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속 사진 한장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겉옷의 두께가 점점 얇아짐을 느낀다. 한번 파하고 입김을 불면 하얀 안개가 입에서 쏟아져 나와 허공을 감쌌지만 이제는 옅은 연기만이 시야를 가로지른다. 자동차 시트에 앉으니 밤새 차가워진 냉기가 비교적 참을만하다. 비로소 새삼 느껴본다.
'또 한 번의 겨울을 넘겼구나'
겨울은 무엇이든 움추러들게 만든다. 특히 시베리아에서 급강하하는 강력한 한파가 내려오는 날 겨울에 방바닥에 누워보면 깊은 땅속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내 등근육을 뻣뻣하게 만든다. 아침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첫 번째로 들어가면 문이 열리자마자 밤새 식은 찬 공기가 콧구멍 속을 헤집는다.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 찬 공기가 목젖에 다다를 즈음이면 사무실에 빨리 들어가서 난방기를 틀고 온수기를 틀어서 보리차나 녹차티백을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담는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기 전 뜨끈한 차의 향과 온기가 다시금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뜨끈한 차를 부르는 한파의 역치값은 매우 낮다. 0도가 되었든 영하 15도가 되었든 따뜻한 차를 부르는 의식을 함으로써 나의 항상성을 테스트해 본다. 자동차도 추운 날씨에 움직이기 전 예열이 필요하듯 나의 예열도 한파와 차의 따끈함이 공존하며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겨울에 움추러드는 것만은 아니다. 겨울에 하는 대표적인 취미 중 하나가 등산이다. 코스가 그리 어렵지 않은 겨울 산은 부담 없이 올라가기 딱 좋다. 여름 등산은 높은 온도와 몸의 열기가 합쳐져서 금세 생수 한통을 비워낼 정도로 체력소모가 심하지만 겨울에 오르는 산은 내가 산을 타며 분출하는 열기를 산 공기가 다 받아준다. 그래서 쉼 없이 올라가도 비교적 체력이 덜 소모되는 장점이 있다. 산을 타고 올라갈 때마다 머리 위로 올라가는 열기는 찬공기와 만나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이 추운 날에 왜 등산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인들 몇 명도 나의 권유를 따라 겨울 산행에 빠졌다.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덮치는 날에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올라갔지만 정상에 서면 삭풍이 걷어낸 잡티 없는 전경이 펼쳐진다.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이 세상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은 산 아래에서는 전부 평등하다.
또한 겨울에는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서 논밭에 몰려있는 철새들을 찾아보는 낭만도 있다. 한반도를 거쳐가는 철새들은 논밭에서 남은 곡식들을 비축하며 따뜻한 곳을 날아갈 채비를 마친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철새들이 일정하게 대열을 갖추어 행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카메라에 저절로 손이 간다. 하늘에 새겨지는 그들의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건 겨울에만 허락된 특권일지도 모른다. 점점 겨울이 저물어가고 나뭇가지에 푸른 잎이 솟아나고 있다. 겨울에 새겨진 한 장의 추억은 또다시 수개월 뒤에 재 소환될 것이다.