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부터 찾아오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졌다. 40일의 빈자리가 의외로 길었나 보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느라고 늦어지는 저녁 시간을 개의치 않는다. 아내가 준비한 좁쌀 미음을 조금 먹었다. 오랫동안 속을 비웠으니 조심스럽게 먹는 양을 조절해야 한다. 미음을 시작으로 죽을 먹고 그런 다음 밥을 먹도록 해야 한다. 너무 먹고 싶어 과식을 한다든가 성급하게 고기를 먹어 금식을 잘 마치고 실패하는 예가 더러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칫 사망에 이를 수도 있음이다. 내가 내린 결론운 '먹는 걸 참아내는 것이 금식보다 더 어렵다'이다. 맨 끝으로 청소년들이 나의 곁을 떠난 시간은 저녁 10시였다.
잠을 청했으나 두 눈은 커튼 내리기를 거부한다. 자정이 지나는데도 더욱 초롱초롱하다. 아니 1시, 2시가 지나도록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벽시계가 2시 30분을 가리킨다. 누군가 교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찬송을 부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복영 어른이시다. 시계를 잘 못 보고 새벽을 깨운 모양이다. 잠시 후 다시 돌아가는 발걸음이다. 시간이 흐른 후 멀리서 예불을 알리는 사찰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새벽을 깨우는 시간이 되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교회와 사택 사이에 있는 종각의 줄을 당겨 종을 두드린다.
이불을 밀어내고 일어나려 했으나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어제 산에서 내려올 때는 날아갈듯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온몸이 풀어진 상태이다. 그러니까 빈 속에 따뜻한 곡식 삶은 물이 들어가니 온몸이 허무러 지는 느낌이다. 왜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멋대로 흩어지려 하는지 모르겠다.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만 깊은 꿈나라 여행에 빠져버렸다. 햇볕이 유리창문으로 밀려와 방 안을 가득 채울 때에 눈을 뜨다. 쌓였던 피로가 멀리 사라지고 새 힘이 솟는다.
그럼에도 오늘은 아래에 앉았다. 1시간이 지나니 엉덩이가 불편하다. 살이 빠졌기 때문이다. 원로 목사님의 설교가 끝난 후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다. 긴 말이 번거로운 듯 서로가 눈시울을 붉히며 기쁨을 나누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힘이 든다. 앞서 언급했듯 따뜻한 음식이 채워지니 몸이 풀리면서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은 제일 걱정하던 대변을 보게 된 점이다. 변비로 고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약간의 피가 묻어 나왔을 뿐 어려움이 없었다.
4월 12일 월요일 새벽을 깨우다. 지난밤은 너무나 달콤한 잠을 잤다. 오늘은 가벼운 맘으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아래에 무릎 꿇고 앉는다. 인도하는 이는 장로들의 몫으로 순서를 정했다. 웬일인가?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죄에 대한 내용의 찬송이었나 보다.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장 10절)라는 말씀이 다른 사람을 일깨우고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타인이 아닌 바로 나에게 향하는 화살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갈수록 죄가 밝히 드러나게 됨을 깨달았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모데전서 1장 15절). 말씀이 되새겨지며 신앙의 선배들이 고백한 감동적인 찬송 시가 눈물샘을 더욱 자극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원어에서 죄는 '과녁에서 빗나가다'라는 의미다. 양궁이나 사격 선수들이 앞에 있는 과녁을 향해 사격을 하고 화살을 당겨 맞추는 경기다. 죄는 과녁을 벗어나 빗나가는 것이다. 풀어 이해한다면 인간이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그것이 죄라고 이해가 된다.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도, 어머나의 자리를 소홀히 함도 죄가 아닐까? 나라를 돌아보면 법을 어기면 죄가 된다. 살다 보면 본의 아닌 실수와 넘어짐이 있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아닌가. 스위스의 사상가이며 법률가인 칼 힐티(Carl Hilty 1833-1909)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책을 썼다. 새로운 삶의 결단으로 몸도 마음도 평안을 찾음으로 행복한 잠을 이루는 밤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