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상문학상 수상을 기념하여: Human Acts 영문판 리뷰
딸아, 노벨문학상이 나왔대! / 서로 윈윈 하는 게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여: Human Acts 영문판 리뷰
딸아, 마침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왔어!
학교에서 돌아온 딸에게 나는 소리쳤다.
“너무 좋지?! 너무 좋지?!”
“엄마! 나 힘들어 죽겠는데! 뭐라고?”
“한강 작가님이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타셨어! 이제 우리나라도 노벨문학상을 탄 작품이 생겼어!”
“아~ 그래~”
딸은 시큰둥했다. 고3이다 보니 고2와는 사뭇 다르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가고 있다는 증거인데, 엄마는 그걸 잘 모르고 너무 기뻐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어쩌랴, 내가 살아생전 몇 번 올까 말까 한 기쁜 일인데!
세상에, 살아생전에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다니! 대한민국 만세!!!
마침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왔다.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고, 포기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특히 요즘처럼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이제 나는 이 책 (Human Acts)를 자랑스럽게 나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추천할 것이다.
“너 꼭 한번 읽어봐, 노벨문학상을 받은 책이야, 이 책은 바로 현재의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평범한 사람들이 겪었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야!”
너무 기쁜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소년이 온다 책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언니는 교보문고에 나가봤지만,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 결심했어.
당장 영문판이라도 가져와야겠다 싶어 시티에 있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서점 직원이 말하기를 1권이 있었지만 팔려버렸다고 하며 예약을 하라고 했다.
그렇게 4일이 걸려서 마침내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 Human Acts (소년이 온다) 영문판을 손에 넣었다.
영어 실력이 없어서 잘 읽을 수 있을까라는 염려는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한국에서 한글로 된 원서가 길어도 한 달 후에는 올 테니까! 그냥 소장하고 싶었고, 딸에게 읽혀주고 싶었다.
한국인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건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소설로서 읽게 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TMI: 딸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 생후 6~7개월일 때,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은 생애 첫 책(흑백 도형책)을 읽었었다.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증거로 남기기 위해서^^. 역시 유전자의 힘은 세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장 읽는데 눈도 아프고 (노안이고 영어도 잘하지 못하니까), 내용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결국 덮었다. '하야ㅠㅠ, 안 되겠다, 한국에서 책이 오면 그때 읽어야지, 그 대신 딸에게 읽혀야겠다!'
숙제를 끝낸 후, 거실에서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딸아, 이 책 읽어보고 리뷰를 말해줄래?”
“엄마, 나 바빠.”
“너 드라마 볼 시간이면 이 책을 빨리 읽고, 나에게 리뷰해 줄 수 있잖아ㅠㅠ, 너무 궁금해서 그래ㅠㅠ"
“딸, 아니, 싫은데.”
“이 책이 노벨상 받은 책이야. 정말 괜찮은 책 이래~”
“엄마 혹시 블로그에 리뷰를 쓰려고 하는 건 아니고?”
“물론,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이번 것은 아니야~,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역사적인 사건이야, 그리고 너 역사 좋아하잖아~.”
“그럼 엄마가 읽어.”
“나 영어 잘 못 읽잖아~.”
“아니~ 할 수 있어! 엄마, 나에게 항상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 왜 안 해!”
“너는 영어가 제1언어고, 나는 한국어가 제1언어잖아. 그러니까, 너는 200페이지밖에 안 되는 책을 마음만 먹으면 1~2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고, 나는 안 되잖아 Human Acts는 정말 좋은 책 이래~, 노벨문학상을 탈 정도라면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엄마,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면 최소 4~5시간은 걸려, 그러니까 안 돼.”
“그래도 한 번만 읽어봐 주면 안 될까?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안 돼.”
딸은 보고 있던 드라마를 끈 후,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생각했다. 전술을 바꿔야겠다.
어떻게 하면 딸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고3이고 바쁘다 보니, 이 책은 안 읽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다시 머리를 쓰기 시작했고,
역시나 돈으로 해결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50 파운드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나는 딸에게 딸의 강점을 이용해서 나를 도와주어야 할 때에는 공짜로 시키지 않았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돈을 주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부모 자식 간에도 공짜로 하는 때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때를 엄연히 구분하는 습관이 있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한 후, 딸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럼 너, 내가 돈 주면 읽어줄 거야?”
딸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얼마 줄 건데?”
“시간당 12파운드로 해서 50파운드? 그 대신 책을 읽고 나서 간단하게 이 책에 관해 어떻게 느끼는지 말해주는 조건으로?”
“50파운드 가지고는 안 돼.”
“엄마가 지금 돈을 못 버니까, 조금만 봐줘라, 혹시라도 엄마가 일하기 시작하면 그때 잊지 않고 더 줄게~”
“그건 안 돼.”
“그럼 얼마면 할 건데?”
“50파운드는 책 읽는 데, 리뷰는 35파운드.”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단순하게 책을 읽은 후, 너의 소감을 물을 정도만 필요했는데, 네가 본격적인 리뷰를 해준다고 하니까, 그 대신 내가 질문 10개만 만들어 올게. 그 질문에 너의 생각을 적어줘.”
딸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래, 알겠어.”
“그 대신 내일 해줄게.”
딸은 나와 거래를 성사한 후, 마저 보던 드라마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책에 관해 궁금했던 사항들을 10개의 질문으로 만들고, 책과 함께 주었다.
딸은 꼬박 5시간 (딸은 책을 꼼꼼하게 읽는다, 나는 한 번 쓱 읽고, 다시 읽는 스타일인데, 그에 비해 남편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꼼꼼하게 읽는 성격이다.) 동안 딴짓하지 않고, 오롯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등의 작업을 했다.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딸은 거실에서 하고, 나는 위층에서 열심히 유튜브를 보았다^^ 기분이 우울할수록, 날씨가 좋지 않을수록,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몸이 아플수록, 나는 유튜브를 본다. 주로 shorts를 본다.
중독이다. 줄여야 하는데ㅠㅠ.
그리고 마침내 작업을 끝낸 후, 책과 종이에 적힌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주었다.
딸의 표정이 밝았다.
'뭐지? 피곤해서 짜증 낼 줄 알았는데?'
질문지에는 깨알처럼 적힌 글자들로 가득한 종이를 보며 나는 말했다.
"와우, 너무 대단하다! 힘들지 않았어? 너무 한꺼번에 하지 않아도 되는데, 뭐 하러 그랬어?"
"아니, 재미있었어!"
"엇! 재미있었어? 슬프지 않았어?"
"슬펐어. 그런데 재미있었어."
"그런데 왜 손으로 글씨를 썼니? 손글씨는 엄마가 잘 못 읽잖아. 눈도 노안이고, 특히 영어로 쓴 것은 더욱 힘든데?"
"엄마!! 그럼 처음부터 타이핑해 달라고 했었어야죠!"
"아이코! 미안해, 나는 네가 그럴 줄 알았지! 설마 이렇게 글로 쓸 줄은 몰랐어ㅠㅠ. 타이핑해 줄래? 그 대신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아. 다음에 해줄래? 오래 걸릴까?"
"하야ㅠㅠ. 엄마는 참, 아니야, 금방 할 수 있어, 그 대신 그것은 나중에 해줄 거니가, 지금은 내 말을 들어."
"응? 책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거야? 그렇게 책이 재미있었니?"
"응, 재밌었어."
딸은 그때부터 신나게 Human Acts에 관하여 자신이 쓴 리뷰를 읽으면서 아주 꼼꼼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딸과의 책에 대한 리뷰와 생각들을 나누며 족히 2시간은 지나갔다.
가끔씩 딸은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은 후,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거나, 엄마도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말보다 생각이 많은 딸이 상기된 목소리로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은, 노벨문학상 발표 시 언급되었던 한강 작가의 Human Acts (소년이 온다) 영문판이 굉장히 좋은 책이라는 의미이다.
다행이다.
마침내 딸이 이 책을 읽었다.
딸과 나는 서로 윈-윈 하는 게임을 끝냈다.
윈-윈 게임이란, 나의 강점과 딸의 강점을 대가를 주고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거래를 말한다. 인간은 원래 완벽한 동물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모든 것을 독식하려는 개인들이 만연하다. 만일 사람들이 서로의 강점을 나누고 약점을 보완하여 개인과 사회를 이끌어 간다면, 선택해서 태어난 삶은 아니지만 지속할 수 있는 힘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딸은 곧 제주국제학교에 다니며 온라인 모의유엔(MUN)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 나탈리를 만나기 위해 혼자 리즈(Leeds)로 갈 예정인데, 이때 사용할 용돈 90파운드를 더 마련했다. 그리고 나는 딸이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나는 딸과 오래간만에 책에 관한 토론을 마친 후, 챕터별 리뷰와 개요까지 빽빽하게 적힌 종이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일 딸이 제주국제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IB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영어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딸은 한국어를 영어처럼 잘하지 못한다.
단, 딸의 제주국제학교 친구들은 완벽하게 한국어와 영어를 쓰고 읽는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딸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의 부모님들과 그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 대신에 노력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있을 것임을 알기에,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딸의 제주영어교육도시의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이미 대학입학원서들을 제출했거나, 거의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물론 우리 딸이 친구들처럼 완벽하게 두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한국인 엄마와 함께 책의 줄거리와 리뷰를 흥미롭게 이야기하거나,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을 정도의 언어 능력을 습득한 것에 대해 나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외벌이 가정의 전업주부로서 돈이 문제가 되지 않는 제주 영어 교육 도시에서 거주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제대로 된 IB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곳 영국에 돌아와서야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사실 1년 3개월 전에는 제주국제학교의 IB 교육에 대한 확신이 다소 부족했었다.
딸은 일주일 전에 대학 입학 원서를 모두 제출했고(대학마다 제출 마감 기간이 조금씩 다름), 오늘부터 벌써 오퍼가 들어오고 있다. 감사하게도 딸은 법학 분야에서 영국 10위에 랭킹 된 대학교에서 조건부 오퍼를 받았다. 딸의 친구는 15등인가 7등인가 하는 대학교의 오퍼를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감사한 일이다. 물론 내년 6월에 있을 A레벨 시험을 잘 치러야겠지만, 일단은 좋은 소식이다.
다만, 딸이 원하는 대학의 결과는 아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늦어도 12월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하니, 하아... 기도를 해야 할까?
역시 수험생의 엄마는 마음이 너무 힘들다ㅠㅠ.
TMI: 남편은 한강 작가의 소설 Human Acts를 10년 전에 다 읽었고, 소장하고 있으며, 좋은 책이라고 했고, 소설 채식주의자 (The Vegetarian)는 별로라고 말했다.
딸을 위해 새롭게 예약한 책(새 커버로 바뀜)은 10일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이제는 한국에서 오는 원서 소년이 온다만 기다리면 된다.
처음으로 가족 전체가 하나의 책을 읽고 토론하며, 각각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