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나는 딸의 품 안에서 한참을 울다가,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 론은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잖아”라는 딸의 말에 눈물을 멈췄다.
5년 전,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던 12월, 정신이 혼미했던 그때 위로해 주었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 더 이상 힘들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17년 전, 60세에 췌장암으로 3개월 만에 돌아가신 시아버님 장례식에서 내가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했던 말도 생각났다.
“아버님은 더 이상 아프지 않으셔도 돼요.”
그 말들이 순식간에 떠올라, 슬픔을 잠시 삼킬 수 있었다.
저녁 7시, 아이샤가 문을 두드렸다. “괜찮아?”라는 말로 시작한 그녀는 왜 엇갈린 죽음에 대해 오해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론이 돌아가시기 전날, 아이샤는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때 우리 옆집에 사는 티나가 다른 이웃과 이야기하고 있었고, 마침 그때 아이샤는 그들의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티나가 하는 말 중에 "...... 너의 이웃이... 죽었다"라는 듣게 되었고, 즉시 아이샤는 자신의 이웃인 00가 죽었다는 소리로 들렸다고 하였다.
안 그래도 그녀의 옆집에 사는 00가 심장병으로 이틀 전에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차에, 그 말을 듣자마자 당연히 자신의 이웃인 00가 죽었다는 소리로 알아들었다고 했다. 이후 그녀는 너무 슬퍼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족들 앞에서 2시간 동안 울다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슬픔이 너무 커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누군가에게라도 이야기를 해야만 했었다고…….
그 후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아들이 집에 와서 론이 돌아가셨다는 올바른 소식을 전해주었고 했다.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샤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살다 보면 가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상하게 겹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아이샤를 보낸 후, 론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론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나는 목디스크로 통증이 심해 아침 8시부터 GP를 만나기 위해 의원으로 뛰어갔었다.
그때 만난 GP는 목디스크는 MRI를 찍어볼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그때까지 시간이 몇 달 걸릴 것이므로 바르는 소염진통제를 처방했다. 그리고 대장염 추적검사가 별도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검사와 체변검사를 하라고 했다.
예정에도 없었던 채변검사를 하고, 며칠 전 채변을 통한 대장암검사키트까지 아주 정신이 없는 오전이었다.
더욱이 오후 1시에는 치과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날씨가 좋지 않다 보니 치과 예약이 취소되어서 2달 정도 기다려야 하는 치과진료를 오늘 당장 해줄 수 있으니까, 올 수 있으면 오라는 전화가 왔다.
비바람이 부는 날, 걸어서 왕복 40분 거리에 있는 치과에 가서 잇몸 치료를 받았다.
원래는 치과를 다녀온 후 론을 들여다볼 예정이었지만, 잇몸 치료로 인한 마취 때문에 발음도 새고, 딸을 위해 저녁도 만들어야 했다. 오죽하면 딸이 “엄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어”라고 할 정도였다.
머릿속에는 아침부터 론이 전동스쿠터가 고장 나서 속상해하던 모습이 떠올랐지만, 말도 새고 잇몸도 불편하며 몸도 아프고, “내일 뵈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그날 하루를 넘겼다.
3주 전부터 론은 천식으로 힘들어하셨고, 인헬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불평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약국에 가서 다른 것을 구매해 보자고 이야기했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신다고 하셔서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구형 목걸이 심장 모니터가 시도 때도 없이 삐삐거린다고 불평하셨을 때, 혹시 정말로 심장이 안 좋다고 그럴 수 있으니 나와 함께 GP를 만나러 가자고 했지만, 그는 본인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론은 비록 82세이시고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으며 류머티즘으로 힘들어하셨지만, 정신은 강건하셨고 독립심이 강한 분이었다. 혹시 내가 그의 독립심을 너무 존중했었나? 차라리 강제로라도 도와드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었을까?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나는 왜 론의 죽음에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을까?
3달 전, 론의 옆집 옆집에 사는 노부부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렇게 깊은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론과 함께한 시간이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곳에 돌아왔을 때, 그는 여전히 강건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그의 삶의 태도는 늘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와 나눈 대화들이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영국의 공공임대주택 단지에서 이웃은 때때로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가 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며 안부를 묻고, 서로를 돌보는 사이. 이웃의 죽음이 멀리 있는 가족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