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훈 Feb 02. 2023

논의의 시작, 국립대통합네트워크

제5장 대학서열 해소를 위한 지금까지의 논의들 -1

대학서열 해소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우선 지금까지 어떤 논의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데서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대학서열 문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지적이 되어 왔고, 여러 분석과 해결방안 제시가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해결방안 중에서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사회적 반향도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로 경상대 정진상 교수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각주1)를 들 수 있다.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는 일곱 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1년 동안 공동 연구를 진행하여 2003년 ‘대학서열 체제의 제 문제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구축’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이 2004년 출간된 정진상 교수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담 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서 제안된 ‘대학 네트워크 구성’이라는 아이디어는 이후로 20여 년 동안 다른 많은 대학서열 해소 방안들에서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정진상의 제안은 대학서열 해소 논의에 중요한 실마리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국립대통합네트워크를 이 책에서는 대학서열 해소 방안에 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제안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주요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주요 골격(각주2)         

자료: 정진상(200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우선 (1)의 내용을 보면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학들을 대상으로 통합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대가 법인화되어 국립대학법인이라는 국립과 사립의 양면적 성격을 가진 상태지만 당시로서는 여러 국립대학 중의 하나였다. 국립대학이라면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서울대를 국립대 네트워크에 포함시켜 서울대가 가진 학벌 프리미엄을 해체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서열화의 최상층부는 소위 SKY대학이라고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차지하고 있고 세 대학이 한국의 학벌 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중에서도 서울대는 정·재계를 비롯한 거의 모든 한국 사회의 기득권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서울대가 가진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는 데 우선적인 목표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대해 말할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2)에 나와 있듯 사립대학의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참여 범위를 국공립대만으로 제한하지 않고 사립대학도 공공성을 높여서 포함시키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서의 ‘국립대’는 현재의 국립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준국립화하여 네트워크에 참여한 사립대도 포함하는 말이다. 대학 수의 87%, 학생 수의 78%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이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대학서열 문제를 해소할 수 없음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방안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정진상은 당시 국공립대학 입학 정원을 7만 3,000여 명 정도로 추산하고 여기에 13만 명 이상의 사립대 입학 정원을 포함시켜 총 20~30만 명의 학생을 동시에 선발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3)에서 보듯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각 지역의 거점 국립대가 자기 권역의 다른 대학들과의 통합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구조로 설계했다.


그렇다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학생 선발을 어떻게 할까? 여러 대학이 통합하여 운영된다고 할 때 실제 입학제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학생과 학부모의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입학제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입학제도(각주3)

자료: 정진상(200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학생들을 선발할 때 네트워크 총정원으로 선발하여 추첨 배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30개 대학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그 입학 정원이 20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20만 명에 대해 인문사회계와 자연계 두 계열로만 나눈 채 같은 성적 기준으로 선발하게 된다. 만약 20만 명의 정원이 내신과 수능의 4등급 이내의 학생을 모두 받아줄 수 있다면 조건에 해당하는 학생은 일단 합격하여 네트워크 입학을 보장받게 되고 이후에 1,2,3 지망 순으로 대학을 배정받는다. 


이렇게 대학 입시가 진행된다면 그 영향력은 대단히 클 것이다. 대학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데 일정 수준의 성적만 갖추면 되고 대학 진학 후에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점차 대학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참여대학 간에는 더 이상 서열이 없다면, 학생들로서는 입시 경쟁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절대적으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대학을 추첨으로 배정받는다고 하면 현재의 대학서열이 높은 대학에 학생들의 지망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이 부분은 과도기적으로 적응 시간이 필요다. 예를 들어 수도권 A대학과 지방의 B대학을 동시에 추첨한다고 하면 당연히 학생들은 A대학를 선호할 것이다. A대학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 훨씬 좋고 A대학의 선배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로 해결될 것이다. 고교평준화 제도의 도입 초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교평준화가 시행될 때 각 지역에는 명문고들이 있었다. 지역에 따라 특정 학교 출신들이 소위 주름잡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고교평준화가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기존 명문고에 대한 선호도가 일정 기간 유지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차피 입학생의 수준이 모두 평준화되었다는 사실이 정착되어 갔다. 기존의 지역 명문고는 아니지만 새롭게 좋은 학업 분위기를 형성한 고등학교들이 오히려 더 선호되는 경우들이 생겨났다. 


네트워크 대학도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입학생 성적순의 대학서열은 존재하지 않고, 대학입학 이후의 교육 여건과 성과에 따른 새로운 대학 선호도가 나타날 것이다. 또한 원치 않는 대학으로 배정받은 학생에게는 주거생활비를 지원하고 원하는 대학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대학 네트워크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게 된다. <그림5-1>(각주4)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운영을 도식화한 것이다.


그림5-1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운영

  

자료: 정진상(200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위의 내용을 보면 대학 네트워크의 총정원이 20만 명이라고 할 때 일단 150%인 30만 명을 수용한 다음 3학년에 진급할 때 상당수의 학생들이 유급되도록 하고 있다. 대학 네트워크는 입학할 때의 성적 기준은 대폭 완화되지만 대학 진학 이후에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구조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학통합네트워크가 성적 하향평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학생 선발 경쟁에서 입학 이후 교육력 경쟁으로 바꾸고자 했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그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각주

1) 정진상(200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입시 지옥과 학벌사회를 넘어. 책세상.

2) 정진상(2004). 위의 책. pp.96~97. 내용 재구성.

3) 정진상(2004). 위의 책. p.110. 내용 재구성.

4) 정진상(2004). 위의 책. p.1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