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와 가난은 대물림되는 것일까? 출발선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물건이 많아서 채리티숍에 기부하려 하는데 혹시 필요한 게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어떤 물건이 있냐고 물었더니, 미국에서 쓰던 식기류와 냄비, 그리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물건들이 있다고 했다. 호기심에 혹시 명품도 있냐고 묻자, 시어머니가 남긴 명품 접시와 스카프는 본인이 사용 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녀의 시댁이 금수저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의 시댁은 지인에게 물질적으로 좋은 집과 차, 물건들은 전부 물려주셨다.
그녀의 시댁은 영국의 중상류층으로, 시부모님과 친인척 모두 엘리트였다. 반면, 나의 남편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석사 출신이다. 그 말을 듣고 지인은 놀라며,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평범한 영국의 워킹클래스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집 정도는 남겨주지 않겠어?”
나는 "시부모님은 평생 힘들게 모은 집 한 채뿐이라, 주택연금으로 쓰실 계획이라 물려줄 재산이 없다"라고 답했다. 설령 돈이 남더라도 시누이가 전부 가져갈 것이라고 답했다. 왜 나누지 않느냐고 하길래, 시누이는 우리보다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인은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통화를 끊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명품이란 뭘까? chatgpt에게 물어보았다.
"명품은 단순히 비싸고 좋은 물건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 가치를 유지하며,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물건을 우리는 명품이라 부른다. 명품은 소유자의 취향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때로는 그 물건이 한 사람의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명품을 그냥 소비하는 게 아니라, 물려준다. 그들이 남긴 물건들은 단순한 소유를 넘어, 세대를 이어가는 상징이 된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왜 부와 가난은 대물림되는 것일까?
첫 번째로 떠오른 건 유전적 요인이다. 뇌과학에 따르면, 뇌 기능과 신체적 조건의 50%는 부모로부터 유전된다고 한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비슷한 문제를 겪는 모습을 자주 본다. 예전에 지인이 아기를 갖지 못해서 시험관아기를 하고 있을 때 들은 이야기다. 불임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전자는 20대의 신체가 건강하고 머리가 좋은 의과대학생들의 정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물론 정신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아무튼간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듯이 건강한 유전자를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가장 보편적인 욕망이 아닐까도 싶기도 하고…….
두 번째로는 환경의 영향이다. 제주 영어 교육도시에 살았을 때, 부유한 부모들은 자녀의 재능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제공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 아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었고, 그중에 자녀에게 맞는 것을 찾아 성장시켰다. 그곳에서는 의사와 교수도 상대적으로 돈이 적은 축에 속했다. 실제로 한 학부모는 자녀가 아빠 직업이 의사라고 말하자 친구들에게 "너희 집은 못 사는 집"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하소연했다. 그때 나는 흙수저인 내가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곳에서 상류층 기준을 생각하면 현실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결국 그 학부모는 아이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제주 국제학교를 떠났다.
이처럼 재정적 차이뿐 아니라, 정신적 유산도 대물림된다. 나의 남편을 보면 가끔 가난한 마음을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나도 가난의 대문림으로 인해 돈과 친해지지 못했고, 자존심을 챙기느라 돈을 경시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돈 앞에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옆에서 남편을 지켜보면,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가난한 마음'을 느낄 때가 많다. 그는 자주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더 큰 목표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한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지지와 응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의 아버지는 그의 선택을 비판하거나 의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항상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습관이 자리 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남편에 대한 연민으로 나는 결혼 후 지금까지도 남편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북돋으며, 그가 하자는 방향으로 이끌려 왔다. 특히 재정적으로……. 심지어 남편의 주위에 있는 분들이 남편이 말을 안 듣는다면서, 제발 남편을 설득해서 승진하라고, 그래서 자신들의 직장생활을 조금만 쉽게 해 주면 안 되느냐고……. 그러나 남편은 거절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남편을 이해했다. 그러나 나이 60이 다 되어가는 노인의 몸으로 영국으로 역이민을 왔고,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하여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져 버리자, 남편에 대한 연민과 존중은 박살이 나버렸다. 아이고ㅠㅠ 또다시 신세한탄을 하고 있다. 다시 정신줄을 부여잡고! 이에 반하여, 지인의 남편은 나의 남편과 확연히 다르다.
잠깐! 독자님들! 남편을 지인의 남편과 비교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런 오해는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제와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므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독자 중에 그럼 너는 뭐 했냐?라고 물으신다면, 저도 저 나름대로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기회에 다시 적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인의 남편은 어릴 적부터 부모의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자라, 세상을 보는 눈도 다르고 도전에 대한 태도도 훨씬 대담하다. 그는 더 큰 꿈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며, 실패보다는 기회를 보고 나아가는 성향을 가졌다. 물질적인 자산뿐 아니라, 자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 중의 부동산부자가 있다. 물론 친구가 가장 열심히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려고 노력을 했지만, 역시나 그 밑바탕은 초창기부터 부동산 부자인 시댁의 경제적 조력이 있었다. 소위 비빌언덕이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튼간에 부동산 부자인 고등학교 친구는 역시나 자신이 받았던 것처럼 또다시 자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투자하고 지원했다. 자녀들의 교육 및 취업할 때까지 그 많은 시간 동안 재정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에 결혼을 했는데, 서울의 아파트까지 마련해 주었다.
결국, 부자는 자신들이 부모세대로부터 받았던 물질적, 정신적 명품들을 또다시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게 된다. 반면 가난한 이들은 그런 여유가 없다.
왜 부와 가난은 대물림되는 걸까? 부와 가난은 어쩌면 출발선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현실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을 망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