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세계에서 교육 고통이 가장 심한 나라 -3
2022년 7월, 국가교육위원회법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 정책 중에서 중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시행이 필요한 일을 전담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운영되는 독립적인 기구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필요성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지속적으로 선거 공약으로 제시되었고, 2017년에 출범한 국가교육회의를 중간단계로 거쳐, 2021년 7월 법안이 통과되고 1년 뒤인 2022년 7월에 마침내 시행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국가교육위원회가 현실화되기까지 2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볼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는데, 국가교육회의의 기획단장을 맡았던 이광호의 설명에 의하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21세기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2017년 대선에서는 홍준표·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국가교육위원회’를 공약으로 제시”(각주1)했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우리나라 교육의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푸는 데 교육부의 역할로는 역부족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특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면 선거 때 내놓았던 공약을 중심으로 국정과제를 수립하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가 5년이다 보니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 정책은 내놓기가 어렵다. 자신의 집권 기간 내에 추진하기 어려운 일을 정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복잡하게 이해관계들이 얽히고설킨 교육 문제를 5년 만에 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정권의 변화에 상없이 꾸준히 교육 정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일관성 있는 교육 정책의 중요성은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가 만든 카드 뉴스(그림4-7)(각주2)에도 주요 내용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림4-7 국가교육위원회의 필요성
자료: 교육부 카드뉴스(2021).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교육부 블로그.
국가교육위원회가 오랜 시간의 진통을 거쳐 출범했으니,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중장기적 교육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담당할 일의 범위에 대해서는 국가교육위원회법 제10조에서 규정해 놓고 있다. 주로 중장기 교육 정책, 국가교육과정,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이 그것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자료: 법률 제18298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그렇다면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중장기적인 추진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핵심인 지나친 입시 경쟁을 해소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국가교육위원회는 최우선 과제로 대학서열 해소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소관 사무를 규정한 법 조항의 내용 중 대학입학 정책을 국가교육위원회의 사무로 규정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인 일이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새로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가 2018년의 대입전형 공론화처럼 수시, 정시 비율 조정 같은 지엽적인 논의에 그친다면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10년 이상의 중장기적인 교육 비전을 수립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내신과 수능을 절대평가화하고 시험 형태를 논서술형 시험으로 전환하는 일, 대학 입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학서열 해소 방안을 마련하는 일 등 긴 호흡을 가지고 추진해야 하는 근본적인 교육개혁에 나서서 국민들의 교육 고통을 줄이는 것이 국가교육위원회의 존재 이유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그 출범 이유, 즉 중장기적 교육 비전을 수립하는데 집중하기 위해서는 위원들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며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위원들이 자신의 소속 단체의 이익을 지키는데 집중하거나 정치적 견해 차이로 다투느라 정작 중장기적 교육개혁에는 손을 못 쓰는 일이 벌어진다면 국가교육위원회의 존재 이유가 무색하게 된다. 위원 구성은 법령 준비 단계에서 여러 차례 논란을 거쳐 최종 21인으로 결정되었는데 그 구성 방법은 다음과 같다.
위원 구성 방식에서 아쉬운 점은 활발한 논의 구조가 되기에는 21명이나 되는 위원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속 단체의 대표로서 당연직처럼 참여하게 되는 인원이 많고 비상임 위원이 많은 점도 아쉽다. 교육 비전 수립을 위한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해관계의 차이만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 우려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 9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재판관 전원이 상임으로 6년의 임기를 일하는 방식인데, 차라리 이러한 방식이 전문성을 가지고 교육 비전을 수립하는 데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법률은 시행되었고 국가교육위원회라는 배는 출항을 시작했다.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점을 장점으로 만들면서 위원회의 도입 취지를 살려야 한다. 각 이해집단이 모인 점은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대통령과 국회 등에서 위원을 추천할 때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보다 교육 분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추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유명무실한 교육부 위의 옥상옥 기관이 되지 않고 국민의 교육 고통을 해소하는 의미 있는 국가기관이 되기를 바란다.
각주
1) 이광호(2020). 국가교육위원회,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립 방안 정책토론회 자료집. p.3.
2) 교육부 카드뉴스(2021).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교육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