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 상대적 빈곤감
뭐야 이거, 무슨 일이야?!
상대적 박탈감
고3이 된 딸은 짜증이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일 밥과 김치, 고기를 먹고 싶어 한다. 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보통 쌀은 런던의 H마트에서 구입한다. 물론 시티에 있는 중국인 사장이 개업한 한국음식을 많이 파는 마트가 있지만, 그곳은 주로 소량으로 판매해서 금액이 비싸다. 게다가 개업한 지 6개월 정도 지나자, 식료품 중 일부는 중국식품으로 대체해 판매한다. 딱 한번 한국에서 제조한 단무지가 없어서 급한 대로 중국에서 제조된 단무지를 구입했는데, 중국 단무지를 샀다가 바로 버렸다.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런던의 H마트는 주문하면 DHL을 통해 2~3일 안에 받을 수 있다. 또한 내가 사는 지역은 무게 27킬로 이내, 60파운드 이상 구매하면 택배비도 무료다.
이번에는 쌀 6.8킬로그램 2개와 찹쌀 4.5킬로 1개를 더 구입했다. 보통은 1개를 구입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더 많이 구입했다. 방학과 크리스마스 방학까지 생각하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받는 날 문자가 왔다.
"어랏, DHL이 아니네? DPD네? 뭐지?"
나는 보통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유명 브랜드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에게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않도록 도와주며, 스트레스도 덜 받게 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다른 곳에서 돈을 절약한다.
아무튼 믿어보자. 도착 시간이 8시 45분부터 9시 45분이라니까, 이때는 창문 밖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택배를 놓치고, 물건은 다른 곳에 보내진다. 그리고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택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다.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는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었다. 내가 살고 있었던 아파트 단지는 택배 아저씨들이 아파트 공동현관문 앞에 물건을 쌓아 놓아도 아무도 가지고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은 전부 부자들만 살았기 때문이다.
설령, 택배기사님들이 실수로 다른 동, 다른 집에 배달되어도, 아예 그곳의 주인이 가져다주거나, 아니면, 택배 기사님이 찾아서 얌전히 현관문 앞에 두고 가신다. 원래 부자동네는 굳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리라. 그렇게 13년 동안 살다 보니, 이곳의 삶이 많이 불편하다.
택배를 받은 후, 곧바로 시티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눈이 빠지라고 기다렸다. 그런데, 예정 시간이 지나고 다시 1시간 30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문자도 안 온다.
"제기랄, 거실에서 물건 도착하는 것 확인하느라 몇 시간을 날려먹는 거냐, 오늘은 시티는 갈 수 없겠군."
결국 H마트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더니, 이미 배달되었다고 했다. 나는 안 받았고, 물건은 배달되었고,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 여쭙자, 물건이 집 근처 슈퍼에 배달되었다고 했다.
나는 분명히 "Door to Door Step Only"를 신청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리고 나는 DHL로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는데, 왜 DPD로 보내셨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지역에서 DHL 택배 배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이 있어서 이번에 다른 택배로 바꾸어 한 번 시도한 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친절한 한국 분의 안내에 부글부글 끓던 마음이 차분해졌고, 그 대신 내가 차가 없으므로 꼭 재배달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후, 택배기사가 시간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지만, 다시 재배달을 해주겠다고 했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밤 9시까지 기다렸고, 택배기사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었고, 물건도 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 혼자 이런 일을 당하는가 싶어서 구글에서 리뷰를 보았는데, 역시나 나만 당하지 않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사람이 열이 얼마나 받았는지, 오늘 리뷰로 열받음을 표현한 이가 있었다.
하아ㅠㅠ. 그래, 나만 당한 것이 아니니까, 이해하자.
나는 생각했다.
이런 경험이 이곳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주영어교육도시의 초창기에는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었다.
가게도 없고, 버스도 안 다니고, 택배는 당연히 안 되었다. 그래서 모든 주민들은 제주시에 있는 이마트와 서귀포시에 있는 홈플러스에 가면, 쇼핑카트가 차고 넘치도록 물건을 쓸어 담아 왔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비록 가난한 서울특별시 시민이었지만, 편리한 대중교통과 문화적 혜택을 지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렸다는 것을…. 제주영어교육도시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가면서 버스도 생기고, 가게도 생기고, 슈퍼도 생기고, 대규모 아파트들이 들어섰으며, 인구가 증가하였다. 그와 동시에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이 빠르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완벽한 세상은 없듯이 새로운 복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상대적 빈곤감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