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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물꼬기 Mar 10. 2024

나는 쓰레기장에서 페트병을 모으는 남자다

   우리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은 매주 일요일이다. 나는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사실, 결혼기념일보다 더 기다린다.  와이프가 이 글을 본다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누가 뭐래도, 나와 물고기들에게는 이날이 중요한 날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지난주 일요일 저녁 7시,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마치고 깔끔하게 식탁 정리하고 설거지도 마무리했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빠르게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리고 산더미 같은 재활용 쓰레기를 카트에 싣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사실 나는 매주 카트에 실을 정도의 어마 무시한 쓰레기를 보며 , 제발 아무도 엘리베이터에 타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엘베 타고 싶어도 우리 집 쓰레기 때문에 타지 못하며 나를 쳐다봤던 그 따가운 눈초리를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1층까지 아무도 타지 않고 엘베가 도착할 때면 나는 매우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도착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비닐과 캔,  유리,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 플라스틱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곳은 분리수거장과 조금 떨어져 있지만 나무도 있고 공기가 좋은 곳이다. 특이한 점은, 플라스틱 배출 장소가 엄격하게 아래처럼 두 곳(1군, 2군)으로 분리가 되어 있는 곳이다.



 

   1군 (하얀 자루)은 플라스틱 라벨이 제거된 순백의 플라스틱이 모여지는 곳이다.  모두들 깨끗한 피부와 우아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과거 자신의 이름과 태생, 신분이 깨끗이 사라져 '신분세탁'이 된 상태로 새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2군( 황색 자루)은 세상 모든 종류의 플라스틱이 있는 그대로 모여진 곳이다.  본래 태어난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들에 의해서 그냥 버려진 곳이다.  왠지 생기가 없고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내가 만일 플라스틱으로 환생한다면 꼭 1군으로 가리라 다짐도 해봤다. (착한 일을 해야 한다.)



물고기와 내가 원하는 페트병은?


   나는 황급히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고 본연의 임무 수행을 위해 동물적인 감각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나와 물고기들이 원하는 궁극의 삼다수 페트병은 어디 있을까?’ 



   드디어 찾았다.  깨끗한 삼다수 페트병이다. 역시 깨끗하고 영롱한 삼다수 페트병은 1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10년 동안 물고기를 키우며 수많은 페트병을 써봤지만 나와 물고기들에게 가장 적합한 게 바로 삼다수 2L 페트병이었다. 



브라인 쉬림프 부화기에 활용한 페트병


   페트병은 물고기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존재다. 그 이유는 물고기들의 보양식,  살아있는 먹이 ‘브라인 슈림프 부화기'를 만드는 최고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500ml 페트병으로 만든 브라인 슈림프 부화기 준비물이다. )



   위 준비물로 제작 방법을 영상으로도 만들어봤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 10년간의 노하우가 집약된 영상이라고 보면 된다.  아참, 당시 정말 힘들게 촬영하고 편집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돈 주고 하라고 해도 못한다.  이 글을 쓰며 영상을 다시 봤는데 참 새로웠다. 자막을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https://youtu.be/t_9FHj5cols



   나는 오늘도 '쓰레기 분리수거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쯤 되니, 물고기들도 무척 반기는 눈치다. 나의 이런 소소한 플라스틱 재활용 아이디어가 지구환경 보호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삼다수 다 드신 분 ~ 페트병 주실 분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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