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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솔웅 Dec 30. 2022

불공평한 세상

그동안 나는 일흔 곳이 가까운 나라를 여행할 수 있었다. 지구를 여행하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고유문화를 경험하고 신비로운 대자연의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불공평함 역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나와 다른 많은 친구를 만났다.


남아프리카의 한 학생은 슬럼가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형제와 부모를 잃고 혼자 자라야 했다. 지진이 할퀴고 간 아이티의 어느 소녀는 매일같이 위험천만한 길을 걸어서 물을 길어야 했다. 튀니지의 한 언론인은 부당한 이유로 감옥에 갇혀야 했고, 코소보의 한 친구는 전쟁으로 집을 잃었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저 멀리 스리랑카 바티칼로아의 한 소년은 폭탄 테러로 두 부모를 잃었고, 미얀마 카렌족 아저씨는 국경에 있는 난민촌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었다. 태국 파타야의 한 아주머니는 평생 성매매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고, 캄보디아에서 만난 소녀들은 어려서부터 힘든 노동을 해야 했단다. 그리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전쟁 때문에 저 멀리 시리아 알레포에서 온 난민 친구도 만났다.


이 세상에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사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교수 장 지글러Jean Ziegler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La faim dans le monde expliquée à mon fils (2000)에 따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는 1984년에 120억 명이 먹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 평가를 하였다. 즉 현재 세계 인구가 80억 명이니 모두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고 있다. 참으로 불편한 현실이다.




나는 정의로운 세상을 희망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는 무엇일까? 공평함fairness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그리고 자발적인 나눔과 배려가 있는 따뜻한 세상이다. 우리는 생김새도, 취미와 특기도, 사고하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출신과 신분, 피부색과 종교, 경제성과 정치적 성향을 떠나 차별 없는 사회를 꿈꿔본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랑과 형제애가 있는 사회를 갈망한다. 이웃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세상 말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양심을 지니고 있으며, 형제애의 정신에 입각해서 서로 간에 행동해야 한다. - 세계 인권 선언 제1조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장 지글러는 그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이렇게 적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인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비록 우리는 필연적으로 불공평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창의성을 발휘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향한 자발적인 나눔과 배려가 있다면 불공평이라는 난관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과 함께 울고 웃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인류에 대한 희망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인가? 요즘 들어 마치 유행과 같이 많은 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오늘날 80억 인구는 이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같은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지 않다. 모두가 공평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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