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도시 3년, 익숙함과 변화가 교차하는 시간
어차피 떠날 건데: 제주 영어교육도시에서의 3년, 그리고 그 안의 나
제주 영어교육도시에 정착한 지 벌써 3년이 흘렀고, 4년 차를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정작 나에게 다가온 것은 새로운 환경이 아닌 익숙해져 버린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내가 남아 떠나보내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늘 내가 떠나는 쪽이었기에 이제는 반대로 그들을 남기고 보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떠도는 삶과 남겨지는 삶
1999년, 처음 한국을 떠나며 나의 떠도는 삶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과 영국을 비롯해 유럽지역들을 여행하며,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다시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서울에서만 자란 내가 이국적인 곳에서의 삶을 소화해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육체노동의 자원봉사 생활을 견디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그 과정에서 생긴 이별을 맞이하는 것이 어쩌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공항에서 여권을 잊어버리고 비행기를 놓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던 것도, 아마 무의식 속에서 익숙했던 사람들을 두고 또 다른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이 깃들어 있었던 탓이었다. 익숙한 사람,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을 겪는 것이 두려웠고, 자주 정이 들자마자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반복되는 삶이 싫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주에서의 경우는 달랐다.
여기는 내가 아닌 그들이 떠나며, 나를 남겨두고 사라져 버렸다.
남겨지는 입장에서 맞는 이별은 또 다른 불안과 허전함이었다.
새로운 기억과 시간의 흐름
처음 제주 영어교육도시에 발을 디뎠을 때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편의점 하나, 마트 하나 없던 불편함은 차치하더라도, 정착 과정이 매일같이 육체적, 정신적 고생의 연속이었다. 황량한 도로에 보도블록이 깔리고, 비포장도로에 포장 공사가 이루어지는 등 하루하루가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끈끈한 동지애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마음을 나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이 떠나고 나니, 모든 기억은 마치 꿈처럼 짧게 느껴졌다. 함께한 시간이 분명 길었는데도, 어느새 이 도시에서의 경험은 머릿속에서 압축된 영화처럼 지나가 버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길고 험난하게 느껴지던 첫해의 기억도 이제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저 짧은 순간으로 느껴졌다. 처음엔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모든 것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제주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일상과 떠나는 사람들
제주에서의 생활은 날씨처럼 예측하기 어려웠다. 한라산 너머에서 비가 내리면 이곳에서는 해가 반짝이듯, 같은 도시에 살아도 각자의 삶이 사뭇 다르게 흘러갔다. 내가 사는 지역은 언제나 공기가 맑고 평화로웠지만, 언덕을 조금만 내려가면 바람이 몰아치거나 예기치 않은 폭설로 도로가 막혀 있는 상황이 일상이었다.
이런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이곳에 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꾸리고, 그러다가 또 다른 꿈을 찾아 떠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는 익숙한 얼굴이 줄어들고, 이방인의 얼굴로 채워져 갔다. 처음엔 이곳에서 마주친 모든 이들이 함께 겪는 불편함과 적응 과정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정’을 나누었지만, 이제는 그 애틋함을 되새길 사람도, 새로이 마음을 주고받을 사람도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런 나의 감정은 제주 토박이들이 이곳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정’을 느끼기 위해 머물렀다가도 언젠가 다른 길로 향할 사람들, 그래서 너무 깊이 마음을 주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태도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자신도 이러한 생각 속에서 때때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은 자의 마음가짐
3년이 지난 그때, 제주 영어교육도시는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 비해 인프라도 갖춰졌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 덕분에 동네는 서울의 아파트 단지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주변 이웃과도 오랜 시간 마주치기 어렵고, 매일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는 이웃들과의 깊은 연결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 또한 의사, 변호사, 약사 같은 전문직들로 여전히 다채롭지만, 우리는 모두 일상이라는 섬을 만들고 각자가 서로 고립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너는 왜 늘 사람들에게 ‘정’을 주고, 떠날 때마다 아쉬워하느냐고.” 그 말이 맞았다. 이성적으로는 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떠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여전히 허전한 마음이 들어 나 자신을 좀처럼 바꿀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내가 가진 순수함이나 소위 ‘선교사 같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늘 사람들을 신뢰하고, 마음을 열어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언젠가 이곳을 떠날 때는 또 어떤 사람들이 떠올라 나의 마음을 채울지, 그 빈자리를 어떻게 안고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4년 차가 되어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니, 처음 제주에 갔을 때의 낯선 불편함과 고단했던 일상이 이제는 편안해진 일상으로 변해 있었다. 낯설기만 했던 주거시설과 주변 환경은 익숙해졌고, 그 속에서 맞이한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 버린 듯했다. 마치 제주 설화 속 신비의 섬, "이어도"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현실에서는 단 몇 년이었지만, 그곳에선 시간이 10배는 흐른 것처럼 느껴지는 이어도처럼, 제주에서의 지난 세월이 어느새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