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재건축 물권 계약
Part1. (1년 차) 투자 초반. '새싹 조합원'
귀신 아파트를 매수하기로 마음먹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집주인이 느닷없이 천만 원을 더 올려달라고 했다.
'사업시행인가까지 이미 났고,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며 배짱을 부렸다. 이게 무슨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인가!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오는 집주인의 도발에 어이가 없었지만, 나의 숨길 수 없는 초조함과 매물을 마음에 들어 하는 기색을 알아채고 그런 것 같았다. 이래서 부동산 시장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는데 '이런 똥멍청이 같으니라고' 머리를 쥐어박아도 이미 늦었다.
천만 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차라리 비어있는 다른 매물로 바꾼다고 할까?’ 마음이 흔들렸지만, 다른 매물들은 내부 상태가 좋지 않아 세입자를 들이기 어려워 보여 선뜻 내지르지 못했다.
전 집주인은 중개인과 통화하며 ‘2-3일만 더 고민해 보고 팔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재차 밀당을 하자, 갑자기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계약하면 5백만 원은 더 얹어 드린다고 하세요. 아니면 차라리 다른 집으로 계약하겠어요."
이렇게 밀릴 수는 없지! 부동산 바닥에서는 새가슴이지만 나름 대기업 짬빠가 1n이 넘는 서울에 자가 없는 부장이다. 과감히 상대를 압박하는 승부수를 던지자 기세에 놀랐는지, 아니면 확실한 계약 성사로 복비가 눈앞에 어른거렸는지, 부동산 사장님도 호들갑을 떨며 '지금이 최적의 매도 타이밍이라고' 지원사격을 해줬다.
배짱 좋게 질렀지만, 나는 속으로 계약이 행여 무산될까 봐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초조하게 시간이 흘렀고 오래된 부동산의 낡은 시계에서 나는 째깍거리는 초침소리만 정적을 깼다. 긴 침묵 속에서 어색함과 뻘쭘함을 견디며 약 한 시간가량을 부동산에서 버틴 결과 마침내 매도 결정을 내린 집주인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나중에 등기를 확인해 보니 전 집주인은 5년 전 매입한 금액의 딱 2배를 더 받고 내게 집을 파는 격이었다. '5년 만에 2배라니, 이래서 부동산, 부동산' 하나 싶었다. 재건축이 되면 입주권에 소위 ‘P(프리미엄)’을 붙여 팔면 더 이득이지만, 아들 내외가 손주 교육 때문에 빨리 학군지로 이사하고 싶어 해서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판다’며 아쉬움인지 엄살일지 모를 푸념을 한 참 더 늘어놓은 후에야, 겨우겨우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마침내 계약금을 송금하고 가계약을 체결했다. 부동산 계약은 보통 가계약과 본계약으로 나뉜다. 가계약은 통상 매수액의 5~10% 정도로 설정되는데, 이는 고정 값이 아니기 때문에 협상하기 나름이다. 본계약은 당연히 계약금을 제외한 전액. 즉, ‘잔여금액(잔금)’이다.
재건축, 재개발 매물을 매수할 때는 계약금과 잔금 사이에 반드시 ‘중도금’을 설정하고 지급하는 것을 유리하다. 단순히 가계약만 체결한 상태에서 매수인이나 매도인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계약을 파기한 쪽에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긴 하지만, 사업성이 좋은 재건축, 재개발 매물일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프리미엄’이 오르기 때문에 집주인이 마음을 바꾸는 경우를 대비해 중도금을 설정하고 지불하면,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가 불가하다. 일종의 법적 안전장치니 꼭 기억해 두자.
시간은 흘러 마침내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 비장한 마음으로 본계약 당일, 아담한 부동산 사무실에 매도인(전 집주인), 중개인(부동산 사장님), 매수인(나), 법무사(등기이전 담당), 귀신아파트 새로운 임차인(세입자)까지 옹기종기 원탁에 모여 앉자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릴레이 게임처럼 각자 지불하기로 한 금액을 차례차례 계좌 이체했다. 요즘은 모바일 스마트 뱅킹으로 앉은자리에서 송금이 가능하니 ‘세상 좋아졌다’는 생각이 설핏 스쳤으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손가락 한 번 까닥 잘 못 놀렸다간 대형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연과, 전재산일지 모르는 금액을 주고받느라 연신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자 그제야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사지를 함께 넘은 것 같은 전우애마저 느껴졌다.
부동산 계약을 준비할 때 자주 언급되는 ‘1일, 1회 계좌이체 한도’를 미리 늘려 두는 것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재건축 아파트, 귀신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 ‘정당한 조합원의 지위를 승계한다. 조합원 지위 승계 관련 문제가 될 경우 계약 취소 및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진다’는 특약을 포함시켰다. 동시에 귀신 아파트에 입주할 새로운 세입자와의 임대차 계약서에는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어 이주 및 철거가 시작되면 아무런 조건 없이 2개월 내에 이사한다’는 특약까지 야무지게 넣어 마침내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자, 드디어 요 며칠 계속 채한 것 같았던 불편한 기분이 조금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귀신아파트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 내용은 다음 챕터에서 좀 더 자세히 풀기로 한다. 요즘은 법무사를 따로 부르지 않고 셀프 등기 처리하여 수수료를 아끼는 경우도 있던데, 나는 거기까지는 도저히 준비할 여력이 안 됐다. (살짝 눈 탱이 맞은 감은 있지만) 부동산 사장님의 소개를 받은 법무사와 함께 등기이전까지 마무리하고 녹초가 되어 귀가했다.
다 허물어져 가는 30년 된 아파트이지만 그래도 하늘 아래 내 집 한 채 마련했다는 안도감에 잠이 달았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