기면서 참여하고 있다. 


내가 과거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초창기 멤버로서 그곳의 대중편의시설을 위하여 노력했던 것처럼.

물론 내게 돌아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거절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늘도 나의 블로그에 블로그 마케팅 제의가 들어왔다. 

한건이라도 해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데...... 

여전히 그곳으로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돈도 안되니까 그러는 것이리라.


또다시 옆으로 빠졌다.

이놈의 자기 자랑은 언제나 멈추려나???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 앞의 사람들은 즉시 의사들로 배정을 받아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나는 8시 30분에 의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어? 뭐지?

보통 점심시간이나 오후에 의사를 볼 수 있는데?

보통 GP의 대기실은 아침 8시부터 이미 환자들로 인산인해이다.

뭐지? 하다가 아하! 

그렇구나, 


오늘은 수요일이다. 

보통 영국의 GP는 월요일, 화요일, 금요일이 가장 바쁘다.

그나마 수요일과 목요일은 아주 조금 한가한 편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집에 갔다 올까 싶었는데, 

가봤자 다시 나와야 해서 그냥 가만히 GP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 8시 10분:

사람 없는 대기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새소리가 정적을 깨트렸지만, 내 마음의 무거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랜 시간 대장염으로 고통을 당했고, 그로 인하여 신장기능까지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피검사를 받은후,그 결과를 듣게 되는 날이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고, 날씨도 별로 안 좋고, 열심히 아침밥을 먹는지 새소리가 유난스럽게 짹짹거렸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은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

창문의 윗부분 3개만 열리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다. 이곳으로 밖에서 들리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영국의 특이한 창문디자인이다. 한국에서는 못 본 것 같다.

그러나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이 들어섰다.

토모코였다.

항암 9회를 무사히 마친 그녀는 1주일 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였다.

아직은 머리가 자리지 않았지만, 모자 속의 그녀의 얼굴은 편안함으로 가득했다.


밝은 웃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순간, 

고요했던 대기실이 마치 한 줄지 빛으로 환해진 듯했다.

"이제 매달 여성호르몬 억제제를 맞으러 와야 해. 오늘이 첫날이야"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대장염은 좀 어때?"자신의 병을 이겨낸 그녀가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모습에, 그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사실은 저번주, 내가 DHL로 런던뉴몰던에서 쌀을 구매하여 택배를 받으려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마침 그때 토모코가 우리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혹시라도 면역력이 약한 그녀에게 병이라도 옮길까 봐 그녀를 찾아가지 못했었다.

그녀 역시 내가 궁금했었다고 한다.

마침 그 타이밍에 그녀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갔고, 

나를 발견했고,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우리 집 앞마당 도로에서 나는 집안에서 현관문을 열어둔 채, 

큰소리를 지르며 그동안의 그녀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그녀에게 나의 대장염 문제를 말해주었다. 

그 후, 그녀는 나에게 내가 그토록 바랐던 아니, 그녀 자신이 그토록 소원했었던 기쁜 소식들을 들려주었었다.  

그 후, 다시 일주일이 지난 후, 그녀를 다시 GP의 대기실에서 unexpectely 하게 다시 만났다.

지극히 높으신 그분은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신다. 

마치 나의 골프친구  Sam을 4월 어느 날 집구경하러 가서 만났던 날처럼. 


"Sometimes, He brings people into your life unexpectedly" 

그분은 그렇게 나의 삶에 특히 요즘처럼 여전히 힘들고 재미없는 나의 삶에 웃음 한 스푼을 던져 넣어 주시곤 한다. 그로 인하여 나의 늙어버리고 흉측스러운 노인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피식 웃게 만드신다. 

런던 유물던 한인슈퍼마켓에서 구입한 현미와 경기미: DHL로 배달받는데 29킬로그램 이내로 60파운드 이상 구매하면 택배비가 무료다. 

토모코의 얼굴은 평온했고, 그 얼굴엔 그녀의 염원이 응답되어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겨우 40대 초반의 앳된 그녀의 본래의 얼굴이 돌아왔다. 

마침내 그녀는 힘든 항암을 끝냈고, 그녀의 아들은 그렇게 원했던 캠브리지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오랜 시간 그녀가 소망했었던 것들이 모두 이루어진 후의 얼굴은 행복과 충만함이 가득했다.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토모코로부터는 희망의 노래가 들려왔고, 우리 집에는 렙십감기약의 계절이 돌아왔다. 

립십과 함께 영국의 가을 아니 체감적으로는 겨울이 다가왔다. 

딸은 토요일부터 재채기와 코감기로 힘들어지고 있다. 당장 내일은 내신에 들어가는 수학시험과 대학전공에 필요한 LNAT시험을 봐야 하는데ㅠㅠ. 딸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고3엄마의 마음은 자꾸만 불안해진다.  


도대체 토모코는 작년에 어떻게 견뎠을까?

토모코는 10개월 동안 유방암 제거 수술과 항암 치료를 견뎌냈고, 그 시간 동안 아들은 흔들리지 않고 학업에 매진했다. 엄마에 대한 아들의 깊은 사랑이 토모코에게 조용하지만 강인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그런 엄마를 위해 아들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캠브리지 의과대학에서 의약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토모코는 조용한 사람이지만, 강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다. 

그녀가 처음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 나에게 이런 농담을 했었다.

"이제 유방암 환자가 되었고, 처방전 비용 10파운드를 내지 않아도 돼"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고 억울하다면 토로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그녀는 딱 하루만 하루종일 울고 또 울었다고 했다. 그 후, 그녀는 사태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직면하였다. 

이렇듯 그녀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봉틀을 사용하여, 커튼을 만들고, 나에게 준 캔버스 손가방이며 시장바구니등을 만들 수 있는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다.   

만일,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감정적으로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남에게 나서지 않지만, 자신의 이득을 잘 챙기는 영특한 면이 있다. 

제주말로 요망진 여성이다. 

그녀의 조용한 강함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자신의 삶과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의지가 가득 담겨 있다. 그래 그랬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이러한 조용한 강함은 엄마와 아들이 똑같이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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