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마주하며
사라진 자리, 남겨진 정원 / 나에게 돌아온 사진
죽음을 마주하며
그가 떠난 후, 나는 그의 정원을 외면했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론이 돌아가신 후, 나는 그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려 했다.
심지어 죽음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왜 그의 죽음은 나에게 이런 영향을 미쳤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보다는 죽음 쪽으로 나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마치 영국의 공공임대주택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가난한 모습이 마치 나의 미래의 죽음처럼 느껴져 더욱 부정하고 싶었는가 보다. 역시 경제적인 빈곤보다 정신적인 빈곤감이 더 무서운 병이다.
매일 그가 있었던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그만 없었다. 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어쩌면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멀쩡하게 남겨진 정원이 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떠난 자리를 마주할 수 없었고, 그래서 외면했고, 얼굴을 돌려버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나가 내 문을 두드렸다.
"뭐지?"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물건을 내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엇갈렸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키고 싶은데, 받아선 안 되지'라는 생각과, '그녀의 얼굴을 보고 거절할 수 없겠지'라는 마음이 충돌했다.
결국 나는 "그래, 받자"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그녀가 직접 만든 사랑의 장식품을 받아 든 채, 낮은 담장 너머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 론의 스텝도터와 스텝그랜드도터가 와서 집을 정리하는 거 알지?"
"응."
"다행이네. 론의 아내가 돌아가신 후, 왕래가 거의 없었잖아."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티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나도 너무 힘들었어, " 티나는 덧붙였다.
"어제까지도 만났던 사람이 그다음 날 떠났잖아. 너무 황당하고 속상했어."
나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나 역시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론이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론에 관하여 이야기를 시작한 날이었다.
"그가 돌아가시기 전, 고장 난 중고 모빌리티 스쿠터가 견인차에 실려 온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위로의 한마디를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했어."
라며, 갑자기 울먹이는 나에게 티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코니야, 론은 할 만큼 했어. 더 이상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매 끼니마다 많은 약을 드셔야 했고, 이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났어. 그는 정말 할 만큼 했어. 이제는 편히 쉬는 게 더 나을 거야."
그 순간, 나의 감정에만 파묻혀서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음을 생각게 되었다.
'사회복지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멘털이 약해서 어떻게 하니!'말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담자들에게 수없이 이렇게 감정에 파묻혀 있으면 안 되다고 말했건만,
정작 내가 그 입장이 되자,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역시 티나는 지혜롭고, 객관적이다.
티나와의 대화 후,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있었던 나는 마치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파도 속에서 휩쓸려 다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나는 론의 정원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아주 작게나마 생기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슈퍼를 오가며 론의 집 앞을 지나며, 론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정원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가 사라진 정원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스텝도터가 나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나는 사실, 스텝도터와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혹시, 이 사진 준 사람이 너지?" 그녀가 물었다.
"너에게 돌려줄까?"
나는 잠시 망설였다.
"왜 나에게?"라고 묻자,
그녀는 "우리가 필요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론이 생전에 이 사진을 정말 좋아했었다고 티나에게 들었어. 자세히 보니까, 거실에 있는 우리 엄마 사진과 우리들 사진 앞에 네가 찍어준 사진이 놓여 있더라."
"론이 이 사진들을 굉장히 좋아하셨다고 티나가 말해주었어"
그런 그녀에게 나는 물었다.
"그런데, 왜 너는 나에게 주려는 거야?"
"우리는 더 이상 이 사진을 보관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너에게 주고 싶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차마 거절을 못하고, '그래, 받자'라고 대답하며 사진을 받아들였다.
'그래 일단 받고 보자. 생각은 나중에 하자'라며….
엄마는 남동생 결혼식에서 한복을 입고 계셨고, 그때 엄마는 아직 젊으셨다. 그때 찍은 상반신만 나온 사진 한 장만 가지고 있다. 그 사진을 보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 속에는 평생 사업을 망친 친정아버지의 모습은 없고, 엄마의 따뜻한 미소만 있다. 엄마가 항상 사랑하며 착용하시던 십자가 목걸이는 나의 사랑하는 큰 조카가 갖고 싶다고 해서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족의 유품조차 가지지 않은 나에게 론의 사진을 받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저녁 무렵,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는 딸에게 나에게 돌아온 론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딸은 정원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엄마, 그런데, 왜 이렇게 사진의 옆이 조금 이상한데?"
역시 관찰력의 여왕이다.
눈은 더욱 나빠져서 벌써, 안경도수를 높였는데ㅠㅠ.
"론이 알뜰하잖아. 아무래도 액자가 필요하셨는가 봐, 그래서 채리티숍에서 1 파운씩을 주고 2개를 구입하셔서 넣으려고 하니까, 사진이 너무 컸나 봐, 그래서 옆부분을 불규칙하게 자르셨나 봐. 연세도 계시고, 눈도 잘 안보이시고, 류머티즘도 있으시고…"
"엄마, 그럼 액자까지 사서 드렸어야지!"
"그렇게 좋아하실 줄도 몰랐고ㅠㅠ."
"엄마가 생각이 짧았네ㅠㅠ."
핀잔을 주던 딸은 "그런데, 엄마! 론이 참 행복해 보이셔~"
"그러네~ 정말 그러네~"
딸과의 짧은 대화를 끝낸 후, 생각했다.
그래, 론은 돌아가셨지만, 그는 마지막 날까지 나약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삶을 한탄하지 않으셨다.
물론 오른쪽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힘드셨고, 연세가 많으셔서 류머티즘관절염으로 손가락이 많이 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인했고, 긍정적이며, 독립적 인분이셨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공공임대주택의 앞정원과 뒤정원을 가꾸며 살아가셨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To Be Continued.
TMI:혹시라도 저의 독자님들 중에서 글을 읽으시면서 왜 론(Ron)이라는 사람이 작가와 작가의 이웃인 티나에게 특별한 사람이지라는 호기심이 드신다면, 저의 네이버 블로그 "해피걸의 푸른 바다"의 '영국의 삶'이라는 카타고리에 들어가셔서 글(영국의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시는 나의 이웃들)을 읽어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