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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패셔니스타

by 소란화

모처럼 모임이 생겨서 입고나갈 옷을 챙기러 옷장을 열었다. 입을 옷이 무척 많은데, 무얼 입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옷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사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내 옷을 마음에 든다고 직접 고르고 사입은 경험이 거의 없다. 처녀시절 옷장에 하나둘 걸린 옷가지들은 거개가 엄마의 안목과 '자본'이 들어간 것들이다. 나는 결혼하면서 그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그래서 옷장을 열면 여전히 본가에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대학에 들어가 가장 곤란했던 것이 바로 옷입기였다. 교복 하나로 사계절이 거뜬했던 시절을 지나, 바야흐로 내가 입는 옷이 나를 대변하는 대학생의 세계로 진입한 나는 매일매일 아주 고민스런 기분이 되어 옷장 앞에 오도카니 서있곤 했다. 그런 꼴을 보다못한 엄마가 나를 잡아끌고 향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우리 형편에 말도 안되는 소비처였다. 그랬는데, 엄마가 그랬다. "좋은 옷을 입고, 부지런히 너 자신을 꾸며." 나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하지, 남자한테 잘 보이라고?" 그때 그런 내게 엄마가 한 말이 지금까지도 생각이 난다. "너 자신한테 잘 보이라고. 어딜 가든, 스스로한테 예뻐보이란 말이야."


옷과 장신구, 화장품과 신발은 엄마의 단골 선물이었다. 엄마는 나와 외출하기만 하면 인형에게 옷입히기 게임을 하듯 이것 저것 '아이템'을 하나둘씩 사오곤 했다.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매칭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엄마는 나와는 달랐다. 엄마는 단 하루도, 정말로 단 하루도 풀메이크업을 빼먹지 않은 사람이다. 엄마는 항상 '세팅'된 여자였다. 아파도, 피곤해도, 슬퍼도, 그 어떤 경우에도 엄마는 세팅을 멈추지 않았다. 아침 화장은 그녀만의 숭고한 '리추얼ritual', 그러니까 일종의 '의식'이었다. 의식을 치르고 나면 엄마는 언제나 기분이 '업'되어지곤 했다. 아침 라디오방송 진행자처럼, 활기차고 발랄한 그녀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화장, 옷, 장신구. 나는 이것들을 빼놓은 우리 엄마를 절대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화장, 옷, 장신구만 빼놓고 돌아다니는 딸이 엄마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수 밖에. '내 딸 맞아?' 하면서도 엄마는 계속 아이템들을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그렇게 처녀시절, 나의 옷장과 화장대(화장을 안하는 나를 위해 심지어 화장대까지 사오셨다)에 물건들이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여갔다.


대충 모임에 어울릴 법한 옷가지를 들고 나와 손질을 한다. 좋은 재질, 좋은 색상, 좋은 분위기의 옷들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날 위해 살 생각조차 하지 못할, 엄마의 사랑이 담긴 옷가지들이다. 나는 몇번 입지도 않은 옷가지들을 하나둘 매만져본다. 엄마를 쓰다듬는 느낌이다. 매일같이 통화하는데도 돌아서면 그리운, 우리 엄마는 이렇게 옷장 속에도 있다. "좋은 옷을 입고, 부지런히 너 자신을 가꿔." 이제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말하곤 한다. 어딜 가든, 나 자신에게 아름다워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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