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또한 나인 것을.
스스로를 돌아본 1년 간의 시간은 내게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원래' 예민하고 화가 많은 편이라 생각해 온 '원래'의 근원을 찾았고, 산후 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로 생각했던 것은, 초보엄마기에 겪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
무엇보다 부모의 성격, 말습관, 태도 등의 양육환경이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것을 인지하자, 그들에게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당연해졌다. 나아가 어린 날의 내가 나빠서, 무엇을 잘못해서, 혹은 부모를 더 이해하지 못해서라는 오판마저 버릴 수 있었다.
분노, 자책과 죄책감으로 포장된 내면에는
서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누구나 가정폭력, 비난, 감정 쓰레기통 등의 정서적 학대를 겪으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혼란이었다. 내가 겪은 불우한 성장환경의 인정과 수용은 억울함과 서러움도 포용하게 했다.
스스로를 애상(哀傷)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면 애도기간을 가지 듯, 나는 스쳐가는 감정을 건강하게 흘려보내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간의 해묵은 모든 감정의 솟구침을 부정하지 않고, 하나씩 수용해 보기로 했다. 마음껏 슬퍼하고 스스로를 진정으로 보듬으며 말이다.
그럼에도 용납과 용서는 별개의 일이다.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수차례 거치며, 그들의 사정이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완전한 용서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유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현재의 인생 전반에 걸쳤던 일인 만큼,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도 같은 이유로 상처를 받는 것'에 있었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여전했다.
물론 나의 혼란과 버거움을 고백한 덕택에, 그들과 만남시엔 전과 다르게 일정시간 동안은 내게 주의하는 모습이었다. 난생처음이었다. 그렇게 부모에게 존중받는 느낌은 참 따뜻했다. 하지만 사람이 바뀌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다는 말은 사실이었을까. 만난 후 대략 3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는 나 역시도 상처 입은 어린아이로 되돌려 놓았다. 때문에 나는 부모와의 만남을 앞두면, 몇 주전부터 예민해졌다. 혹시 어머니가 또다시 자신이 겪은 서러움을 해결해 달란 듯 본인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내면 어쩌지?, 아버지가 난데없이 내게 화를 내거나 나를 비난하면 어쩌지? 하는 온갖 불편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혹시 나는 늘 역시나였다. 이렇게 트라우마처럼 시달리느니, 차라리 연락 없이 지내며 관계를 단절할까도 고민했다. 더욱이 맞벌이와 육아라는 핑계는 꽤 그럴싸한 포장지로 보였다.
관계의 단절(경직)보다는
건강(명확)한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의 조언은 달랐다. 부모와의 경직된 관계는 결국 나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라 했다. '나의 근원'은 미우나 고우나 '그러한 부모'인데, 그들과의 단절은 결국 '내 안의 상'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때문에 아이를 양육하며 몸이 바쁠 땐 마음 한편에 미루어 둘 수 있겠지만, 이후 신체적 여유가 생기고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유한한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엔, 말 못 할 공허함이 몰려올 것이라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이 방법은 내가 관계 속에서 갈등을 대처할 때, 동굴로 '회피'하며 대응했던 것과도 같았다. 이 잘못된 방법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원인은 까맣게 잊고 그때의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걸까?,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하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했다.
그리고 그 끝은 어리석게도, 동굴에서 나온 뒤에도 같은 관계를 다시 맺고, 같은 이유로 상처받고 후회하길 반복하는 것이었다.
여러모로, '관계의 건강한 경계를 만들기'는 내게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
낀대의 열한 번째 Solution.
1. 건강하게 슬퍼하는 방법 : 비통함을 이겨내는 방법.
1) 가족(또는 원인 제공자)이 나를 잘못된 방법으로 다루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슬퍼한다.
2) 속할 곳이 없다는 두려움에 학대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붙잡으려 하거나, 그런 관계를 이해하고 방어하고 설명하고 어떻게든 붙들어보려는 시도를 그만둔다.
3) 내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관계가 깨졌다는 생각을 바꾼다.
: 내게 형편없이 구는 것은 실제 내 가치와 무관하게 본인들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4) 지금까지 받은 상처와 모욕을 들여다본다.
(자기 회의감과 자신을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살핀다.)
: 감정은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감정은 본질적으로 거쳐가는 에너지와 같은 특징이 있다. 즉, 왔다가 사라진다. 감정을 느끼되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을 훈련하면,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다루게 된다. 또한, 감정을 느끼는 족족 반응한다고 생산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좀 더 천천히 깊이 있게 자신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2. 상처를 준 사람과 건강한 경계를 설정할 것.
1) "그렇게 하면 상처받으니, 이제 나에게 그만하세요."라고 말해 볼 것.
: 그때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온전히 상대방의 감정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받아낼 몫이니, 내가 그것까지 감당하려 하지 말자.
Ex) 작년 겨울, 나는 어머니와 긴 대화를 했음에도 그녀는 또다시 아버지의 험담과 두 분의 과거사를 내게쏟아냈다. 나는 늘 그래왔듯, 어머니가 상처받을까 봐 모두 들었다. 듣는 내내 숨이 턱 막히고 짜증이 치솟았지만 꾹 참았다. 하지만 어머니와 헤어진 후 밀려오는 서러움에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힘들다고 말했음에도, 반복되는 모습에 다시 한번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용기 내어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혼란스럽고 버겁다고 했다. 덧붙여 '딸을 감정쓰레기통으로 삼으면 안 되는 이유'가 담긴 전문가의 강의 링크를 메시지로 전송했다.
고민 끝에 보내고도, 너무 매정한 딸인 것 같은 죄책감에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게 울고 나니 오히려 후련해졌다. 돌려 말하거나 쌓아두지 않고, 당당히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강의를 보셨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까지는 생각도 묻지도 않기로 했다. 내게 서운했던, 깨달음을 얻어 미안해했건, 그건 온전히 그녀의 감정이니까. 내가 떠안을 필요가 없다.
2) 애써 용서해야겠다는 부담을 버릴 것.
: 불현듯 분노와 서운함을 오가는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모두 수용하고, 나 자신을 아끼자.
상담 선생님은 인간의 생리적 반응과 감정은 통제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100%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용서가 힘든 내 감정 역시 그렇다. (반면 생각은 50% 정도, 행동은 100% 통제가 가능하기에 이를 수정하고 바꾸는 것이 가능함.) 따라서 애써 용서해야 한다는 부담대신, 현재 나의 치유 과정을 존중하며 스스로를 격려하자.
* 참고서적 : 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셰리 캠벨 지음.
* 사진출처 : Freep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