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첫 모험, 불안과 응원의 마음 사이에서
딸의 첫 3박 4일 독립 여행, 엄마의 긴장된 밤
부제: 영국에서의 첫 모험, 불안과 응원의 마음 사이에서
딸이 만 17세가 되어 곧 만 18세가 되는 시점에서, 그녀는 성인이 되려는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어느 날, 딸은 영국의 친구 나탈리의 집에 3박 4일 동안 놀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MUN에서 만난 친구라는 이야기에 나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나탈리 집에 가도 될까?"라는 질문에, 나는 모르는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이상 머무는 것이 괜찮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부모로서의 걱정과 아이를 응원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그곳이 집에서 기차로 4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리드와 5시간 이상 걸리는 멘체스터라는 점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딸은 리드에서 친구와 지내고 하루는 멘체스터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만약 문제가 생기면 즉시 달려갈 수 없는 먼 거리였고, 그 친구의 부모님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25년 전 멘체스터는 굉장히 위험한 곳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 단 한 번 회사 일로 갔었는데, 도시 전체가 별로라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과 인상도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모든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며, 나는 딸의 독립적인 선택을 존중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딸이 말했다. “친구 부모님은 프랑스에 계시고, 친구는 21살 대학교 언니랑 살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난 말투로 물었다. “그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보내줄 수 있지 않겠니?” 그러자 딸은 쿨하게 알겠다며 친구 부모님 연락처와 언니의 번호까지 알려주었다. 다만 친구 부모님께서 친구에게, 전화 요금도 비싸고 워낙 바쁘셔서 직접 연락은 어렵다고 하셨다고 한다. 대신 문제가 생기면 그쪽에서 나에게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순간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시차가 겨우 한 시간인데, 전화비가 그렇게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WhatsApp 같은 앱으로 무료 통화가 가능한데 도대체 얼마나 바쁘시길래 직접 통화를 못한다는 걸까? 내가 전화를 걸어도 비상시가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는 식이라 답답했다. 그래도 혹시나 이번엔 친구의 언니에게 연락해 보겠다고 하자, 딸은 제발 그러지 말라며 짜증을 냈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문득 중요한 걸 깜빡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에게는 딸 친구의 전화번호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딸에게 물었더니 친구 번호는 본인도 모른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니?" 하고 되묻자, 딸은 친구와는 인스타그램으로 전화하고 톡을 한다고 했다. 마치 내가 카톡을 쓰는 것처럼......
결국 나는 딸의 친구 얼굴도 모르고, 그 부모님이나 언니와도 한 번도 연락해보지 못한 채 ‘괜찮겠지’라며 친구의 집 주소를 보며 나 자신을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TMI: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그것은 바로 제주국제학교에서는 딸과 친한 친구들은 어디에 사는지 이미 내가 다 알고 있고, 부모님들까지도 전부 알고 있기에, 굳이 딸의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3년 동안 이런 경우가 없기에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딸이 지혜로우니까, 믿어보자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만일 딸이 영국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일 '남편이 있었다면 딸이 이런 무모한 모험을 시도했을까?(물론, 남편과 상의했고, 남편과의 상의 끝에 딸의 여행을 허락했음) 올여름 한국에 다녀올 때, 제주도로 가기 전에 서울에 있는 친구의 집에 2박 3일 머물렀었다.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엄마까지 전부 알고 있었기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딸의 친구를 모르고, 부모들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때가 있다.
그렇게 시작된 딸의 여행은 첫날부터 삐그덕 거렸다. 기차가 취소되었고, 그로 인하여 5시에 Leeds에 도착하지 못했고, 깜깜한 저녁 7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어찌 되었건 간에, 리드에 도착한 딸은 리드와 맨체스터를 오가며 재미있게 친구랑 놀러 다녔다.
그때마다 나는 딸과 문자로만 안위를 확인했다.
엄마로서 딸을 믿어주는 담대함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 딸의 여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별문제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고, 나의 불안감은 현저히 낮아졌다.
내가 주로 신경 쓴 것은 아침에 잘 일어났는지와 특히 밤늦게 집에 안전하게 도착한 것까지만 확인하는 정도였다.
딸의 여행의 마지막인 3박이 시작되는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남편과의 전화통화 후, 집안을 정리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저녁 7시가 되었다. 갑자기 밖이 깜깜해지자(영국은 윈터타임이 시작되어 일몰이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됨) 문득 생각났다.
“엥? 오늘 딸과 문자 한 번도 안 나눴네?” 하며 가볍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아무 답변이 없었다.
보통 딸은 문자로 짧게 답변한다. 그런데 답변이 없다. “뭐지?”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안 받았다. “뭐지?”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딸의 친구인 나탈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놀란 나는 이전에 알던 나탈리의 전화번호가 맞는지 물었다. 그러자, 마치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듯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로 “NO”라는 한마디를 한 후 끊어버렸다.
순간, “뭐지?” 혹시 내가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나? 아닌데? 그래서 다시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똑같이 말하고 끊어버렸다.
슬슬 불안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탈리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랏! 또다시 성인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내가 정확하게 나는 누구이고, 나탈리 언니와 통화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She is not here”라는 말과 함께 끊어버렸다. 끊긴 전화를 들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영화 테이큰의 무식한 동유럽 범죄자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결국, 머리가 하얘지고 손이 떨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하지? 112인가? 999인가? 하며 멘털이 붕괴되어가고 있을 때, 마침내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은 친구와 친구의 남자친구와 함께 리드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국인 식당에서 고기를 먹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딸이 전화를 무음 모드로 해놓아서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문자가 온 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딸의 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친구의 남자친구가 대신 전화를 받고 끊어버린 것이었다. 나탈리 언니 역시 일요일이라서 남자친구와 데이트 중이었고, 그때 남자친구가 전화를 대신 받았던 것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라니! 후에 알게 된 나탈리의 남자친구와 언니의 남자친구는 나탈리와 언니처럼 전부 중국계 말레이시안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나탈리가 중국계 말레이시안이라면, 남자친구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구나. 아무래도 내가 사는 이곳은 한국인이 많지 않고, 도한 내 주변 지인들의 아들들은 대부분 영국 여성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그리고 남자들의 전화받는 태도는 투박했고, 그들의 이중 언어 사용으로 인한 특유의 악센트가 있었꼬, 심지어 태도도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더욱이 나의 한국인 악센트의 영어는 어쩌면 그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묻는 질문에 어느 정도의 성의를 보여주고 대답한 뒤에 전화를 끊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요즘 애들이 전화 예절이 없는 것 같다!! 갑자기 화가 올라왔다!!! 꼰대 같은 마인드인가???
아무튼간에 인간은 이성을 잃으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번에 딸이 혼자 떠난 낯선 친구의 집에서의 3박 4일 여행 덕분에 나는 적어도 10년은 늙은 것 같다.
사실 딸의 여행은 시작부터 삐그덕 거렸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피터브로크(딸은 기차를 이곳에서 피터블로그까지 가서 그곳에서 다시 기드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함) 그런데, 승객이 없다고 기차가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고, 그렇게 되어서 다음시간까지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그 시간에 나와 딸은 기차역 근처에 있는 곳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지만...
일이 발생했었던 일요일 저녁 7시의 영국의 겨울 저녁은 어둡고 칙칙하고 낯설다. 모든 상황이 마치 영화 테이큰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낯선 남자들이 전화를 받고, 남자친구와 언니의 남자친구까지 상황에 겹치자, 나의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심지어 처음으로 딸을 의심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못 가게 하니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미친 생각까지 했다.
영국으로 역이민 온 후, 딸은 제주영어교육도시의 안전한 환경을 떠나 더욱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그리고 심장이 안 좋은 늙은 엄마인 나는 불안감이 커져만 가고 있다. 이제 곧 딸은 곧 성인이 되고, 더 이상 내 말을 들을 의무가 없어진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동딸을 걱정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가 나 좀 살려달라고!'라는 마음으로 고등학교 친구에게 하소연하자, 친구는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위로해 준다. 친구는 '아마도 네가 딸이 하나뿐이고 처음 키워보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라며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엄마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번 딸의 첫 3박 4일 독립 여행을 통해 딸은 한층 더 성장하였고, 나는 외동딸에게 자칫 집착 같았던 사랑을 내려놓는 또 한 번의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 홀로 이스라엘과 유럽을 여행하며 살았던 3년 동안, 나의 친정엄마께서는 마음을 졸이며 기도하셨었다.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